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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일기/북적북적

북적북적83/"우린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북적북적83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듣기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3월이 됐습니다. 약 1년 전 2016년 3월에 일본 영화 한 편이 다시 개봉했습니다. 영화관에서 봤으면 했는데 결국은 그러지 못하고 지나갔던 그 영화가 3월이 되니 떠오릅니다. 앞에 읽었던 저 문장들... 물고기, 조제, 츠네오... 많은 분들은 이 단어만 듣고도 뭔지 아셨겠지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원작 소설의 한 대목입니다. 1년 전 개봉했던 영화가 저 영화입니다. 13년 만에 다시 한국 상영관에 걸렸네요. 소설보다 영화가 더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저도 영화로 먼저 본 뒤 소설을 읽었고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졌습니다만 아직 그러지 못했습니다. 소설로는 언뜻 생각나지 않습니다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라는 점에서는 한국영화 <오아시스>, 문소리와 설경구가 주연을 맡았던 그 영화가 떠오릅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봄날은 간다>가 더 비슷한 듯도 합니다. 


소설과 영화는 비슷하게 전개됩니다만, 결말이 다릅니다. 제목도 좀 다르죠. 소설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인데 영화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입니다. 소설이 '여기까지만' 하고 끝낸  듯한 부분에서 영화는 좀 더 나아가는데... 영화가 좀 더 친절할 것일 수도, 혹은 군더더기가 덧붙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츠네오는 뭔가 깨달았다. 조제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꿈이라는 것을.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으로 엄연히 조제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츠네오는 그냥 즐거웠지만, 조제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저에 있으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마냥 시간이 흐를 것 같았다. 조제는 공포와는 다른 어떤 도취에 빠져, 끝도 없이 그 안을 뱅뱅 돌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죽을 때까지 그 안을 돌아다닐 것 같았다.

... 깊은 밤에 조제는 눈을 뜨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달빛이 방 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고, 마치 해저 동굴의 수족관 같았다. 조제도 츠네오도 물고기가 되었다.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 거야.'"


영화도 그렇지만 소설도,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 또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호랑이와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도 그러하겠고요. 영화는 2시간에 걸쳐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소설은 10여 쪽 분량으로 압축해냈습니다. 사랑도 변하고 사람도 변합니다. 나이를 먹어가고 시간이 흐르고 어떤 게 낫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제는 확실히 성장했는데 츠네오는 달라진 게 없나 싶기도 하고.. 소설은 담담히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비롯해 9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그중에서 '사랑의 관'이라는 단편을 일부 읽겠습니다. 스스로 '이중인격자'라 생각하는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이복 언니의 아들- 조카와의 관계가 소설의 줄기를 이루지만 그것보다도 자기모순 없이 양립하는 '이중인격'이 저는 좀 더 흥미로웠습니다. 조제나 츠네오보다도 이 소설의 주인공인 우네에게 더 공감하는 면도 있었습니다. 조제... 뿐 아니라 다른 소설들도 재미있습니다. 출간된지는 좀 지난 책입니다. 2004년에 나왔으니까요. 찾아서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숨겨진 의지와 심술을 쉽게 간파하지 못한다. 유지도 그녀를 상냥하고 어리광 부려도 화를 내지 않는, 마음이 활짝 열린 아줌마,라고 믿고 있다.... 호의와 냉철한 분석력이 우네의 내면에서 아무런 모순 없이 양립하고 있다."


"어른이란 존재는 그 상냥함 뒤에 언제나 공갈과 위협의 칼날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그런 순진한 신뢰가, 우네의 가슴에 아프게 와 닿는다. 순진무구한 소년소녀를 웃음과 과자로 유혹해 잔인하게 죽이는 유럽 사회의 성범죄자들, 그리고 그림 동화에 나오는 범죄자들의 고독한 쾌락을, 우네는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산꼭대기 검은 땅에 커다란 구멍을 파서, 남모를 사랑의 관을 묻나니... 말로 다할 수 없는 둘만의 사랑이었네. 우리 누운 관 위에 풀이 피어나는 날에도 이 사랑 아는 이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