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전쟁'...
올해 남은 기간에는 주로 다큐멘터리(라고 해야할까? 한시간 남짓한 방송제작물)을 만들게 될 가능성이 커서 요즘 짬짬이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 보고 있다.
그러다 보게 된 게 지난 1월 SBS 신년특집으로 방송된 '엄마의 전쟁' 1부. 방송 당시 다큐는 보지 않았으나 비판하는 기사는 여럿 읽은 기억이 있다.
엄마의 전쟁은 대리 맞선에 나선 예순살 안팎의 엄마들부터 시작한다.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긴 하나 아들과 딸 가진 엄마가 만나 자식들의 프로필 정보를 주고 받고 사진을 들여다본다. 만나기 전에 이미 집안의 격이랄지... 등급은 맞춰놓은 상태다. 수도권 이내 대학은 나왔어야 한다느니 키는 너무 작으면 안된다느니... 맞선 당사자들끼리는 차마 대놓고 하기 힘든 말들이 오간다. 이를 주선한 건 결혼정보회사다. 자식들 결혼까지도 엄마가 나서서 성사시키는 현실의 풍속도를 보여준다는 의도는 알겠네.. 하고 있는데 그 다음엔 대뜸 육아전쟁 중인 엄마들에게로 간다.
맞벌이 가정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여성의 애환이 포커싱 대상이다. 자녀의 어린이집 하원 때문에 양가 엄마(할머니) 2명이 다 동원되고 도우미를 쓰고 친구까지 나서야 한다. 그러다 벌어진 돌발상황에 아빠가 잠시 맡다가 이내 회사로, 엄마가 바통 터치. 재미를 위한 극적 구성의 흔적이 엿보이나 씁쓸한 재미를 안겨주는 기가 막힌 현실을 잘 엮어 보여줬다. 다음 가정 또한 맞벌이에 자녀 2명인 건 매한가지인데 이번엔 엄마 직업이 간호사로 3교대 근무를 해야 한다. 그러니 주말에 아빠 혼자 아이를 보는 상황이 생기는데 이것도 그럴 법하다. 세상 모든 직업이 낮에만 일하고 밤에는 쉬는 식으로 돌아가진 않으니까. 이 또한 생생하다. 이런 현실을 접근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제목부터 엄마의 전쟁인 이 다큐가 직시하는 현실은 '엄마'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책임과 고민과 비난까지 거의 전부 여성이 끌어안게 되는 현실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뵈는 두 가정을 통해 이 '엄마'들이 사실은 '전쟁' 같은 현실에 처해있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다큐의 미덕은 그러나 여기까지다.
육아가 전쟁인 게 현실이라면 '엄마만의 전쟁'이 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담거나 '엄마만의 전쟁'인 현실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거나 했더라면 비판을 덜 받았을 것 같다. 더군다나 두번째 가정의 경우엔 아내의 교대근무로 남편이 휴일에 아이를 보는 걸 두고 '독박육아'라 하면서 교대근무를 관두라고 시부모와 함께 종용하고 아내의 대학원 진학 꿈을 육아에나 충실하라면서 비난하는 식으로 담아내 버렸다. 게다가 '당신은 엄마냐 여자냐'를 묻는 대목까지 보면 아연실색 그 자체다. 방송 후 인터넷에서 맹비난을 받았다는 이 남편은 제작진에게 불만이 없었을지 의문이다.(그래도 싸다..가 아니라 그렇게 구성하지 말았어야 했다)
일상이 전쟁이 돼 버린 상황, 더군다나 대개는 엄마만의 전쟁이요, 엄마뿐만 아니라 주변 대부분이 불편하고 힘든 상황, 이런 데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보여줬더라면 비난이 찬사가 됐을 수도 있겠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