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왕좌의 게임에 열광할까
**스포일러 만땅**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다. 최근에 본 한국 드라마는 응답하라 1988, 아내가 보기에 옆에서 잠깐 같이 본 백희가 돌아왔다 정도. 외국 드라마도 간간이 볼 따름인데, 고전이 돼버린 섹스앤더시티는 대부분 본 것 같고.. 지난 10년간 24, 로스트, 덱스터, 빅뱅이론 정도를 봤을 따름이다. 이중에서 모든 시즌을 찾아본 건 로스트와 덱스터 단 두 개다. 셜록도 초기엔 열광하며 봤으나 왠지 끝까지 볼 수 없어 시즌 1에서 마감.
그러다 요즘 왕좌의 게임을 보고 있다. 원작 소설이 있어 줄거리가 탄탄하다. 이걸 한번 보기 시작하면 도중에 끊을 수가 없다는 둥, 연휴에 시작해 사흘 내내 봤다는 둥 풍문으로 들었던 그 왕좌의 게임이다. 웨스트로스라는 가상의 대륙과 바다 건너 동쪽까지를 무대로 7개의 왕국 연합 성격인 세븐 킹덤의 왕좌를 놓고 각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들 간의 갈등과 음모, 전쟁 등이 흥미롭게 묘사돼 있다. 얼마 전 시즌 6가 끝났다. 몰아보기로 시즌 5까지 마치고 시즌 6의 마지막 편까지 봤다.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시공간을 무대로 한다. 그러나 웨스트로스는 이름에서 보듯 western, 서구를 상징하겠고 중세 유럽으로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협해를 사이에 둔 동쪽은 훈족 혹은 칭기스칸으로 대표되는 몽골 정도로 봐도 될 것 같다. 장벽 너머에 사는 야인들은 아직 유럽으로 편입되기 전의 게르만 족으로 봐도 될 듯하고... 유럽에서도 중심에 있던 서유럽과 남유럽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대로 왕좌를 계승해오던 타가리엔 가문, 특히 매드 킹의 폭정에 스타크와 라니스터, 바라테온 가문 등이 연합해 반란을 일으켜 타가리엔 가문을 왕좌에서 끌어내렸다. 그 결과 로버트 바라테온이 왕좌에 올랐다. 로버트는 라니스터 가문의 장녀와 결혼해 혼맥으로 묶여 있었고 스타크 가문의 가주인 에다드 스타크와는 형제나 다름 없는 관계였다. 타가리엔 가문의 자녀들, 왕자와 공주는 도망쳐 동쪽 대륙에서 재기를 모색한다. 시즌 1은 이런 일이 벌어진 뒤 17년 후 로버트 바라테온이 총리격인 수관으로 임명했던 존 아린이 돌연 숨지자 에다드 스타크를 수관으로 임명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에다드 스타크의 부인은 탈리 가문의 장녀인 캐틀린이었고 이 캐틀린의 동생인 라이사는 또 존 아린의 부인이었다. 로버트의 사망 이후 로버트의 장남인 조프리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고 조프리가 죽자 다시 그 동생인 토멘이 왕이 된다.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아들, 장남 우선이라는 가부장 사회다.
한편으로 조프리 등 로버트의 자녀들이 실은 로버트의 친자가 아니라 그 부인 세르세이와 쌍둥이 오빠인 제이미가 사통해 낳은 자녀라는 설이 유포되면서(사실이긴 하다) 정당한 왕위 계승자는 조프리 등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로버트의 동생인 스타니스, 또 그 동생인 렌리 등이 주장의 핵심이다. 주장대로면 로버트 사후 왕좌 계승의 서열 1, 2위이기도 하다.(아들이 먼저, 아들 없으면 형제, 형제 중에서는 손위부터.. 이런 식이다.) 로버트의 죽음을 전후해 왕위를 노리는 로버트 자녀 계열를 내세운 라니스터 세력과, 정당성을 주장하는 스타니스 세력, 렌리 세력이 쟁투를 벌이게 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스타니스를 지지하면서도 음모와 협잡에는 어두웠던 에다드 스타크가 처형당하면서 스타크 가문 또한 바라테온에 반기를 들고 스타크의 장남 롭 스타크는 북부의 왕으로 추대된다. 여기에 강철군도의 발론 그레이조이까지 칭왕하면서 다섯 왕의 전쟁이 펼쳐지게 된다. 여러 흥미진진한 과정을 거쳐 다섯 왕은 모두 죽고 이 전쟁은 마무리된다.
근대로 이행하기 전의 봉건 사회다. 동쪽 대륙에는 노예제가 유지되고 있다. 웨스트로스에서는 노예를 사고 팔았다 하여 추방되기도 하지만 노예제 사회에서 조금 나아진 사회일 뿐이다. 여성은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고 남편의 지위와 위치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때로는 가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정략결혼의 대상으로 자리할 따름이다. 혈통 우선으로, 서자는 가문의 성조차 쓸 수 없다. 예외적으로 왕의 칙령이 있어야 가문의 성을 쓰거나 가문을 계승하는 게 가능하다.
에다드 스타크의 서자로 나오는 존 스노우가 그의 실력과 상황으로 롭 스타크의 죽음 이후 공백이 된 북부의 왕 자리를 계승하나 굉장히 예외적인 일이다. 그전의 대영주였던 에다드 스타크의 아들들이 모조리 죽거나 행방불명되면서 빚어진 상황이다. 역시 행방불명 상태인 아리아는 그렇다치고 산사 스타크가 버젓이 옆에 있는데도 존 스노우가 추대받는다. 시청자들은 알고 있듯이 존 스노우는 사실 라예가르 타가리엔과 리안나 스타크의 아들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그렇다면 역시나 고귀한 핏줄, 서자로 불렸으나 서자가 아닌 것이다. 고귀한 신분이나 자기 신분을 모른 채 고난을 겪고 성장하고 배신당하고 극복하고 다시 성장하고 자신의 실력과 인망, 결국은 혈통의 힘에 힘입어 원래의 자리 혹은 그 이상을 쟁취하는 신화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했다. 우리에겐 굉장히 익숙한 구도라 그만큼 받아들이기도 쉽다.
왕위나 가문의 지위는 아들에게 계승되며 능력과는 상관 없다. 인간의 목숨은 파리 목숨 취급이다. 가장 부유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장애인이라 차별받았다는 티리온은, 실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누릴 수 있었던 특권들을 더 누리지 못했다는 의미다. 나이트워치에서 보여주는 갈데 없는 존 스노우나 샘웰 탈리의 우애나, 산사 혹은 아리아 스타크의 성장, 모든 걸 가졌으나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티리온의 고뇌와 슬픔 등 드라마로서 재미나, 생생한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보는 맛은 있으나 여기까지다. 흡사 가상의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삼국지 연의를 보는 느낌이다.(실제로도 저자가 삼국지연의를 읽고 참고했다는 풍문을 접한 바 있다.) 왜 여기에 열광할까. 이런 시대를 공감하고 그리는 정서가 배어있는 것인가.
여기까지 쓰고 삼성가의 이혼 소송 사건을 잠시 돌아보니 이게 아니다. 지금 이 사회는 여전히 봉건성이 살아 숨쉬고 왕이나 영주의 휘하에 칭 신민하는 이들이 즐비하다. 그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고귀한 혈통이라는 판타지라도 있으면 모를까. 돈과 권력에서 돈과 권력이 나온다. 돈과 권력을 혈통이라는 이유로 물려받으면 그 혈통은 고귀하게 된다. 왕좌의 게임은 그런 이전투구하는 현실을 잘 반영했다. 훌륭한 드라마다. 소설은 7월에 개정판이 나온다 하여 구입하는 걸로...
소설의 진도를 넘어서버렸다는 드라마의 올해분은 마감됐다. 아마도 틀림없이 제작될 것으로 보이는 시즌7은 어찌될 것인가. 북부의 왕이 된 존 스노우, 드디어 협해를 건너 웨스트로스의 킹스랜딩으로 진격하는 대너리스 타가리엔, 강철군도를 장악하고 대륙 진출을 노리는 유론 그레이조이, 이들의 목표가 될, 왕인 남편과 왕인 자식들이 다 죽고 스스로 왕이 된 세르세이 라니스터,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계속 이어나가긴 어려울테고 이제 종장에 대비해야 할텐데 대미를 어떻게 정리할지 작가들 골치 아픈 게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