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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생각

신해철 생각

1988년 대학가요제와 무한궤도를 나는 보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신해철은, 1990년 '슬픈표정 하지 말아요'부터다. 이때부터 90년대말까지, 내 10대 시절의 음악 취향에서 단 1명의 가수와 밴드를 꼽자면 신해철, 그리고 넥스트다. 하지만 록으로 간 신해철보다는 그에 앞서 소년 소녀 취향의 신해철이 더 좋았던 것 같다. 


2000년 이후에는 신해철을 그리 찾아듣지 않았다. 나이도 들었고 회사에도 다니게 됐고 그렇게 열광은 사라졌다. 신해철도 나이를 먹었고 토론에 나오는가 하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고 그렇게 같이 늙어갔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가 열광했던 신해철은, 10대에 겪은 신해철에서 멈춰 있었다. 


그가 죽었다.


부서 회식 후 노래방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약간의 추모 분위기도 있었으나 곧 깔깔대는 분위기로 돌아갔다. 20대에서 30대 초반에 걸쳐있던 대다수의 동료들은 1990년대의 신해철을 잘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 시간을 내 그의 앨범을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슬픈표정하지 말아요"부터 '노댄스', '정글스토리'... 오랫동안 잊고 있던 노래들인데도 가사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적어도 90년대의 신해철이 만들고 부른 노래는 내가 거의 다 알고 있다. 90년대에는 다 외우고 있었다. 즐겨 불렀다.


내 방식대로 신해철을 추모한다. 


앞으로도 내가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외우는 가수는 또 없을 것 같다. 그중에 일부를 흥얼거리며 여기 옮긴다. 고인의 영면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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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 길을 걸어왔네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그 길 너머로 가로등불 하나둘씩 밝아오는데

먼곳으로 가는 기차는 

지난 추억들을 후회 속에 싣고 떠나네

...<PM 7:20>

 

부드러운 손길 달콤한 속삭임 내가 원한 것은 

그것만은 아니었지 내가 사랑한 건 당신이 아니야 

내 환상일뿐

...<안녕>

 

모두가 깊이 숨겨둔 마음을 못본 채 하며

목소리만 높여서 얘기하네

흔들리는 사람들 한밤의 재즈카페

하지만 내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

...<재즈카페>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에게 쓰는 편지>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지만

가슴 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각자 걸어가고 있는 거야

...<도시인>

 

낡은 전축에서 흐르던

가슴벅찬 노래 알수 없는 설레임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았지

 

처음 기타를 사던 날은

하루종일 쇼윈도 앞에서 구경하던

빨간 기타 손에 들고 잠 못 잤지

...<영원히>

 

세상의 모든 고통과 좌절과 분노를 내게 다오

영원히 마르지 않을 눈물을 갖게 하고 

고독의 늪에서 헤매이게 하라

그럼으로써 내가 세상에 온 이유를 알게 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가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하라

...<Destruction of the shell>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수많은 내가 있지만

그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이중인격자>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The Dreamer>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날아라 병아리>

 

미래를 위해선 언제나

오늘은 참으라고 

간단히 말하지마

현재도 그만큼 중요해

순간과 순간이 

모이는 것이 삶인 걸

...<나는 남들과 다르다>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처음부터 그것은

텅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The Ocean> 


과연 이게 뭘까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생각을 하지 마라

앞뒤를 이리저리 저리이리 재다간 

평생 촌티를 벗어날 수 없다

요즘 젊은 애들은 정말 알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먼 옛날옛적 당신들이 생각하던 세상은 갔다.

...<Komerican Blues> 


그래 그렇게 절망의 끝까지 아프도록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큰소리로 외치면

흐릿하게 눈물 너머 이제서야 잡힐 듯 다가오는

희망을 느끼지

...<Hope>

 

한평생 남의 눈치만 보면서 살아오다

아주 그게 뼛속까지 박혀버린 인종들 있잖니

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뭔지 알아

남들도 자기처럼 살길 바라는 거지 쳇

그렇게 산다고 누가 상주니 또 누가 상준다고 그거 받아 어따 쓰니

...<아주 가끔은>

 

넌 내가 잊어버린 마음을 여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줬어

넌 내가 포기했던 일상 속의 행복을 내게 돌려줬어

좀더 다정하게 말하려해도 그럴 재주 없는 이런 나지만.

...<먼훗날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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