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5.9. 작성
전두환 전 대통령, 현재 생존한 네 명의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입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우받는 건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 두 명뿐입니다. 전, 노 두 명은 '내란죄' 등의 유죄 판결 확정으로 예우를 박탈당했는데 다만 '경호를 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에 따라 경호만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인지 대외 활동이 거의 없어 구설수에 오르는 일도 없습니다만, 전 전 대통령은 잊을 만하면 화제에 오르곤 합니다. 추징금 천 6백억 원을 내지 않는 이유로 "전 재산이 29만 원 밖에 없다"라고 하는 등 본인의 발언 때문이기도 하고 법적으론 예우를 박탈당했는데도 경찰, 군 등에서 가끔 임의로 예우를 하는 듯한 장면이 목격됐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진 게 없어 추징금도 못 내고 세금도 못 낸다는 분이 해외 여행을 다녀온다거나 골프를 즐겨 친다거나 하는 식으로 종종 지면이나 화면에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 알려진 얘기를 이렇게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는, 최근 서울시에서 낸 보도자료 때문입니다.
제목은 [서울시, 3천만 원 이상 고액.상습체납자 942명 명단 공개 예고], 내용은 새로 발생한 3천만 원 이상 고액체납자에 대해 앞으로 6개월 간 소명 기회 및 납부 기회를 주고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오는 12월 명단을 공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문득 이미 공개된 고액체납자들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외손자인 조동만 한솔그룹 전 부회장이 58억 원으로 1위인 가운데, 최순영 전 신동아 회장, 정태수 전 한보 회장, 주수도 전 제이유 회장 등 알만한 사람들 이름이 보였는데 이들 중에 누구보다도 유명한 '그분'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전해, 그 전전해를 뒤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동생인 전경환씨의 이름은 올라 있었는데 말이죠.
관련 사실들을 정리해보니, 전 전 대통령은 2003년 12월 연희동 사저 별채가 강제 경매에 부쳐진 뒤 처남에게 낙찰되면서 2010년부터 발생한 양도세와 지방세를 체납해 왔습니다.(7년 가까이 지난 뒤인 2010년 1월에 양도세가 부과됐다는 것, 잘 이해가지 않는 대목입니다만.) 관할인 서대문세무서에서는 넉 달 뒤인 2010년 5월 양도세 3억 천만 원에 대해 '무재산 결손 처분'합니다. 재산이 없어서 세금을 거둘 수 없으니 납세 의무를 소멸시키는 행정처분입니다. 양도세의 10%로 부과되는 지방세 3천 17만 원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계속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산금이 붙었고 가산금이 5백만 원이 넘어서자 규정에 따라 징수 업무는 2011년 3월 서울시로 이관됐습니다. 현재 전 전 대통령이 내지 않은 세금은 가산금을 포함해 3868만 원 정도인 것 같습니다.
지방세기본법 규정상 체납발생일로부터 2년이 지난 3천만 원 이상 고액체납자들의 명단이 공개 대상이 되는데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서울시 이관 시점으로부터 이제서야 2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번에 공개 대상자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서울시가 이미 공개한 명단에는 없었겠지요. 명단 공개 대상자인 942명 중에 포함돼 있냐고 서울시에 물었더니, 6개월 소명 및 납부 기회를 주는 기간이 지나 확정되기 전까지는 밝힐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 포함돼 있을 것 같습니다.
명단 공개의 목적은 사실 공개 망신입니다. 성범죄자 명단과 주소 공개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하라는 경고의 의미라도 담고 있습니다만, 세금 체납자는 그런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망신당하기 전에 세금을 내라는 거죠. 올 12월 명단이 공개되면 이제까지 고액, 상습체납자로 공개됐던 인사들 중에 가장 유명하고 비중 있는 인물이 포함돼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는 추정입니다만..
문제는 그분의 이름이 다시 체납자라고 공개된다고 해서 새삼 '망신'이라고 할 상황이냐는 것입니다.
법률에 의해 이미 박탈당한 예우입니다만, 그렇다고 일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가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 전 대통령이나 주변에서는 내란수괴나, 광주학살 책임자, 독재자라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세금 체납자'라는 오명까지 계속 짊어지고 갈 생각일까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본인 말처럼 가진 재산이 없다면 수백억대 자산가로 알려진 자녀들이나 수시로 도와주고 있다는 측근들이 까짓 3천 8백만원 내줄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10월이면 추징금 천 6백억 원의 시효가 소멸합니다. 그때 즈음에 또다시 전 전 대통령(노 전 대통령도 함께)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이런 스토리가 다시금 회자되겠지요. 12월에는 아마 세금 체납자로서 또 한 번 거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솔직히 지겹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창피합니다.
적어도 '세금 체납자'라는 꼬리표는 떼어버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건 '정치적 보복'이라고 할 사안도 아니며 그저 납세라는 국민의 의무를 다해달라는, 그분의 통치를 받았던 대한민국 국민 1인의 작은 바람입니다. 가족과 측근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가진 돈 없다니, 밀린 세금 대신 좀 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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