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회장님은 9천원, 노숙자는 3만 6천 원...불합리한 건강보험료



-62살 A씨는 한달 건강보험료로 8,920원, 약 9천 원을 낸다. 직장가입자인 A씨의 월 보수는 10만 원이라지만 보험료 산정엔 하한선인 28만 원이 적용됐다. 사업자가 절반을 부담하기에 A씨는 실제 보험료 만 8천 원에서 절반인 9천 원만 부담한다. 

A씨가 다니는 회사는 충북의 한 도시에 있는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다. 직원 70명에 매출액은 380억 원에 이르는 중견업체다. A씨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다. '회장'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런데 월 보수 10만 원이다?
 
A씨는 서울에 있는 9층짜리 빌딩을 소유했었고 (2006년에 자녀에게 증여, 과표는 53억 원), 서울 소재 아파트를 갖고 있고 (과표 3억 5천만 원), 서울 유명대학에서 경영인상까지 수상한 이력이 있다. 그런데 보험료는 9천 원?

-85살 B씨에겐 한달 건강보험료로 36,150원이 부과된다. 지역가입자인 B씨는 상가건물과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에 각 부과요소별로 점수를 내봤더니 이 만큼의 보험료가 책정됐다. 

B씨 소유인 상가건물은 폐허 상태로 방치돼 있다.(과표 1,167만원) 토지는 선산으로 별 재산가치가 없다.(과표 1,924만원) 그나마도 세금 체납 때문에 압류와 경매가 진행 중인 상태라 B씨는 재산권 행사를 전혀 할 수 없다. 

B씨는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이 상가와 토지 때문에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소득도 없고 집도 없어 노숙자로 지내며 무료급식 등으로 연명하는 중이다. 자녀도 없고 부인과는 오래 전 이혼했으며 건보료는 1년 넘게 체납하고 있다. 그런데 B씨의 건보료는 3만 6천 원?

-A씨와 B씨는 보험료를 징수하려는 건보공단 직원들에게 각각 큰소리를 쳤다. 사뭇 다른 내용의 큰소리다.

먼저, A씨. "보수가 진짜 10만원이 맞냐"는 질문에 "내가 진짜 받고 있는 월급이 10만 원이다"라며 큰소리 치고 있다. 월급 명세서까지 보여주면서 10만 원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게 공단 설명이다.

B씨, 공단에서 연체 건보료를 내라고 수차례 알리고 부동산 압류까지 들어갔더니  해당 지사로 찾아왔다. "당신들은 3만 6천원이 아무것도 아닌지 몰라도 나한테는 며칠 살 수 있는 돈이다. 밀린 보험료도 낼 돈 없다"고 큰소리치며 1시간 이상 난동을 부리다 돌아갔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지금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탓이다. 수차례, 수십차례 나왔던 지적이다. 위의 사례는 지난해 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간한 <건보료 부과 관련 유형별 민원 표본사례 모음집>에 있는 민원 128건 중에서 골라 발췌한 것이다.
 
현재 건보료는 크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에게 나눠 부과되는데 직장가입자는 2015년 기준 월 보수액의 6.07%를 보험료로 낸다. 절반은 사업자, 즉 회사가 부담한다. 하한선은 28만원, 상한선은 7,810만원이다. 여기에 보수 외 소득이 연 7200만원을 넘으면 이에 대한 보험료도 추가로 내야 한다.
 
지역가입자는 더 복잡하다. 연 소득이 5백만 원 이하면 전월세를 포함한 재산과 자동차, 성별, 연령 점수 등을 더해 나온 점수에 점수당 178원을 곱한 만큼이 건강보험료가 된다. 연 소득이 5백만 원을 초과하면소득과 재산, 자동차로 역시 부과요소별 점수를 내 여기 178원을 곱한다.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본인이 100% 내야 한다. 

이외에 소득이 없을 경우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되면 보험료를 전혀 내지 않는다. (피부양자로 등록되지 못하면 지역가입자로 보험료를 내야 함), 연금소득이 연간 4천만원을 넘는 경우에도 보험료를 내게 된다.

이렇게 되니, 실직해 소득이 줄거나 없어졌는데 부과기준이 재산 등으로 바뀌면서 보험료가 올라가는 경우도 생긴다.(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 또 자녀가 직장에 다니면 피부양자로 등록해 보험료를 내지 않았는데 자녀가 실직하면 보험료를 내게 되기도 한다. 가입 자격은 바뀌었을지라도, 내 재정 상황이 이전보다 나빠졌는데도 보험료는 오히려 올라버리는, 상식적으로 볼 때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위의 회장님처럼 이를 악용해 편법으로 보험료를 덜 내거나 내지 않는 사례도 잦다. 해마다 건강보험공단과 각 지사에 걸려오는 민원전화만 5천 7백만 건에 이르고 상당수는 직원들이 보기에도 일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다는 게 공단 직원들의 하소연이다.

-소득을 중심으로 부과체계를 좀더 단순화 내지는 단일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어떻든간에 개선은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지적인 만큼, 정부는 2013년 7월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구성했다.

1년 반 넘는 논의 과정을 거쳐 기획단은 이달 안에 개선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러고도 갈길은 멀다. 복지부는 이 보고서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재정 변화나 가입자 보험료 부담 변동 등을 분석하고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정부 최종 개편안을 만들 계획이다. 최종안이 상반기 안에 나오더라도 법이나 시행령 개정 등 절차를 거치면 빨라야 내년부터나 적용될 것 같다. 

건강보험의 혜택은 가입자면 누구나 동일하게 받고 있다. 부담능력에 따라 보험료가 차등 부과된다는 사회보험의 원리엔 대개 동의하지만 부담 능력의 측정과 차등 부과의 정도에는 형평성이 있고 공정해야 사회보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