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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암 환자에 소송...반인권적 횡포인가, 합리적 선택인가

[어느 소송] 한 암환자가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가 각종 검사 뒤 한달치 약을 처방했다. 이 환자는 약을 이 병원에서 이틀 먹은 뒤 퇴원해 다른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는 한달 동안 이 약을 복용했다. 환자는 가입해둔 실손보험의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는 이 약값이 입원 비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미 지급한 보험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환자가 복용한 약값은 입원 비용에 포함될까 포함되지 않을까. 


-7년째 투병 중..잴코리 복용 시작

폐암 환자인 김씨는 암과 싸우는 중이다. 햇수로 7년째다. 2009년 처음 진단받았을 때 폐암 4기였다. 폐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여성의 경우 28.2%, 김씨는 5년은 넘겼다. 그동안 8번이나 항암제를 바꿔가며 투약했다. 현재 김씨가 먹고 있는 항암제는 화이자제약에서 나온 '잴코리'라는 경구용 표적 항암제다. 

'경구용(經口用)'은, 주사가 아니라 입으로 먹는다는 뜻, '표적 항암제'란, 정상세포가 아닌 암세포만 표적으로 골라 공격하는 항암제라는 의미다. 그간의 항암제는 암세포만이 아니라 주변의 정상세포도 공격해 파괴했기에 부작용이 그만큼 컸는데 표적 항암제는 이런 부작용이 적다. 하지만 그만큼 환자의 상태에 딱 들어맞기도 쉽지 않다. 개발도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 개발 비용도 많이 든다. 제약사 입장에선 그런 만큼 더 비싸게 팔려고 한다. 환자는, 자기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항암제인지가 우선 관건이고, 만약 그 약이 그렇다면 우선은 복용하려 하지만 그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한달 약값 1천만 원...실손보험 있어서 다행?

잴코리의 가격은 1정에 17만원 정도, 하루에 보통 2정씩 먹는다. 하루 34만원, 한달 30일이면 980만원, 31일이면 1014만원이다. 국내 폐암환자 중에 60명 정도는 1년에 1억 2천만원 정도하는 약값을 부담하면서 잴코리를 먹고 있다고 한다. 환자 2백여 명은 가격 부담 때문에 이를 복용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이 가운데 있다. (그 사이 잴코리를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올리기 위한 약값 협상이 타결됐다. 5월부터는 환자가 부담할 약값이 더 싸질 것 같다.)

김씨가 처음 잴코리를 먹은 건 2013년 9월이다. 비용 부담 때문에 잴코리 복용을 미뤄오던 김씨는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오다 저산소증으로 위급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더 늦출 수가 없다는 의료진 판단에 김씨는 잴코리를 먹기 시작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기적처럼 상태가 빠르게 호전됐다. 김씨는 잴코리를 계속 먹기로 했고 먹어야 했다. 당시로서는 다행히도, 김씨에겐 암 발병 이전 가입한 실손보험이 있었다. 

김씨가 가입한 실손보험의 입원비 한도는 3천만 원, 통원비 한도는 하루 30만원이었다. 3천만 원을 지급받으면 그로부터 6개월 동안은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보험사 면책기간이었다. 김씨가 먹기 시작한 2013년 9월은 면책기간에 해당했고 12월부터 풀렸다. 그래서 김씨는 12월까지는 온전히 자기 돈으로 약값을 내다 12월부터 약값을 보험사에 청구했다. 12월에는 1081만원을 받았고 이중에서 잴코리 약값은 988만원이었다.  1월에는 1186만원을 받았다. 잴코리 약값은 1059만원이었다. 2월에는 받지 못했다. 

-지급해놓고 소송..."입원비 해당 안된다"

보험사는 김씨에 대해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가 12월과 1월에 받았던 잴코리 약값 2천만 원 중에 각각 이틀치 약값을 제외하고 1906만원은 보험사가 보상할  손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김씨가 부당이득을 챙겼다며 이를 청구하는 소송이었다. 

김씨가 가입한 보험의 약관에는 "보험기간 중 발생한 질병으로 인해 병원 등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경우 질병입원의료비를 보상한다"고 나와 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건 입원실료, 입원제비용, 수술비, 병실료차액이다. 입원제비용은 검사료, 방사선료, 투약 및 처방료, 주사료 등이다. 김씨는 12월과 1월 잴코리 약값이 입원제비용 중 투약 및 처방료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보험사에 청구했고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보험사는 두 달 동안 지급해놓고 다음달 소송을 냈다. 김씨의 약값이, 입원제비용 중 투약 및 처방료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보상할 수 없다는 게 보험사의 주장이다. 질병입원의료비는 입원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입원기간 중 투약하는 약물 비용은 보상하나 입원기간 처방을 받기는 했지만 퇴원 이후 복용할 약물에 대한 비용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즉, 입원해 처방받은 약이라 해도 입원해서 먹으면 입원비로 보상하지만 퇴원해서 먹으면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씨 "판례를 만들려고 소송했대요"

김씨는 보험사의 주장이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경구용 표적 항암제라고는 하지만 구토, 오심, 부종 등 부작용이 있어 그 병원에 입원해 복용하려 했지만 병상이 늘 부족한 대학병원 여건 때문에 의사가, 여유가 있는 다른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했고 그에 따라 요양병원에 입원해 약을 복용했다는 설명이다. 

"항암제를 한번이라도 드셔보지 않은 분들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약이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없다고 해도 항암제예요. 이걸 먹고 견디는건 제 몫이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건지 아냐고. 입원해야 하는데 큰 대학병원에서 장기입원이 안 된다는걸 아는데 거기 입원해서 먹어야만 된다고 말하는 건 보장을 안해준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는 거죠."

김씨는 이를 따지기 위해 보험사를 찾아갔다가 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약관에는 퇴원약 부분이 사실 어디에도 명시된 게 없어요. 보장을 하는 사항이나 보장을 안 하는 사항이나. 그런데 보험사에서 이런 판례를 만들려고 저한테 소송을 걸었다고 하는 거예요. 대놓고 그 얘기를 저한테 했어요. 이렇게 눈을 보고... 정말 어이가 없더라고요. 그냥 눈물이 팍 떨어지더라고요. 암 환자들은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또 내일 하루가 나한테 올 수 있는지 두려워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데 그런 암 환자한테 이런 판례를 만들려고 이런 소송을 저한테 걸었냐고 하니까 그 직원은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심영구 취재파일용-"퇴원약 보험금 지급 거절은 비윤리적, 반인권적 횡포" 

환자단체연합회는 4월 14일부터 금융감독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보험사를 관리감독하는 책임과 권한이 있는 금감원에 이런 민간보험사가 "표적항암제를 복용하는 암 환자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을 아예 거절하거나, 이미 지급한 보험금의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보험금 일부만 받고 나머지 보험금을 포기하겠다는 합의서를 쓰지 않으면 채무부존재확인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며 회유 또는 협박해 합의하는" 상황이 증가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다. 

연합회는, 이들 보험사 주장처럼 입원시 복용하는 약에만 보험금을 지급한다면 약값을 감당 못하는 환자가 지금보다도 더 늘어날 수 있고 불필요한 입원을 하려는 시도가 증가할 것이며 말기 암환자가 가정에서 경구용 항암제를 복용하며 보낼 수 있는 기회도 빼앗게 된다며 "비윤리적이고 반인권적인 횡포"라고 주장했다.

-보험사 입장은...

이메일을 통해 받은 보험사 입장을 그대로 옮긴다. 이 보험에서 입원비 보장은 3천만원 한도이기에 3개월 지급하면 6개월 면책기간이 있다. 그리고 다시 3개월은 지급해야 한다. 김씨에게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의 최대치를 대략 따져보면 1년에 6천만원 정도가 된다. 또 이런 사례가 더 있거나 늘어날 수 있으니, 보험사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방법이 있다면 이를 막아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 같다. 

"입원의료비 중 입원제비용이라 함은 '입원기간동안 발생한 비용'을 일컫는 것으로 입원기간동안 집중적인 치료와 회복을 위하여 사용된 진찰료, 투약 및 처방료 등을 의미한다 할 것인 바, 퇴원 당일 의사의 처방을 받아 구입한 약은 퇴원 이후 환자 스스로 복용할 수 있는 약물이므로 그에 소요된 비용은 입원기간 중 발생한 비용이라 할 수 없어 피고가 잴코리캡슐 구입을 위해 지출한 비용은 입원의료비 조항에 따라 보상되지 아니하는 바, 위 비용으로 피고에게 기 지급된 보험금 해당액은 반환함이 타당하다고 주장함.  피고의 경우와 같이 퇴원약으로 처방 받아 다른 병원에 입원(암의 치료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불가피하게 입원하는 경우는 예외라 하더라도)면서 복용하였다 하여 달리 판단할 여지는 없다고 주장함."

"이에 대해 판례는, 당사의 주장과 같이 약관에서 규정하고 있는 입원의료비 중 입원제비용은 ‘입원기간 동안 발생한 비용’이라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고, 퇴원 후에 복용할 목적으로 처방받고 그 비용을 지급하는 것은 입원제비용과 무관하다고 보았으며, 장기간 따로 요양하며 약을 복용할 목적으로 약을 처방 받는 것은 그 기간내에 병원으로 통원하며 그때 그때 약을 처방받는 것과 달리 볼 이유가 없으며 그러한 비용은 통원의료비로 보장하는 취지에 비추어 보면 달리 입원의료비로 보장할 이유가 없다고 봄."



-"아마 5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진 않겠지만..."

보험사가 김씨를 상대로 낸 소송은 아직도 1심이 진행 중이다. 보험사가 이기든 김씨가 이기든 패소한 쪽에서 항소하고 만약 대법원까지 가게 되면 5년 정도 걸릴 수 있다고 한다. 김씨는 이미 잴코리를 1년 넘게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곧 내성이 생길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 잴코리는 못 먹게 될 것이고 또 소송의 최종 결과까지 보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말했다. 

"합의하자는 얘기도 왔었어요. 5백만 원을 줄테니까 더 이상 보험금도 청구하지 말라고. 그런데 표적항암제는 앞으로도 계속 개발돼서 나올 것이고 보험사에서는 그 약값을 안 주려고 어떤 방법이든 쓸 것이고. 만약 제가 포기하거나 합의해서 그런 게 성립돼 버리면 너무나 보험사에서 쓰기 좋은 도구가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합의하지 않을 거라고, 소송도 포기하지 않을 거고, 끝까지 가서 하는 데까지는 할 거라고 했어요." 

"변호사님이 소송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5년 정도 걸릴거라고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저한테 5년이라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어요. 암 환자가 5개월도 보장이 안 된 상황에서 5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길기도 하고, 제가 그걸 잘할 수 있을까. 그 사이 몸이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그 사이에 젤코리를 못 먹게 될 게 분명하고 어떻게 5년동안 이 싸움을 하게 될까 라고 생각을 했죠."

"어쩌면 이런 소송으로 인해, 보험사에서 보이지 않게 주는 횡포 때문에, 우리가, 환자들이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릴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도 이와 똑같은 상황이 생기겠구나, 내가 포기하면 다른 사람이 또 이런 피해를 받을 수 있겠구나, 그래서 저는 합의하지 않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