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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보물선 찾으러 가 보고온 것은..(1)

*블로그 만들면서 올해 쓴 취재 뒷얘기(취재파일) 옮깁니다.
2013.5.22. 작성

- 안흥량

심영구 취파

慶尙道漕船十六, 至安興梁, 遇風沒水。
경상도 조운선 16척이 안흥량에 이르러 바람을 만나 물에 빠지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

水路險阻, 名曰安興梁。 全羅漕運到此多敗, 古今患之。
물길이 험해 이름하여 안흥량이다. 전라도 조운이 이곳에 이르러 실패가 많으니 예나 지금이나 걱정이다.
(태종 12년)


이 '안흥량'이라는 곳은 충남 태안 앞쪽의 해협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여러 곳에 기록이 남아 있는데 한결같이 다니기 힘들다거나 침몰했다거나 하는 내용들입니다. 섬과 육지 사이의 그리 넓지 않은 해협인데 지형의 영향으로 물살이 빠르고 안개도 많이 끼고 암초도 많고 해서 침몰 사고가 잦았다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난행량 難行梁' 다니기 힘든 여울목이었는데 사고가 줄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까지 편안하다는 의미의 '안흥량 安興梁'으로 바꿨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서해에는 4대 험조처가 있다는데 심청전에도 나오는 장산곶 인당수, 몽고군도 함부로 넘어가지 못했다는 강화도 손돌목, 명량대첩의 그곳 진도 울돌목, 그리고 태안 안흥량입니다.

지난주 제가 찾아갔던 곳이 이 안흥량입니다. 안흥량에 가장 가까운 항구인 안흥항에서 저희 취재팀은 국립 해양문화재 연구소 수중발굴팀과 만났습니다. 보물선 탐사작업에 동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경주 앞바다에 빠진 종

시작은 경주였습니다.

원래는 경주 앞바다에 신라시대 대종이 가라앉아 있어 탐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종을 건지러 가려했습니다.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버렸다는 신라시대 거대한 사찰 황룡사의 역시 큼지막한 대종 혹은 감은사 대종, 공통점은 몽고가 혹은 일본에서 약탈해 종을 배에 싣고 가다 배가 난파하면서 가라앉았다는 얘기가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80년대에, 90년대에도 한 차례씩 이 종을 찾기 위한 탐사가 진행됐는데 모두 실패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한 잠수사의 구체적인 제보가 있어(둥그런 원통 모양의 금속 물체를 직접 만졌다!) 해양문화재 연구소에서 나섰습니다. 거의 보름 넘게 탐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세간의 관심을 의식해서인지, 다른 정보를 입수했는지, 경주시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이 사실을 공개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곧 종을 건지는 것 같은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한달 동안 탐사했지만 아무것도 못 건졌습니다. 제가 연구소 분과 통화할 때는, 그 분은 결국 탐사에 실패하고 막 경주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럼 안되겠네 싶어 실망하다 별 생각없이 다음엔 뭐 하냐고 물었습니다. 태안 앞바다에 탐사하러 간다고 합니다.

"어, 거긴 뭐 있나요? /근처에서 많이 나왔어요. /그럼 우리 거기서 만나요!"


- 정조시간
심영구 취파
태안 안흥항에서 씨뮤즈호를 봤습니다. 바다의 여신인가요.. 8년 전 일본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한다 하여 급히 독도 가던 때 탔던 작은 통통배가 떠올랐습니다.(그때 통통배는 17톤, 씨뮤즈호는 19톤) 그래 보여도 현재 활동 중인 국내 유일의 수중 문화재 탐사선이었습니다. (씨뮤즈호는 2006년 취항해 7년째 활동 중, 새로 취항한 290톤급 탐사선 누리안호는 곧 활동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팀 2명, 씨뮤즈호의 선장과 기관장 2명, 민간잠수팀 4명, 그리고 저희 취재팀 3명, 이렇게 10명은 아침 일찍 만나 배에 탔고 문제의 안흥량으로 출발했습니다.

한 30분 달렸을까, 배가 섰습니다. 다 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가까운가요? /원래 내륙을 오가는 배들은 해안에서 멀지 않은 근해에서 다니거든요. 2007년 태안선, 2009년 마도 1호선, 2010년 마도 2호선, 2011년 마도 3호선 모두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굴됐어요./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배가 멈췄고 엔진까지 껐는데 닻을 내렸는데도 배가 흔들흔들, 듣던대로 물살이 잔잔하진 않았습니다.

이제는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건져오는가 보다 싶었는데, 먼저 사이드스캔소나, 측면음파탐지기로 지형 탐사를 해봅니다. 다시 배를 움직여 근처 해역을 이리저리 오갔지만 별다른 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 그런가 싶었는데 잠수팀이 모여 뭔가 계산을 합니다. 알고 보니 이 부근은 겉으로 보기에도 그렇지만 물속에도 조류가 빠르게 흐르기 때문에 그냥 막 들어갈 수 없답니다. 정조시간, 바닷물의 흐름이 멈추는 시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 들어가려는 지점의 깊이는 35미터~40미터. 보통 20미터를 넘어가면 심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10미터에 1기압씩 증가하는데 40미터면 5기압 정도 압력을 받겠죠. 압력 변화가 너무 빠르면 신체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잠수할 때 다시 수면으로 올라올 때 감압을 얼마나 할지 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계산 끝에 나온 결론은 정조시간 동안 감압 시간을 고려하면 15분 정도 탐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5분? 정조시간은 하루에 4번인데 이미 오전은 지나갔고 저녁 때는 작업이 어렵고 결국 오늘은 낮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탐사와 발굴의 차이

심영구 취파


배는 여전히 흔들흔들했지만 흔들림이 좀 줄었습니다. 주변 바다를 보니 어느새 잔잔해졌습니다. 이게 정조시간인가 싶었는데 이미 잠수팀은 잠수용 수트를 갖춰 입고 비상용 산소통에 오리발에 갖은 장비를 갖췄습니다. 2인 1조로 입수... 수십 미터 길이의 산소호스가 풀려나가면서 잠수사의 모습은 곧 사라졌습니다. 바닷물이 뿌옇게 흐려 있어 1미터 아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다 아래는 햇빛도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시야가 흐리다고 합니다. 그래도 두근두근합니다. 뭐를 가지고 나올까, 바닥에는 뭐가 있을까? 보물선에서는 고려청자가 나올까 금덩어리는 없을까?

얼마가 지났을까, 한 명씩 올라옵니다. 잠수할 때는 뛰어들지만 올라올 땐 사다리로 천천히 배에 올랐습니다. 잠수경을 벗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압력 탓일까요. 차고 갔던 그물 주머니 안을 얼른 봤더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숨을 고르기를 기다려 물었습니다.

"아래 뭐가 있던가요?/ 전부 자갈밭이 돼가지고 (보물은) 전혀 없어요, 파편도 없고."

옆에 있던 발굴팀의 한 마디.

"원래 탐사는 이래요. 열흘 동안 뒤져도 아무것도 안 나올 수 있어요./아니, 지금 뭐가 있는 지역으로 온 것 아닌가요. /그렇기는 한데 바다가 좀 넓어야지요. /어디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들어간 것 아니었나요./ 그건 발굴이고 이번엔 탐사 온 건데요."

탐사나 발굴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해양문화재 연구소의 구분으로는 달랐습니다. 수중 문화재 신고가 있고, 그 다음 신고 지역을 바탕으로 사전 조사를 거쳐 탐사를 하게 되며, 탐사에서 확인된 대규모 유물이 있는 지역에서 발굴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탐사를 온 안흥량, 여기서도 가의도 인근 해역은 2002년 한 도굴꾼이 고려청자를 건져내 팔다 적발됐던 지역이긴 하지만 어느 지점에 가라앉아 있다 라고 확인된 곳은 아니었던 겁니다. 그럼 내일도 안 나올 수 있다는 건가, 가뜩이나 흔들리는 배에서 울렁이던 속이 더욱 더부룩해졌습니다. 아무것도 못 보고 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