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화 선수가 넘어지던 그 순간...
-소치 동계 올림픽 개회식은 2월 7일 20시 14분에 시작한다.(2014년이라 20:14 시작...) 경기는 이보다 앞서 6일부터 시작했다.
대회 전체의 첫 경기는, 소치 시각 오후 3시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한국 선수단의 첫 경기는 오후 6시 스키 프리스타일 여자 모굴이었다. 여자 모굴 스키에 출전한 한국 선수는 2명, 사촌 자매 사이인 서정화, 서지원이다.
-모굴 mogul은 눈 언덕이라는 뜻, 모굴 스키는 스키를 타고 울퉁불퉁한 눈 언덕을 247미터 내려오면서 속도와 점프의 회전기술, 공중연기를 겨루는 프리스타일 종목이다. 모굴스키는 1차 예선과 2차 예선 뒤 결선을 치르는데 결선 진출 방식이 좀 독특하다. 1차 예선에 나선 30명이 차례로 경기를 한 뒤 점수대로 상위 10명이 결선에 우선 진출한다. 나머지 20명이 2차 예선을 치른다. 여기서 또 상위 10명이 결선에 나간다. 결선에서는 1, 2차 예선에서 뽑힌 20명이 겨루는 것이다.
-그런 모굴스키 1차 예선이 6일 오후 6시(소치 시각), 소치 산악 클러스터 로사 쿠토르 익스트림 파크에서 열렸다. 순서를 보니 서정화는 5번, 서지원은 23번이었다. 한국 선수 첫 경기이기도 해서 조금 일찍 현장에 가 있었다. 5시쯤부터 Mixed Zone에 있었다.(Mixed Zone은 선수와 취재진, 코치 등이 말 그대로 뒤섞여 있는 곳이다. 관람객은 들어오지 못한다.)
출전 선수들은 슬로프를 점검하며 연습하고 있었다. 등번호 29번이 서정화, 32번이 서지원이었다. 찾아보니 서정화 선수가 한 번 타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토비 도슨 코치와 이야기를 나눴다. 토비 도슨은 토리노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한국계 입양아로도 알려졌던 바로 그 사람이다. 잠시 뒤엔 서지원 선수도 보였다. 역시 코치와 얘기 나누고는 다시 슬로프 위로 올라갔다. 곧 경기가 시작될테니 그때 집중해서 봐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음 연습은 그냥 저냥 흘렸는데 그때 사단이 난 것이었다.
-서정화 선수가 슬로프를 다 내려와 걸어오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표정이 상기돼 있는데 뭔가 당황한 듯 싶기도 했고... 하지만 그냥 연습이 생각만큼 잘 안됐나 하고 지나쳤다. 내 앞을 지나치는 모습을 촬영하는 데 열중했다. 나중에 촬영한 영상을 살펴보니 헬멧 끈도 풀려 있고 확실히 이상했다. 알고 보니 그때가 연습하다 크게 넘어진 뒤 내려온 바로 그 모습이었다.
넘어지는 영상을 보니 어이쿠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점프 뒤 착지했는데 중심을 못 잡고 뒤로 넘어져서 거의 10미터를 미끄러져 내려왔고... 스키 한쪽은 벗겨지고 헬멧까지 벗겨질 정도였다. 내가 봤던 그 당황한 모습, 헬멧 끊이 풀려 있던 건 벗겨졌던 헬멧을 다시 쓴 것, 또 그 다음에 걸어가던 건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넘어진 직후 걸어나오는 장면을 알고 보니 내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유일하게 촬영한 것이었다. 동영상과 사진 둘다 말이다. 하지만 연습 장면은 주의깊게 지켜보지 않았기에 전혀 몰랐던 셈이다.
-서정화 선수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도 한국의 유일한 여자 모굴스키 선수로 출전해 21위로 1,2차 예선 합쳐 20위까지 갈 수 있는 결선에 아깝게 나가지 못했다. 4년 동안 절치부심해 출전한 생애 두번째 올림픽 예선에 나서지도 못하고 기권했다.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서정화의 사촌동생으로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서지원 선수도 언니 얘기를 하니 거의 울먹일 정도였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토비 도슨 코치는 "운나쁘게 정화가 경기 전 연습에서 작은 사고를 당했는데 괜찮을 거다. 우리가 오늘 밤 (부상 정도를) 잘 살펴볼 거다."라고 말했다. 2차 예선에 나설 선수 명단에도 서정화는 들어있다. 8일 2차 예선에 출전할 것 같다.
서정화는 1차 예선 전날에도 슬로프 적응을 위해 열심이었다. 몸만 푸는 정도였던 다른 선수와 달리 고난이도 점프까지 구사하면서 실전처럼 연습했다. 1차 예선 직전에도 그렇게 연습했기에 부상까지 당한 것이다. 그럴 정도로 온 힘을 쏟아부었다.
-올림픽 출전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메달 색깔이나 성적에 연연하기보다는 참가에 의의를, 선의의 경쟁을, 스포츠맨십을 통한 세계 평화를... 등등 거창한 대의명분을 갖다붙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김연아와 이상화에 열광하고 일거수일투족에 관심 갖는다. 김연아는 과연 2연속 금메달로 영예롭게 은퇴할 수 있을지, 빙속 여제의 올림픽 2연패는 가능할지, 심석희 등 쇼트트랙은 어떨지...
솔직히 이번 올림픽 출장을 오기 전까지 모굴스키라는 종목도 잘 몰랐고 서정화나 서지원 선수에 대해서는 더더욱 몰랐다. 하지만 1차 예선 전후를 지켜보며 가까이서 안타까운 기권과 선전을 지켜보니 새롭게 애정이 생기고 관심이 간다. 적어도 모굴스키 서정화, 서지원은 내가 관심 갖고 지켜보는 선수가 됐다.
출장 기간 여러 모로 바쁘고 정신 없이 지나가고 있지만 우리 선수들 전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국민들이 관심 갖고 응원할 수 있게 하는 게 나 같은 문외한 기자들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이제 개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