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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보물선 찾으러 가 보고온 것은..(3)

*블로그 만들면서 올해 쓴 취재 뒷애기 옮깁니다.

2013.5.28.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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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와 보물의 차이

국보 1호는 얼마 전 복원을 마친 숭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이라는 건 다들 아시죠.

그럼 2호는 뭔지 아시나요.

찾아보니 국보 2호는 원각사지 십층석탑, 보물 2호는 서울 보신각종입니다. 국보 3호는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 4호는 고달사지 부도, 5호는 법주사 쌍사자석등, 보물 3호 대원각사비, 4호 중초사지 당간지주, 5호는 없습니다. (원래는 중초사지 삼층석탑이었는데 보물에서 격하됐다네요.)

언뜻 보면 국보나 보물이나 그게 그거 같은데... 문화재보호법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23조(보물 및 국보의 지정)
①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지정할 수 있다.
② 문화재청장은 제1항의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


보물 중에 문화재위원회가 정하면 국보가 되는 겁니다.

- 태안에 왜 보존센터가?

국립 해양문화재연구소의 태안보존센터가 탄생하게 된 배경, 좀 이채롭습니다. 1976년 신안선을 필두로 주로 남해와 가까운 서해 남쪽과 남해에서 수중문화재 발굴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포 해양유물보존처리소에서 시작해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만들어지고 현재의 해양문화재연구소에 이르게 됐는데 그 위치가 목포였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양상이 좀 달라졌습니다. 태안선을시작으로, 마도1,2,3호선 등 주로 태안 앞바다, 앞에서 얘기했던 '안행량' 부근에서 해양문화재가 쏟아지듯 발굴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렇게 발굴된 문화재를 죄다 목포로 옮겨가는 데는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고 하니 아예 태안에 분소를 만들자이런 발상이 나온 거죠. 또 태안 주민들도 그랬습니다. 왜 우리 앞바다에서 나온 걸 목포로 가져가냐.. 문화재의 소유권이 발굴된 지역에 있는 건 아니지만 주민들은 '우리 고장 문화재'라고 여긴 거죠. 그러면 아예 태안에 전시실도 만들자 해서 현재 공사 중이라고 합니다. 전시실이 완성되면 태안 앞바다에서 나온 문화재들 위주로 전시가 되겠죠.

그런 배경으로 탄생한 태안보존센터에 가보니 그동안 발굴해온 많은 유물이 보존처리 작업 중이었습니다.
탐사와 발굴을 거쳐 옮겨온 유물은 먼저 이물질 제거를 합니다. 표면이나 속에 붙어있는 조개껍질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제거하는 작업이고요, 그 다음엔 탈염화 작업을 거친다고 합니다. 바다 속에 오래 잠겨있었기 때문에 일단 품고 있는 소금기를 제거하는 작업입니다. 그 다음에는 소금기가 빠진 만큼 조직 곳곳에 빈틈이 생기기 때문에 그만큼 약해져서 이를 단단하게 하는 경화 작업을 합니다. 대강 이렇게 보존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는데 물론 조각조각 부서진 도기라면 이를 이어 맞추는 입체 퍼즐 맞추기 같은 일도 하고 있었습니다.

- 청자로 베개를?

"아직 공개 안 된 문화재 중에 뭐 괜찮은 거 없나요?" 


이렇게 무식한 질문을 던졌더니 오랜만에, 아니 이렇게 무지한 취재진은 처음 본다는 듯한 표정의 학예연구사분이 웃으시더니...  "이거 보여드리면 안되는데.." 하면서 보여주신 게 바로 그 베개였습니다. 청자 베개.

청자 베개_500

크기는 제 손바닥보다 조금 클까요, 색상은 우리가 익히 봐오던 그 영롱한 옥빛이었습니다. 여기에 섬세한 무늬가 한가득... 실제로 이걸 과연 베고 잘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예뻤습니다.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것인데 하나 나온 거라서 굉장히 가치가 있는 그런 유물이죠."

저를 포함한 일부 기자들은 무식한 데다 의심도 많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청자 베개... 제가 본 것보다 좀더 특이하게 생긴 베개 하나가 보물로 지정돼 있었고(청자 쌍사자형 베개, 보물 제789호입니다.) 그외에도 베개들이 몇 점 있었습니다. 2007년 태안 대섬에서 발굴된 고려청자 매병과 두꺼비 모양벼루는 5년이 지난 지난해 말에 나란히 보물로 지정됐습니다.(제 1782호, 1783호, 1784호) 이 청자 베개는 지난해 태안 앞바다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겁니다. 수년이 지난 뒤에 보물로 지정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 청자 베개는 대략 7, 8백년 전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에 전남 강진이나 그런 곳에 청자를 만드는 가마가 많았다고 하니 거기서 만들어 개경 같은 곳으로 옮기는 중이었겠죠. 아니면 이 베개가 실려있던 배에 당시의 귀족이 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자 베개 정도는 베고 자는 그런 귀족, 혹은 이 정도는 선실에 장식하는 귀족. 혹은 귀족 집안의 규수일 수도 있겠죠. 저 베개에 맞는 머리라면 요즘 미의 기준에도 들어맞는 소두의 미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베개가 실려있던 배가 거센 풍랑을 만나, 암초에 걸려 난파해 마도 해역에 가라앉게 됐습니다. 그리고 서해 특유의 뻘에 묻혀 수백 년을 잠들어 있다가 2012년 어느 날, 잠수사에 의해 발견되고 꺼내 올리고 여러 작업을 거쳐 보존되고 있는 와중에 우연히 태안보존센터까지 오게 된 SBS 기자의 눈앞에까지 선보이게 된 겁니다.

- 두근두근…

올해는 일단 인천 섬업벌 해역과 진도 오류리 해역에서 지난해에 이어 발굴 작업이 이어집니다.(이미 진도에서는 시작됐습니다. ) 뭐가 더 나올까요? 작년엔 진도 해역에서 사상 처음으로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시대의 총통이 발굴됐습니다. 그동안은 왜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든 그랬다고 합니다. 난중일기를 비롯해 많은 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도 광화문 한복판에 서 있는 그 충무공이 지휘했던 해전, 특히 진도 해역이면 "신에겐 아직 12척이 남아 있사옵니다"로 유명한 울돌목, 명량해전 아니겠습니까. 그 당시의 총통이라.. 작년에 이어 진도 해역 발굴은 올해도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이번에는... 저까지도 두근두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