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 사람들> 출연의 기억
외장하드를 잠깐 들춰보다 재미난 걸 발견.
무려 2005년 8월에 방송된 SBS의 옴부즈맨 프로그램 <열린TV 시청자세상>다. 그때나 지금이나 잘 보지 않을 이 프로그램이 이날 특이했던 건 내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8분가까이 되는 분량이다. 코너이름은 '방송가 사람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이 즈음에는 보도국 기자 출연이 그리 드물진 않았다. 어쨌거나 매주 한 편씩 방송돼야 했으니.. 보도국으로 섭외 요청이 왔고 당시 사건팀 소속으로 중부 라인을 담당하면서 아침 방송 출연을 하고 있던 내가 낙점됐다. 아마 외주 PD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제작 담당자를 만났고 그 양반은 나를 며칠 동안 따라다니면서 내 생활을 취재하고 인터뷰하겠노라고 했다. 그러라는 지시를 받았기에 그러시라고 했다.
아직 짱짱한 20대니까 가능했겠지만... 그때 내 일상은 고단했다. 새벽 4시쯤 일어나 회사로 출근해 원고 마무리하고 분장하며 준비해 짤막하게 아침 방송한 뒤 그 다음엔 담당인 중부라인의 중부경찰서로 갔다. 그 다음엔 대략 챙겨서 보고하고 별일 없으면 눈 좀 붙이고.. 별일 있으면 취재하러 가고. 저녁에는 회사 들어와 다음날 방송할 원고 준비하고 퇴근. 고작 한달이니까 하면서 흔히 말하는 '총'을 많이 쏴서 별일이 없던 때가 많지 않았다.
PD는 대략 이런 일정이라고 하니까 어쨌거나 다 찍고 싶어했다. 그래서 새벽에 회사로 오라고 해서 방송하는 장면까지 촬영하고 중부경찰서로 가는 걸 또 찍고 그렇게까지 했다. 원래는 좀 자야하는데... 잘 수가 없었다. 뭐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찍어야할 판이었는데 마침 중부경찰서에 언론에 공개한 사건 하나가 그날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10대 여학생 2명이 명동 밀리오레에 들어가 몇몇 가게를 돌면서 옷가지 등을 훔친 혐의로 붙잡힌 것이다. 피해액은 7백여만 원, 별거 아닌 잡범인데 당시만 해도 밀리오레가 떠오르는 신흥 쇼핑몰인데다 결정적으로 CCTV 영상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건으로 저녁 뉴스 리포트를 제작하게 됐고 경찰서 해당 팀에서 간단한 취재 이후에 밀리오레에 가 촬영.. 뭐 그런 과정을 PD가 동행하며 촬영했다.
이런 프로그램 출연은 처음인지라(이후에도 없었다...) 다소 긴장했는데.. 그래서 간지 나는 대사를 생각나는대로 막 던졌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다루는 사건들이 변변찮은 것들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를테면 중부경찰서 강력팀 사무실 앞에서 수첩에 적고 있던 건 여학생 2명이 훔친 금품의 액수, 밀리오레 앞에 가서 밀리오레 측과 통화했던 내용은, 들어가서 찍게 해달라고 설득하는 건데.. 이 뉴스를 본 사람들이 저러면 안되겠다는 경각심을 줄 수 있도록 공익적인 목적으로 취재를 하고 있으니 부디 들어가게 해주소서 하는.. 틀린 말은 아니나 웃긴 말을 스스로 하고 있던 것.
지금 생각해도 낯뜨거운 건... 애들이 숨어있던 허름한 창고 비슷한 곳 앞에서 스탠드업 촬영을 했는데...(타사 기자들도 내가 먼저 하니 다 따라했다) 멘트는 대충 이랬다 ."00양 등은 상인의 눈을 피해 이처럼 으슥한 곳에 숨어서 영업이 끝나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이런 멘트를... 그러면서 인터뷰로는... 선정적인 내용의 사건사고 기사를 선정적이지 않게 보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한다...고 지껄였다.
그날은 회사로 돌아와 기사 쓰고 편집해 방송하고.. 그걸 동료 선후배와 함께 모니터링하면서 토론하는 수작까지... 다음날에는 기자회견 두 곳을 다녀왔고 그 중간중간 인터뷰를 한 걸로 동행 취재는 끝이 났다. 대충 하고 싶은 뉴스와 해야 하는 뉴스, 시켜서 하는 뉴스의 간극을 좁히고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 뭐 그런 멘트를 했던 것 같다.
아 부끄럽구만... 머리 모양은 아재 머리이나 얼굴이 확실히 앳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