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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천만원 약값이 37만원 됐는데.."너는 해당 안 돼!"




#배경 설명1- 잴코리

한달에 천만원씩 주고 약을 사먹는 환자들이 있다. 약값이 워낙 비싸다. 1정에 17만원 정도, 하루 2정씩 먹어서 한달이면 천만 원이 나온다. 진시황도 찾아오라 했다는 불로장생의 약이나 죽어가던 남성이 기사회생하는 약도 아니다. 폐암을 치료하는 화이자제약의 잴코리다. 

2011년 미국 FDA 승인을 받았고 2012년 한국에서도 허가받았다. 임상시험은 원래 3상까지 진행해야 허가 신청을 할 수 있는데 1상만 했는데도 특별히 허가받았다. 환자의 상태 따라 다르겠으나 이 약을 먹으니 폐암의 진행이 멈추는 등 극적인 효과를 본 환자가 많았다. 그래서 한번 먹기 시작한 환자들은 이 약을 계속 복용하려 한다. 

#배경설명2- 환자, 제약사, 복지부

약값에 대한 환자 대응은 보통 세 가지 정도다. 원래 돈이 많아서 제값 다 주고 먹는 경우, 당장 급하니 대출받고 때론 집을 팔아서라도 약을 사먹는 경우, 하루 2정인 용량을 줄여서 하루 1정씩만 먹거나(그래도 한달 5백) 임상시험 등을 찾아 어떻게든 비용 부담을 덜어서라도 약을 사먹는 경우. 도저히 감당이 안돼 약을 못 먹는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제약사는 연구개발비가 많이 든 데다 이 약을 먹는 환자는 수백, 수천 명 수준이기 때문에 약값을 저만큼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가면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이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되고 그러면 매출도 줄어들 게 뻔하다.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등재해, 즉 환자 입장에서는 건강보험 지원을 받아 약을 살 수 있도록 해, 좀더 안정적으로 약을 판매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보건복지부는, 모든 신약에 대해 건강보험 지원을 할 순 없기에 일단은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입장이다.). 약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그러면서도 지원한다면 건강보험 재정으로 감당할 만한 수준인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한달 천만원에서 37만원이 됐는데

이런 배경 아래 제약사와 보건복지부가 잴코리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위한 약가 협상을 벌였다. 협상 결과 1정에 12만 4천원으로 결정됐다. 등재 이전보다 4~5만원 싸진 값이다. 그래도 한달 750만원 수준이다. 건강보험 지원 대상이 되는 암 환자는 약값의 5%만 부담하면 되기 때문에 37만원 정도가 된다. 나머지 7백여 만원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한다. 복지부는 대상 환자 수 250명, 연간 재정은 140억 원 정도로 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은 당장 5월부터 한달에 37만원만 부담하면 잴코리를 먹을 수 있게 됐다.

협상이 성사된 데는 '위험분담금제'도 한몫 했다. 혜택 받는 환자 수나 효과에 비해 건강보험의 부담이 클 것으로 판단되는데 제약사는 고가의 약값을 고수하면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도 많았다. 제약사도 이후 판로가 제한되니 손해일 수 있다. 그래서 제약사에서 일정 비율의 금액을 부담해 건강보험과 리스크를 나눠갖자는 취지의 제도가 위험분담금제다. 환자 부담은 동일하나, 제약사가 일부를 부담하며(사실상 약값을 덜 받으며)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는 거다. 이번 잴코리 협상도 위험분담금제로 신청해 타결됐다. 제약사가 얼마를 부담하는지는 공개하지 않기로 해 알 수 없다. 다만 대상 환자 수와 건강보험 재정 규모 등으로 추정해보면 연간 30억 원이 좀 넘는 듯하다. 이런 것까지 감안하면 약값은 1정에 10만원 선 정도에서 협상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너는 해당 안 돼!"..허탈..분노

오랜 시간 끌어오던 협상이 타결됐고 약값 부담도 줄었지만 허탈하다 못해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원에서 제외된 환자들이다.
 
잴코리는 "역형성 림프종 인산화효소 (ALK) 양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ALK 양성인 비소세포폐암 환자에 대한 치료제로 허가받은 것이다. 이런 허가사항대로 건강보험 급여목록 등재도 결정됐다. 즉, ALK 양성 환자가 아니면 해당 안 된다. 전체 폐암환자 중 비소세포암 환자는 80~90%에 이르는데, 이중에서 ALK 양성은 5% 정도라고 한다. 단 5%만 한달 약값을 37만 원만 부담하게 된 것이다. 또 2차 이상 치료로 썼을 때만 해당한다. 제약사가 1차 치료제로 사용했을 때의 효과에 대한 자료는 제출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폐암환자인 김모씨는 ALK 양성이 아니라, ROS1 유전자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다. 다른 항암제로 치료를 받다 상태가 악화돼 잴코리를 복용했더니 거의 기적에 가까울 만큼 효과가 있어 1년 넘게 복용 중이다. 약값을 위해 대출받은 금액만 1억 원이 넘는다. 폐암 발병 이전에 가입했던 메리츠 화재의 보험에서 처음 두 달 약값은 보험금으로 나왔지만, 부담이 커질 것으로 판단한 보험사가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원래 약값에, 보험사의 소송까지 이중고를 겪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지원에서 제외됐다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또다른 폐암환자인 이모씨는 2013년 초 폐암 4기로 진단받고는 2년째 잴코리를 복용 중이다. 처음엔 하루 2정씩 복용해 한달 약값이 역시 천만 원 들었는데 작년부터는 경제 사정과 의사 권유 등으로 하루 1정으로 줄였다. 빚이 2억 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씨는 ALK 양성에는 해당하나 1차 치료에서부터 잴코리를 썼기 때문에 건강보험 지원 대상이 아니게 됐다. 

협상이 진행될 때 한결같은 마음으로 타결을 기대했기에 이들은 더욱 허탈감이 컸다. 한달 천만원 부담이 37만원 되는 줄 알았는데 "너는 해당 안된다"라니. (부담이 좀 줄기는 한다. 한달 750만원이 됐다.)

#"검토해보겠다"... 언제까지?

먼저 복지부, 복지부는 ALK 양성인데 1차 치료제로 썼던 환자들에 대한 자료는 제약사가 제출하지 않았기에 검토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2차 치료 이상에만 초점 맞춘 자료를 냈기에 그에 맞게 검토, 결정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1차 치료 사용까지 건보 지원을 받으려면 급여 기준을 확대해야 하는데 이 약은 위험분담을 조건으로 협상한 것이라 불가하다고 했다. 위험분담제는 급여 기준 확대를 할 수 없는 게 일반 원칙이라는 게 복지부 입장이다. 다만 ROS1 양성 환자인 경우엔 허가 범위를 초과한 의약품 사용으로 봐 의료기관이 신청하면 검토해볼 수는 있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엔 제약사, 제약사는 처음 출시될 때부터 환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보험 등재를 추진했는데 3년이 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서 결정한 것이라 지원 대상에 대해 제약사가 어떻게 할 수 없고 그들을 위한 구제책등도 이 문제에 대한 여러 주체가 있기 때문에 제약사 단독으로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나 검토해보겠노라고 했다. 

이전에도 그랬다. 희귀 난치성 질환 치료제는 늘 고가였고 제약사는 협상을 하다 결렬되면 아예 약을 출시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협상의 전술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고가의 약값을 부담하던 환자와 가족들은 파산하거나, 아니면 사망하거나... 주되게 문제 제기하던 당사자들이 사라지면서 그 이슈는 다시 묻히는 상황도 종종 벌어졌다.

복지부가 업무에 태만해서, 제약사가 자기네 잇속만 차려서 벌어진 상황은 아니다. 그네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순 없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절실한 환자들에게, 차분히, 점잖게, 장기적으로 검토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부담은 너무 크다. 현실은.. 가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