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미래, '미디어'의 미래를 그리다 (<신문과방송> 2016.6)
pdf 파일 외에 웹상에서 퍼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그간 봐왔던 <신문과 방송>의 읽어볼 만한 기사들에 대해 접근성이 이렇게 떨어진다는 게 아쉽다. 행사 끝나고 한숨 돌리고 보니 원고 마감 당일이었다. 마감을 하루 넘긴 후기... 부실한 요약문 수준이긴 하나 기록 차원에서 옮긴다. 제목은 ['관계의 진화'와 '공감'이 만드는 미디어의 미래]로 바뀌었는데.. 여기는 내 블로그니까 내가 붙인 제목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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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털포럼 SDF 2016] '관계'의 미래, '미디어'의 미래를 그리다
심영구 SBS 미래부 기자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준 게 지난 3월이다. 인공지능 AI에 대한 관심은 이후 폭증했고 AI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갔다.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상황 속에 찾아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알파고 사건’ 이후 두 달이 지난 뒤인 5월 19일과 20일, SBS가 주최하는 서울디지털포럼 SDF가 열렸다. SDF의 주제는 지난해 말 일찌감치 <관계의 진화 – 함께 만드는 공동체>로 정했다. 2015년엔 <깨어있는 호기심>, 2014년 <혁신적 지혜>, 2013년 <초협력> 등과는 조금 다른 주제였다. 주제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보태려 한다.
<관계의 진화>에서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일 수도 있지만, 알파고와 이세돌,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이기도 하다. 즉, 인간과 기계, 기술과의 관계까지 포괄한다. 이제까지는 기계가 넘볼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영역- 바둑 -에서까지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시대, 우리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멋진 신세계’가 펼쳐질 것도 같지만, 기계에 지배당하는 디스토피아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우리의 관계는, 관계의 미래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SDF 2016을 여는 5월 19일 첫 세션은 <인간을 위한 AI>였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세바스찬 스런은 평생을 AI 연구에 바친 학자 출신이다. 구글의 비밀연구소 ‘구글 X’의 창립자로 자율주행차 등 인공지능을 활용한 구글의 주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그랬던 스런이 구글을 떠나 온라인 교육기업 ‘유다시티’를 세우고 교육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왜 스런은 구글을 나왔을까.
스런은 인공지능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발전을 강조했다. “학습할 수 있는 인공지능으로 반복 작업을 대체하게 되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는 사람보다 운전을 더 잘한다” “기술은 우리에게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AI를 창조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더 많은 곳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유다시티의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인간을 위한 AI’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일찍이 인공지능에 대한 교과서를 썼던 미국 UC버클리의 교수인 스튜어트 러셀은 스런에 비해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해 좀더 강조했다. “인공지능 무기가 발전하면 대량살상이 빚어질 수도 있다” “기계가 인간의 행동을 분석해 인간의 행동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외계 문명이 도래한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러셀 또한 “로봇의 목표는 인간 가치를 실현시키는 데 있다”면서 “인간의 가치를 기계에 가르치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와 함께 올 들어 특히 주목받고 있는 기술은 가상현실, VR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바르셀로나의 축구경기와 미국 대선 경선을 VR로 생중계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가상현실 방송기술을 갖춘 넥스트 VR의 공동창립자이자 CEO인 데이비드 콜의 강연은 포럼 전부터 많은 참가자들이 기대해왔다. 콜은 “VR로 인해 스포츠 관람 방식이 달라지고 우리의 전반적인 생활방식이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직접 가서 구경하거나 좋아하는 뮤지션의 라이브 공연을 관람하는 경험을 평생 갖기 힘든 사람들에게 가상현실은 대단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게 콜의 주장이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하고자 하는 저널리스트에게도 VR은 유용한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VR과 관련해 이번 SDF에서는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 국내 포럼 사상 처음으로 VR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카드보드 뷰어’ 1300개를 제작해 첫날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이 ‘카드보드 뷰어’를 SBS와 공동 제작한 언오피셜 카드보드의 이유상은 SDF 무대에서 직접 VR 영상을 촬영한 뒤 이를 웹으로 공유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이 웹 주소에 접속해 ‘카드보드 뷰어’를 방금 촬영한 VR 영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유상은 “VR은 우리의 모든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SDF가 열리는 이틀 내내 포럼장 앞에서 VR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최신 VR기기와 VR 콘텐츠를 참가자들은 직접 써보면서 성큼 다가온 VR 시대를 맛볼 수 있었다.
SDF 2016 둘쨋날은 인간 본성과 언어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핑커가 열었다. 핑커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폭력의 역사에 대해 짚어보면서 “데이터로 볼 때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과거보다 폭력이 늘었다고 인식하는 건 미디어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핑커는 베트남전의 참상에 대한 보도의 예를 들면서 “폭력에 대한 인식 제고에 영향을 주는 언론 보도와 폭력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보도 가운데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맥락과 적절한 관점이 제시돼야 정확한 보도가 될 수 있다는,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심리학자가 강조했다.
하버드 니먼언론재단과 함께 마련한 저널리즘 특별세션에는 미국 저널리즘 혁신의 선두에 선 저널리스트들이 줄줄이 나섰다. 니먼재단의 바이스 큐레이터인 제임스 기어리가 좌장을 맡았고, 뉴욕타임스의 그래픽 멀티미디어 에디터인 율리아 파쉬나-코타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과 협업하면서 인스타그램을 스토리텔링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시도를 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닐 쉐이, 미국 PBS의 탐사보도 다큐멘터리 ‘프론트라인’의 실무 제작책임자인 앤드류 메츠, 그리고 방송기자 출신으로 차기 방송학회장으로 내정된 숙명여대 강형철 교수가 좌담에 참가했다.
각각 전통 있는 매체에서 정통 저널리즘을 해왔던 저널리스트들은 그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설명했다. 현장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이로 인해 시청자가 엄청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는 VR을 활용해본 경험에 대해, 젊은 세대가 쉽고 친근하게 접근하는 인스타그램에 적합한 스토리텔링으로 인스타그램 버전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성공했던 실험에 대해, 30년간 만들었던 1시간짜리 전통적인 다큐를 2분 50초짜리 짧은 영상으로 새롭게 제작해 대중에게 다가갔던 시도에 대해 말했다. 새로운 기술과 도구로 대중에게 다가가면서도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세계 언론사가 가장 질투하는 곳”이라고도 불리는 워싱턴 포스트와 복스 미디어도 SDF 무대에 섰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가 인수한 뒤 혁신의 아이콘이 된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제품 및 디자인 디렉터인 조이 마버거가 나섰다. 마버거는 워싱턴 포스트의 급성장과 함께 올해 퓰리처상 두 개 부문을 수상한 소식을 전하며 “우리는 이 기사들을 통해 언론이라는 존재가 왜 중요한지 새삼 확인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과거’라면 사물인터넷을 통해 거울에 기사가 뜨게 한다든가 쉽게 뉴스를 접하게 하면서 동시에 사용자의 맥락에 맞는 기사를 전달하려는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고 마버거는 밝혔다. 복스미디어의 라이언 간츠는 “복스는 원래 스포츠 커뮤니티로 시작했다” “우리의 성공 비결은 커뮤니티와 소통이었다”면서 “다른 분야로 확장하면서도 정체성에 대해서는 잊지 않았다”고 전했다.
SDF에서는 지금까지 간략하게 소개한 메인 세션 외에 별도로 세부적인 주제와 이슈를 구체적으로 짚어본다는 의미로 깊이 잠수한다는 뜻의 ‘DeepDive 심화세션’을 동시에 진행한다. 올해 미디어 심화세션에서는 <모바일 콘텐츠- 파괴적 실험의 이면과 성공전략>이라는 주제로 모바일 시장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사업자들이 모였다. 피키캐스트의 장윤석 대표, 메이크어스의 우상범 대표, 샌드박스네트워크의 콘텐츠 총책임자면서 그 자신이 인기 크리에이터인 도티 나희선, 네오터치포인트의 김경달 대표 등이 지난 2월부터 거의 매주 만나 현장 경험과 성공, 실패 사례들을 분석하고 정리했다. 저마다 체득한 바들이 달라 모바일 콘텐츠의 성공 문법을 한마디로 정리할 순 없으나, 사용자와의 소통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니즈를 파악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는 건 대체로 동의하는 지점이었다.
SDF 2016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과 이를 통해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미디어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화두를 가지고 모인 자리였다. 이틀 동안 연인원 3천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큰 호기심과 열정으로 객석을 가득 메웠고 포럼장 바깥에서는 핑커와 위화 등 유명 저자들의 사인회가 이어지고 VR 체험이 진행되면서 안팎으로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맨 처음 언급했던 올해 주제를 다시 말한다. SDF 2016의 주제는 <관계의 진화>, 부제는 <함께 만드는 공동체>였다. 예년과 조금 다른 건 ‘방향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관계’는 진화하고 있을까. 현상 유지는커녕 퇴행하고 있진 않을까. 인간 간의 관계를 뛰어넘는 인간과 기술, 기계와의 관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지만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제대로 유지되고 있을까. 관계의 진화를 위해서는 이전과 방식은 다르더라도 공동체가 마련돼야 하고 그 공동체는 함께 만들어가야만 유효할 수 있다는 게 이번 SDF 주제의 방향성이었다. ‘공감’ 그리고 ‘공유’를 핵심 가치로 내세운 공유경제 세션을 이틀 일정의 마지막에 배치한 건 이 때문이었다.
끝도 모를 기술의 발전과 예측하기 힘든 미디어의 진화 속에서도 서로 공감할 수 있고 함께 만드는 공동체가 가능하다면 ‘헬조선’이 대세가 된 시대에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의 ‘관계’도 비로소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 글을 쓰면서 해봤다. SDF가 그런 화두를 제시하는 장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