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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예방 효과, 검증되지 않았다"

면리장 침 2013. 7. 16. 16:32

<승객 안전? 감시? 계속되는 지하철 CCTV 논란>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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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는 이미 CCTV


CCTV는 closed circuit television, 폐쇄회로TV죠. 특정한 목적으로 특정한 이들에게 화상정보를 전달하는 영상기기입니다. 이제는 CCTV라는 약어 자체가 일상어로 쓰일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이로 인한 부작용, 개인정보 혹은 사생활 침해 논란도 끊이지 않는, 해묵은 논제입니다.

 

워낙 CCTV를 활용한 수사나 이를 전달하는 뉴스 등이 많다 보니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기보다는 CCTV의 필요성은 대체로 인정하되 지나친 활용은 경계해야 한다, 정도로 찬성 쪽이 우세한 게 요즘 분위기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7/16) 의미 있는 권고 하나가 나왔습니다.






-"범죄 예방 효과, 검증되지 않았다"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서울 메트로와 서울 도시철도공사에 지하철 객실 내 CCTV가 설치 목적인 범죄 예방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데다 시민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다며 개선 대책을 시행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특히 눈여겨본 건, 설치 목적인 '범죄 예방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부분입니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올해 1월부터 5월 사이 지하철 내 성범죄가 416건 접수됐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출퇴근시간대 발생했습니다. 출퇴근 시간대 대부분 지하철은 승객으로 가득차죠. CCTV로 봐도 머리 부분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박치기 폭행'이나 '머리를 사용한 성추행'(?) 등이 아닌 이상, 범죄 발생 상황을 CCTV를 통해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지하철 내 범죄 발생 자체는 감소하는 추세 같습니다. 

 

*지하철 내 범죄 발생 현황(자료: 경찰청)

 

 

2010년 

2011년

2012년

CCTV 설치

2호선

1148건

805건

427건

7호선

78건

140건

131건

CCTV 미설치

1호선

527건

467건

276건

8호선

11건

27건

17건


 

CCTV 운영은 2012년 6월부터 이뤄졌는데 2013년 통계를 확인해봐야겠지만 획기적으로 범죄 발생이 감소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어서 승객이 많지 않을 때는 범죄 장면을 CCTV로 식별하는 게 가능하겠죠. 그러나 과연 밤 늦은 시각 한두 명 타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데서 성 범죄를 저지를 대담한 범죄자가 많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면 남는 건 범죄자에 대한 심리적인 위축감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CCTV가 있으니 범행을 하려다가도 '움찔' 하는 거죠. 승객들 생각도 이런 정도 같습니다. CCTV가 있으면 없는 것보다는 좀 안심이 된다, 이런 거죠. 

 


-사생활 침해 가능성은 검증됐나? 

 




전동차에 설치된 CCTV는 평소에도 기관사가 운전실에서 임의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화면을 크게 보면 얼굴까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화질도 좋습니다. 물론 현재도 거리 곳곳에, 상점에, 카페에, 식당에, 회사에, CCTV가 설치돼 있고 어딘가의 CCTV에 찍히고 있습니다. 지하철 탈 때 몇번 더 찍히는 게 무슨 대수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따지고 있는 건 설치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냐는 것입니다. 범죄나 화재 예방을 위해 설치했다면서 목적 외 사용 가능성을 많다면, 그러면서 또 사생활 침해 가능성까지 높다면 잘못된 거 아닐까요.


메트로나 도시철도공사는 기관사 교육을 통해 범죄와 화재 예방 등 설치 목적 외에는 CCTV를 임의로 조작하지 않도록 교육했다고 밝혔습니다만, 이렇게 '기관사의 선의'에만 기대는 걸 '조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기관사 개개인의 품성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임의 조작 방지 대책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겁니다.)

 

-시민 의견 수렴했다더니.. 겨우 92명


권고 결정문을 찬찬히 살펴보니 또 흥미로운 대목도 나옵니다. 설치에 앞서 도시철도공사와 메트로 측이 각각 CCTV 설치운영에 대한 시민의견을 수렴했는데 도시철도공사는 32명을 조사했습니다. 찬성 26, 반대 3, 기권 2, 무려 20일 동안 조사한 게 이렇다고 합니다. 메트로는 보름 동안 조사했는데 전체 66명, 찬성 57, 반대 9입니다. 각각 83%, 86%의 찬성률로 나왔다는데 2012년 연간 지하철 이용객이 2호선은 5억 6천 명, 7호선은 4억 7천 명입니다. 기가 막힌 의견 수렴입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였겠죠, 서울시 투자심사위원회는 지난해 9월, 지하철 1,3,4호선과 5,6,8호선 전동차 내에도 CCTV를 설치하는 2단계 사업은 전면 보류시키고 재검토를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2호선과 7호선에서만 운영되고 있는 거죠.

 

-분위기 전환까지는 어렵더라도..


서울시의 권고 내용은 전동차 내 CCTV 관리자와 기관사에게 인권 교육을 시키고, 임의 조작 방지대책을 마련하며, 승객들에게 CCTV 설치운영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게 안내 방송하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애초에 제기했던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양 공사 노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의견은 철거하라는 것이지만 개선하라는 정도로 수용됐습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개선 권고도 1월에 나왔고 저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3월 말 먼저 기사를 썼습니다. 

 

권고라 강제력은 없죠. 또 임의조작 방지 대책은 사실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기관사가 CCTV를 임의조작하지 않도록 기관사를 감시하는 CCTV라도 달아야 하는 걸까요. 

 

다만 CCTV로 인한 범죄 예방 효과가, 실은 부실한 토대 위에 있다는 걸 확인한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권고가 쌓이다보면, 앞서 얘기했던 찬반 양론 중 찬성이 우세한 분위기에서, 귀찮고 효용은 좀 떨어지더라도 사생활, 인권 보호를 더 고려하는 분위기로 조금이라도 옮겨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저 자신의 바람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