'異名同人'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사 보기 => 편법.범죄에 악용되는 '인우보증' ..폐지 시급
-'同名異人'이 아니라 '異名同人'.
같은 이름인데 다른 사람이라는 흔하디 흔한 경우가 아니라 이름은 다른데 같은 사람이라는 특이한 경우. 2013년 7월 경찰에 이런 내용의 첩보가 들어왔다. 현대판 '왕자와 거지'일까. 가능성이 높진 않다. 혹시나 범죄와 관련있진 않을까, 늘 범죄자를 쫓는 경찰이 해봄직한 의심이다.
경찰은 그래서 문제의 인물 33살 김모씨의 지문을 입수해 조회해봤다. 그랬더니 다른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이 발급돼 있었고 등록돼 있는 지문은 그 사람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8개 사기사건에 연루돼 수년째 수배 중이었다.
여기까지 확인한 경찰이 김씨를 체포해 전모를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김씨는 2년 전 감쪽같이 신분 세탁에 성공한 것이었다. 김씨가 사용한 수법은 출생신고를 다시하는 것이었다. 30여 년 전 이미 부모에 의해 출생신고됐던 김씨가 자기가 태어났다고 다시 신고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인우보증' 제도가 있었다.
-임신 못하는데 아이를 낳고...
2013년 3월, 자궁적출수술을 받은 여성이 아이를 낳았다고 출생신고했다. 입양했는데 이를 자신이 낳은 것처럼 속인 것일까. 그런데 이 여성은 아이를 9차례나 입원시켜 미리 가입해놓은 보험에서 2천 4백만 원을 받아 챙겼다. 10살과 7살 아이 2명도 입원시켜 보험사 41곳으로부터 2억 8천만 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경찰은 이 여성은 보험 사기 혐의로 입건했다. 이 여성이 한 미혼모로부터 데려온 아이를 자기 애라고 신고했던 건 '인우보증' 덕분에 가능했다.
-살해해놓고 자연사로 사망신고...
2009년 충남의 한 시골마을에서 71살 할머니가 사망했다. 마을 이장 등 주민들이 원래 병을 앓고 있었다고 증언해 자연사로 사망신고했다. 그런데 국립과학수사원 부검 결과 청산가리로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역시 이 사망신고는 '인우보증'에 기댔다.
-'인우보증'...이웃과 친구가 보증한다
인우보증에서의 인우는 이웃 린隣, 벗 우友, 말 그대로 자신의 사정을 잘 아는 이웃과 친구가 보증한다는 의미다. 병원 같은 의료기관에서 아이를 낳으면 의사가 작성한 출생증명서가 있겠으나 그렇지 않을 때, 가령 집에서 낳거나 할 때는 2명 이상 인우의 보증을 통해 출생증명서를 작성할 수 있다. 사망시에도 마찬가지다. 사망진단서나 검안서가 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을 때 인우 2명 이상이 작성한 사망증명서가 있으면 사망진단서나 검안서를 대신할 수 있다.
출생과 사망을 신고하는 제도가 마련된 이후이겠으나 '인우보증'은 일제 시대부터 있던 제도라고 한다. 지금처럼 의료기관이 많지 않아 애는 집에서 주로 낳을 때는 출생증명서를 인우보증으로 작성했을 것이다. 사망시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리라.
-활용은 0.5% 미만...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출생, 사망을 주변 사람이 보증해야 할 필요성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2013년 3월 이전까지는 출생.사망신고시 인우보증서를 첨부하는 현황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전산시스템 개선을 통해 3월 28일부터는 가능해졌다다. 2013년 3월부터 10월까지를 살펴보면 전체 출생신고는 29만 6901건인데, 이중 인우보증은 655건, 비율은 0.22%다. 사망신고에서의 인우보증 비율은 조금 더 높다. 같은 기간 전체 신고건수는 17만 9033건, 인우보증 1,583건, 비율은 0.47%다.
필요성은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크게 줄었는데.. 이를 이용한 범죄 사례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신분 세탁을 위해 거짓 출생신고를 하는 사례, 국적 취득을 위해 허위 출생신고를 해준 브로커의 사례,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사망했다고 신고하는 사례 등등. 또 부모들이 12월생보다 1월생을 선호하기 때문에 일부러 출생신고를 늦춰 1월에 신고하는, 편법 사례도 꾸준히 거론된다.
수년 전부터 지적돼 왔는데 2013년 8월 이를 개정하기 위한 법안 2개가 나란히 제출됐다. 현재 관련 상임위 소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인우보증'이 있어서 큰 불편을 준다거나 대단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이 있는 건 아니다. 허나 세월이 흐르고 제도를 만들 당시와 상황이 달라져 거의 필요가 없다면, 이를 악용한 범죄만 성행하고 있다면 속히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