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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일기/북적북적

북적북적93/ 밤마다 꾸는 그 꿈...' 밤이 선생이다'

북적북적93 '밤이 선생이다' 듣기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꿈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밤이 짧아졌습니다. 곧 열대야가 찾아오면 잠 못 이루는 밤도 많겠지요. 마음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할 때 한숨 자고 나면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왠지 나아졌을 것 같은 기분, 밤의 위력이자 가르침일까 싶죠. 오늘 읽는 책은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입니다. 

 이 책은 문학비평가이면서 불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황현산 선생이 여기저기 기고했던 글들을 묶어 2013년에 낸 산문집입니다. 그해 여름 출간된 뒤 올해의 책으로 여러 곳에서 추천됐는데 최근에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김정숙 여사에게 선물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말을 더 적어볼까 하다 제가 여러 소리 늘어놓는 게 적절치 않은 듯하여 몇 편 이어서 읽겠습니다. 글을 쓴 시절과 시차가 있습니다만, 2017년 7월에도 울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다음에 올 것이다...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 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 세상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이명박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1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어디에 좋은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리를 당신의 사소한 사정에 비추어 마련하고 바꾸어가는 문화일 것이다. 문제는 결국 유연성인데 그것은 자신감의 표현과 다른 것이 아니다. 무협 영화 한 편만을 보더라도 최고의 고수는 가장 유연한 자이다."


 책의 제목은, 실제로 올빼미 생활을 하는 황현산 선생, 밤에 주로 집필 등 일을 하고 6시에 잠들어 정오쯤 일어나는 생활을 하신다죠, 황 선생이 프랑스 속담 La nuit porte conseil.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밤이 좋은 생각을 가져오지'를 번역한 이 속담, 고민에 빠진 사람에게 한 밤 자고 나면 해결책이 떠오를 것이라는 위로의 인사라고 하네요. 오늘 밤이 지나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됐으면 합니다. 


(출판사 난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