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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2014 세월호 참사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

-"잊지 않기 위해 쓴다"고 했던 게 엊그제 일인데, 잊지 않고는 있으나 조금씩 잊혀져 간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이 희생된 그 '세월호 참사' 말이다. 그러다 만난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썼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 중 13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12월 말과 1월초, 뜻한 바는 아니었으나 8살, 9살 두 아이의 죽음에 대해 기사를 썼다. 

4년여 기간 백혈병 투병하다 의료진의 과실로 완치 직전 숨진 8살 종현이, 코피가 나서 병원에 갔다가 검사 중 사망한 9살 예강이에 대해, 아이의 죽음을 맞닥뜨린 아이들의 부모에 대해, 그리고 이후 이게 두 아이의 일 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너무나 운이 없는 우리 가족에게만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는, 의료사고 예방과 제대로 된 보상에 관한 법을 만들거나 고치기 위한 운동에 나선 그 부모와, 단체들에 대해, 그렇게 제정된 법과 아직 미완의 과제인 현재 상황에 대해.

길게는 4년 넘게, 짧아도 1년 동안 애끓는 마음으로 지내온 부모들의 얘기를 다시 끄집어내 듣고 정리하는 게 나도 쉽지만은 않았다.

[카드뉴스]수호천사

-얼마 뒤 어린이집 폭행 사태가 터졌다. 가히 충격적인 영상이었다. 1건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제보가 잇따랐고 관련 영상도 쏟아졌다. 온국민이 분노했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을 비롯, 책임과 권한 있는 이들은 모두 나서 말을 보태고 대책을 제시했다. 해당 교사는 구속됐다. 앞으로 아동 학대나 폭행 사건이 한번이라도 일어난 어린이집은 폐쇄한다는 방침도 세워졌다. 보육교사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조명도 이뤄졌다. 여러 모로 잘된 일이다. 

한편으론 조금 씁쓸했다. 극단적인 경우라 할 수도 있겠지만 종현이와 예강이의 죽음에도 그렇게 분노했었나.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더 충격적이었을까. 내 자녀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그 사건의 보편성이 더 와닿았기에 폭넓은 공감을 불러왔을 거란 건 안다. 머리론 그렇게 받아들이나 가슴은, 꼭 그렇진 않았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있다. 왜 저 제목이지 잠시 생각해보니, 아이들의 수학여행은 3박 4일이었고 4월 15일 화요일에 출발해 제주도엔 16일 수요일에 도착, 18일 금요일에 돌아올 예정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 책에 담긴 세월호 희생자 가족 인터뷰와 제목은 아래와 같다.
 
'나, 백살까지 살려구요'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씨
'죽은 뒤 지킨 딸의 약속, 아빠와 함께한 하늘여행'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유해종씨
'진도에서 왜 울고만 있었을까' 신승희 학생 어머니 전민주씨

(+승희 언니 승아의 이야기)
'세상에 딸 하고 나, 둘만 남겨졌는듸 그 아이를 잃었어유'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씨
'엄마하고 나하고는 연결되어 있잖아, 그래서 아픈 거야'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씨
'맨날 잔소리해서 가깝게 못 지낸 게 제일 후회스럽지'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최순화씨
'대통령과의 5분간의 통화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긴 고통'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씨
'진상규명은 우리 아들이 내준 숙제인데 안 할 수 없잖아요'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갈 딸을 걱정했는데 딸을 먼저 보냈어요' 

길채원 학생 어머니 허영무씨
'내 마음을 자꾸 키워가려고 해요' 이준우 학생 어머니 장순복씨
'진도에 빈 자리가 많아지니 더 못 떠나겠더라고요' 

임세희 학생 아버지 임종호씨
'오늘을 붙들어라. 되도록 내일로 미루지 말아라' 김다영 학생 아버지 김현동씨
'다른 아이들을 볼 수 있게 된 시간에 감사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갈 시간을 바라며' 김제훈 학생 어머니 이지연씨...


인권활동가, 작가, 대학원생 등 12명이 인터뷰했고, 만화가 8명이 그림을 그렸다.

심영구 취재파일용
-12월 말, 종현이 어머니 김영희씨를 만나 얘기 듣고 인터뷰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취재파일로 옮겼다. 내가 보태는 말 몇 마디보다 김영희씨 말씀이 훨씬 더 큰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느꼈기에 그리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1월 초 예강이 어머니 최윤주씨를 만난 뒤에도 인터뷰한 내용을 취재파일로 옮겨 작성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를 각각 인터뷰했지만 그때 받았던 느낌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뜻밖의 사고로 아이를 잃은 슬픔을 딛고, 내 아이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뛰어들게 된 과정과 노력들, 말씀을 그대로 옮기기만 해도 어설픈 기사보다 훨씬 나았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노선자씨, 유해종씨, 전민주씨, 김진철씨, 정부자씨 등 13명의 인터뷰를 읽으면서도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종현이요, 예강이였다. 그 부모들은 종현이 어머니, 예강이 어머니와 비슷했다. '세월호 참사'는, 종현이와 예강이 같은 아이들이 한날 한시에 3백 명이나 죽었다는 것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1년에 1명이었더라도 엄청났을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났으니 우리는 이를 참사라고 불렀다. 새삼 깨달았다.

심영구 취재파일용왜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해경은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나, 왜 선장과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나...
왜 종현이/예강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의료진은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나, 왜 병원은 의료사고를 인정하지 않나...

-세월호 참사는 이제 286일째다.

세월호 인양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3단계 조사 중 2단계 조사가 진행 중이다. 3차례 조사를 마친 뒤 자문과 검토작업을 거쳐 3월 말쯤 인양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416 가족협의회로 전환한 뒤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를 창립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설치되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2월에 출범한다. 

잊지 않기 위해 해야할 것들이 많다. 가장 쉬운 일 중 하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는 글의 일부를 옮긴다.

...우리는 안산의 곳곳, 분향소, 팽목항, 광화문, 국회, 청운동에서 가족들을 만났다.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했다. 304명이면 304개의 고통이 존재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무엇을 빼앗아갔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열세명의 인터뷰는 그동안 평범한 유가족들이 얼마나 잘 견디고 싸워왔는지에 대한 삶의 기록이다. 각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이번 인터뷰는 유가족들뿐 아니라 이 사회의 평범한 이들을 위한 작업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토록 쉽게 또다른 '유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유가족들의 삶을 깊게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아이들은 가고 없지만 유가족들의 몸부림이 헛된 기다림만은 아니었음을 약속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일독을 권한다. 세월호 참사 285일째인 2015년 1월 26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온전한 세월호 선체 인양', 실종자 수습, 진상 규명' 등을 촉구하며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행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