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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나도 쉬쉬...死線 위의 노동자들

면리장 침 2013. 10. 22. 14:55

기사 보기 -> 위험에 내몰린 고압선 근로자, 사고 나도 '쉬쉬'



밥벌이를 위해 늘 사선 위를 위태로이 걷고 있는 이들이 있다. 전기원 노동자, 고압선 공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정용인 220볼트에 감전된다 해도 종종 큰 사고로 이어지는데 이들은 늘 2만 2천 9백 볼트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만지고 다뤄야 한다. 아무리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사고가 없을 순 없다. 


고압선을 다루는 송배전 공사를 주로 발주하는 곳은 한국전력공사다. 전기 재해를 총괄하는 곳은 한국전기안전공사.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양측에서 각각 집계한 송배전 공사 감전사고 현황을 비교했더니 크게 차이가 났다. 한전 집계로는 사망자 16명, 부상자 12명, 전기안전 측은 사망자는 27명, 부상자 184명, 사망자는 11명, 부상자는 무려 172명이나 차이가 났다. 




한전의 처음 설명은, 전기안전공사에서 집계한 사고는 한전 외 다른 곳 사고까지 포함돼 있어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기안전공사는, 2007년까진 다른 발전소 등의 사고까지 함께 집계했지만 2008년 이후부턴 한전 사고를 따로 집계했기에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한전 설명처럼 일부 다른 사고가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차이가 너무 컸다. 

 

한전의 다음 설명은 이러했다. 

 

"한전에서는 공사를 시행하는 협력업체의 보고나 자체 사업소 보고,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사고를 집계하는데 전기안전공사는 병원이나 경찰서 기록까지 사고 집계에 활용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 협력업체에서 간혹 가벼운 부상의 경우엔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까지 모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협력업체가 사고를 숨기는 것까지 다 파악하는 건 어렵다는 얘기다.



협력업체가 사고를 다 보고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고하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업체 쪽에서 보면 그런 사고가 나면 회사 문 닫아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일하다가 무슨 안전사고가 날 수는 있는 건데 사고 나면 회사 문 닫아야 되는 거거든요. 왜냐면은 규정에 의하면 그 다음에 입찰을 할 수가 없어요. 벌점 때문에 자격이 안되는 거예요. 심사에서 탈락해요. 업체들 대부분이 못 버티거든요, 영세하기 때문에."



한전의 '배전공사 협력업체 업무처리지침'을 보면 사고 발생시 처벌 내용이 있다. 사고로 사망자가 2명 이상 나오면 그 업체와는 계약 해지다. 사망자 1명은 45일간 시공정지, 중상자가 나오면 15일 정지다. 작년까지는 사망자 1명에 1년, 부상자는 중경상 가릴 것 없이 6개월 시공정지였는데 협력업체에서 시정을 요구해 완화한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영세 규모인 협력업체는 사망자가 여럿 발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사실 문을 닫아야 하는 셈이다. 부상자만 나오더라도 공사를 일정 기간 못하게 돼 타격이 크다. 왠만한 사고는 숨기려고 할 수밖에 없는 게 협력업체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한전에 처벌조항을 더 완화하거나 없애라고 하기도 어렵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사고가 났을 땐 엄벌에 처한다는 조항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더 들여다보니 사고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공사 투입 인원 자체가 적은 것이다. 역시 한전의 협력업체 업무처리지침에는 공사 규모별 필수인원이 정해져 있다. 전기공사 면허를 가진 인력이 최소 7명 필요하다. 한전에 제출된 각 업체별 보유인원 명단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그러나 실제 공사 현장에 가보면 이보다 적은 인원이 일하고 있다.

 

건설노조에서 전국의 협력업체를 실사해 실제 현장에 투입되는 인원을 조사해보니 2천 726명을 보유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투입 인원은 1729명, 997명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인력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36%는 없는 인원이다. 협력업체가 보유한 인원 자체가 실제 규정보다는 적다보니 공사 현장에 자연히 적은 인원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취재 중 찾아갔던 공사 현장엔 단 3명이 일하고 있었다. 2명은 사다리차에 달린 바구니를 타고 10여 미터 높이의 전봇대 장비를 교체하고 있었고 1명은 지상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통제하거나 통행하도록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면서 수시로 고공 작업자들에게 장비를 건네주는 등 작업 보조를 했다. 

 

현장노동자는 인력 상황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원래는 한전의 현장대리인이 공사 현장에 상주하게 돼 있어요. 또 차량 통행과 관련해 교통신호수가 있어야 하고 밑에서 작업 보조하는 사람 있어야 하고 위에서 작업할 때 아래서 관리하는 감독자 있어야 하고... 여기 인원이 3, 4명은 더 필요해요. 하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그게 굉장히 힘든 일이죠. 인건비도 그만큼 더 들어야 하고 어려움이 있죠."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공사를 하다보니 몇 사람 몫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두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고압선을 다뤄야 한다. 고압선을 만질 때는 반드시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하는데 특수 고무로 만든 장갑만 해도 가정용 고무장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엄청난 두께로, 이 장갑을 끼면 섬세한 작업은 하기 힘들 정도다. 



"이걸 다 착용하면 고압선을 만질 때 잘 못 움직이거든요. 장갑에 비해 볼트가 굉장히 작아요. 움직이기가 힘들어요.  


"그렇다고 안 낄 수가 없죠. 외피도 껴야 해요. 장갑이 워낙 고가다 보니까 이걸 보호하기 위해서 외피를 끼는 거죠. 장갑 끼고 고무장갑 또 끼고 거기다 외피 또 끼고 그러니까 위에서 살아있는 고압선을 만질 때는 너트나 이런 걸 조이는 작업할 때 굉장히 애로사항이 많아요. 오래하다보면 요령이 좀 생기지만요."



작업을 빨리빨리 해야 하고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하자니 작업의 속도는 나지 않고 작업 인원은 적고...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는 셈이다.

 


"전기를 단 1분도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전기가 살아있는 상태로 교체를 하고요. 부득이하게 고장이 났을 경우엔 그거 하나만 죽은 상태에서 교체를 해서 살려 주죠."


"저압 작업할 땐 몸이 젖어 있는 상태니까 220V 같은 경우나 380V 같은 거에 간접 감전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경험은 허다하게 있는 거죠. 근데 저뿐만 아니라 작업을 하는 사람은 그런 잠깐잠깐의 순간 감전은 많이 당해요. 직접 닿아가지고 사고로 연결 되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이제 손가락 자른다든가, 손발 자르는 경우도 많고 그 다음에 감전에 의해서 사고로 인해서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요.



....


사고 방지를 위해 엄중한 처벌조항을 마련해놓은 한전 입장은 이해간다. 조심하더라도 사고가 나면 큰 타격을 받게 되는 협력업체, 그래서 신고를 꺼리거나 때로는 사고를 숨기는 업체 입장도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정작 사고를 당하는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서류상 인원을 속이고 적은 인원을 투입해 사고날 만한 환경 만들고 있는 협력업체,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사고를 방조하는 한전. 한전은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더 노력해야 하고 당국은 이를 위해 관련 법이나 규정을 정비하라는 게 노동자들의, 노조의 요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기를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노동자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하고 있는지를 다 같이 되돌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