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는 어떻게 자살률을 줄였을까?
1일 43명, 30분에 1명꼴...10만 명에 32명.
숫자로만 늘어놓으면 대개 실감이 잘 나지 않는데도 엄청납니다. 자살 얘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하루에 43명, 거의 30분에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서울은 다른 시도에 비해 조금 적은 편인데 그래도 하루에 7.5명 꼴입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단순히 자살자 수만 보면 인구가 많은 나라가 아무래도 더 많을 겁니다. 그래서 나라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로 비교하는데 2011년 현재 10만 명당 31.7명이 우리나라 자살률입니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2.9명, 한국이 단연 1위고, 일본이 21.9명으로 2위입니다. OECD를 벗어나 전세계 나라들과 비교해도 한국은 리투아니아 등과 1, 2위를 다툽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2004년엔 23.7명, 최근의 일본 수준이었습니다. 2007년에도 24.8명, 2008년엔 26명, 이 정도 수준을 유지했는데 2009년에 갑자기 31명으로 자살률이 껑충 뛰었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촉발제가 되진 않았을까 짐작할 따름입니다. 일시적인 현상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이후에도 조금씩 오르고 있습니다. 2012년 통계는 올해 9월쯤 나오는데 아마 조금 더 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범정부 차원의 자살 예방 대책은 계속 나왔습니다. 유명인들의 자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도 많이 제기됐습니다. 그래서 SBS를 포함한 여러 언론사는 자살보도준칙을 만들고 자살에 관한 보도는 자제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자살예방 대책이 큰 성과를 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골고루 치솟던 자살률이 극적으로 낮아진 지역이 있었습니다. 서울 노원구입니다.노원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 인구는 송파구 다음으로 많아 60만 명이나 됩니다. 65세 이상 노인 수는 6만 명으로 가장 많고 기초수급자도 2만 2천명으로 역시 가장 많습니다. 인구도 많고 노인도 많고 수급자 같은 취약계층도 많고 그래서인지 자살률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2009년엔 25개 구 중에서 4위에 해당했죠. 그런데 2010년엔 15위로 뚝 떨어졌고, 2011년엔 21위가 됐습니다. 노원구의 인구나 노인이나 수급자 수나 그 2년여 동안 큰 변화는 없었으니 이건 2010년 이후 실시된 자살예방사업 영향이 아닌가 하는 거죠.
노원구의 자살예방사업을 보면 눈에 확 띠는 건 없습니다. 그저 '선택과 집중'입니다. 구민 60만 명 전체를 대상으로 자살예방사업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자살 위험성이 더 높은 사람들을 골라 집중적으로 관리에 들어갔다는 겁니다.
어떻게 골라냈냐, 먼저 자살에 실패했던 사람들.. 자살 시도자들이죠. 이들은 재차 자살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살을 하려했던 이유가 사라지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겠죠. 1년 내에는 10%가, 4년 내에는 21%, 5년 내에는 37%가 재시도한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이들부터 찾아내서 관리했습니다.
어떻게 찾아내나, 실무자들이 궁리해보니 자살시도를 하면 병원 응급실에 실려오겠구나 싶었답니다. 그래서 병원 측 협조를 구해 자살시도자들의 동의를 얻어 이후에 연락해 대면 상담 등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놓고요.이와 함께 독거노인, 기초수급자 등 취약계층 7만명을 대상으로 마음건강평가, 일종의 우울증 검사 같은 걸 진행했습니다. 그리고는 역시 고위험, 중위험군 등을 가려내 관리했습니다.
관리는 그러면 어떻게?, 자원봉사자, 종교단체 등과 연계해 '생명지킴이'를 양성했습니다. 소정의 교육 뒤 이런 노인과 수급자 등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락하고 찾아가도록 했습니다.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힘들지만 연락할 곳이 없다, 이런 사회적 고립감을 없애거나 덜어주도록 한다는 겁니다.
정말 별 거 아닌 것 같습니다. 가서 보고 들으니 복지사나 봉사자나 늘상 하던 일을 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효과가 있었습니다.
자살을 세번이나 시도했던 한 남성분, 이렇게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복지사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그만 고민이 있고 조그만 일만 있어도 그 복지사에게 전화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도 편하고 죽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 이제는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신다고 합니다.
서울시의 자살예방종합대책은 노원구 대책의 심화 발전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성과를 낸 대책이기에 서울시 전역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중간 점검도 계속 해가면서 앞으로 7년 뒤인 2020년에는 OECD 국가의 평균 수준까지 떨어뜨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자살 대책 취재를 하면서 만난 분들, 읽은 책 등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자살로 갖고 나아가는 동안에 무수히 나타나는 방해요소들, 그 하나만으로도 자살을 포기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사소한 이유로 자살 시도를 중단하기도 하는데 자살 예방을 하려면 이렇게 "사소하게라도 계속 개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한 뒤 실행에 옮기려다가 갑자기 한참 전에 잡아놓았던 약속이 떠오른다든지, 목을 매려고 줄을 찾았는데 찾아도 찾아도 적당한 줄이 없었다든지, 문득 번호가 눈에 띄어 전화했더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담원이 "전화 끊으면 뭐하실 거예요"하고 물어봤다든지. 이렇게 '사소한 개입'만으로도 자살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지하철에서 투신 자살이 많이 일어나던 10년 전,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면 막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이 스크린도어로 막는다고 안 죽겠냐, 어디서든 죽을 것이니 소용없다." 스크린도어 설치에는 많은 예산이 들어가니 가뜩이나 적자를 보던 지하철에 그런 것까지 설치할 여력이 없다면서 효과도 폄하한 그런 주장이었습니다. 이 주장은 틀렸습니다.
지난해 몇 개월새 7,8명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큰 파문이 일었던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들어보니 그 아파트 구조가 문제였습니다. 복도식인데다 복도에 쌓아놓은 물건이 많아서 발판 구실까지 하는 바람에 쉽게 뛰어내릴 수 있는 구조였던 겁니다. 이 아파트에 마련된 대책 중 하나는 그런 물건들을 다 치워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부분까지 다 세심하게 고려해도 자살률이 줄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