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랑와랑한 햇볕에 무사 겅 걸엄시니"
"이 와랑와랑한 햇볕에 무사 겅 걸엄시니"...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러면서도 딱히 누굴 만나거나 전화하거나 어디 가기도 애매할 때 나는 종종 서울 도서관에 간다.
서울도서관은 예전 서울시 청사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도서관으로 서울광장 바로 앞에 있다. 주로 거니는 곳은 1층 사회학과 언론 관련 서적이 있는 곳이나 2층 문학, 여행 쪽이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의 물리적 거리는 큰 맘 먹고 가야한다. 시청 신청사 2층에 있는 기자실에서 서울도서관은 통로 하나로 연결돼 있어 여차하면 건너오면 그만이니...
마음도 허하고 어수선하면서도 스트레스 많이 받던 지난주 초, 잠시 들른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들었다. 수년 전 책이 나왔을 때 읽어볼까 하다 말았던 기억이 있어 잠시 주저했으나 이번엔 인연이 닿았다.
저자는 시사저널과 오마이뉴스 편집장을 거쳐 고향 제주로 돌아가 올레길을 만들었다 했다. 이런 약력은 수년 전에도 알고 있었으나 그때는 올레가 지금처럼 완전히 뜨기 전, 다시 보니 새삼스럽다.
'놀멍 쉬멍 걸으멍'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을 읽고나면 제주에 특히 서귀포에 가 살고 싶어진다. 꼭 살지는 않더라도 올레길은 한번 가서 걸어봐야지 하는 맘을 꽤 강하게 먹게 한다. 대단한 책의 힘이다.
중간까지 읽고나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걷다보면 파울로 코엘료 정도는 우연히 만나는 길인가보다 싶다.
앞 부분을 읽으면서는 올레를 착안하기까지의 과정과 이후 첫번째 올레를 만들면서의 어려움도 담겨 있기에 올레 1코스, 2코스, 3코스 만들면서 등장하는 각종 사건사고와 이후 성과, 등등으로 책이 진행될 줄 알았다. 하지만 도중엔 올레를 만들게 된 구체적인 동인이 된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여행기도 담겨 있고,(그 내용을 들여다보기 전엔 칠레 산티아고인줄만 알았다...)
제주 특산 음식에 대한 얘기도 담겨있다. 무엇보다 저자의 고향이기도 한 제주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묘사도 정겹고 재미나다. 비운의 드라마 '탐나는도다'보다도 훨씬 생생한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도 좋다.
순서대로 주욱 읽어나가다보면 산만해뵈기도 하지만 배깔고 눕거나 나른한 자세로 기대서 옆에는 시원한 커피 한 잔 놓고 읽어나가기 좋다.
꼭 걸어다녀야만 잘 보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걷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또 자전거를 타거나 차를 몰거나 버스 등을 이용할 때마다 그 주변 풍광은 다르게 느껴진다. 여러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기도 하고 자전거를 이용하기도 하고 차로도 많이 다녔지만 그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차로 건널 때는 주로 그저 건너가는 게 목적이었기는 하지만 나름의 맛이 있었다. 자전거도 그렇고.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걷기가 갑인 것 같다. 걷기의 매력, 특히 제주 올레길을 걸을 때의 매력을 저자는 한껏 부각시켰는데 이게 추어올린 것 같지는 않다. 제주에 연고도 있는데 가기 쉽지는 않지만 수년 내에는 꼭 가서 올레길을 걷고 싶어졌다.
'와랑와랑'이라는 제주말, 참 정겹구나.
제주올레가 흥하다보니 곳곳에 올레가 만들어졌다. 좋은 일이다. 서울에는 둘레길이 생겼다. 여기도 참 좋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