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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당 5g, 나트륨 1790mg...누구 보라는 영양정보인가요?



● 과자나 라면 같은 식품을 구입할 때 영양정보 꼼꼼히 살펴보십니까? 

저는 항상은 아니나, 종종 봅니다. 매번은 아니나 보고나면 가끔 머리가 아픕니다. 열량, 탄수화물, 당류, 단백질, 지방, 콜레스트롤, 나트륨, 칼슘, 철... 영양성분표만 보더라도 한가득입니다. 글씨도 작습니다. 노안이라도 오면 보이지도 않을 크깁니다. 이름도 어려운 첨가물까지 잔뜩 적힌 것부터는 보는 걸 포기합니다.

식품업체들이 이렇게 빽빽히 적어놓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법으로 정해져있기 때문이죠. 식품위생법엔 총리령으로 정한 식품에는 이 영양성분 등을 반드시 표시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소비자 알 권리, 그리고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이 영양성분 표시를 보고 자신이 사려는 식품 열량이 얼마인지, 당과 지방은 몇그램이 들었는지, 나트륨은 얼마나 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제품 선택에 도움이 될까요?

● 당 5g과 당 9g…지방 5g과 지방 1.3g의 차이는?

저는 흔히 요거트라고 하는 발효유 식품을 자주 구입해 먹습니다. 한 제품의 영양성분표를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열량 65kcal, 탄수화물 10g, 당류 9g, 단백질 3g, 지방 1.2g, 포화지방 0.7g, 트랜스지방 0g, 콜레스테롤 5mg, 나트륨 45mg, 칼슘 90mg이 들어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발효유 식품을 모아놓은 칸만 해도 십수 개의 제품이 '저를 데려가주세요' 하고 있는데 영양성분을 이렇게 들여다봐도 뭐가 나은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영양성분을 비교해봤더니 열량 약간, 당 약간, 지방 약간... 차이가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떤 제품엔 당이 9g 들었고, 다른 제품엔 당이 5g 들었으니 후자가 더 몸에 좋은 것일까요? 3g 정도 당을 덜 먹게 되니 그런 것일 수도 있죠. 이 제품엔 지방이 1.2g 들었는데 다른 제품엔 5g 들었으니 이 제품이 더 나은 걸까요? 그런 것 같기는 한데, 특정 영양성분이 오히려 부족해지는 건 아닐까요. 이 정도의 양 차이가 얼마나 의미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오늘 저녁 삼겹살 한 점 덜 먹는 게 훨씬 지방 섭취를 줄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겪게 되니 영양성분표는 잘 안 보게 됩니다. 도토리 키 재기 같은 영양성분을 비교하다 머리가 아파져 그저 먹던 걸 먹게 되는 거죠.

● '신호등 표시'가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신호등 표시제라는 표시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신호등처럼 빨강, 노랑, 녹색 이렇게 3가지 색상으로 영양성분을 표시하는 겁니다.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특별법에 따라 어린이기호식품(이 역시 총리령으로 정해졌습니다.)에 한해, 특정 영양성분(당, 지방, 포화지방, 나트륨)에 대해서는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신호등처럼 표시합니다. 당은 빨강, 지방은 노랑, 포화지방은 노랑, 나트륨은 녹색인 식품이 있다면 이 식품에는 지방과 포화지방은 보통 수준으로, 나트륨은 보통보다는 낮은 수준, 당은 높은 수준으로 들어있다는 거죠. 역시 선택에 있어서는 고심해야겠지만 직관적으로 쉽게 영양성분 함량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있습니다.(한눈에 쉽게 알 수 있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시행된지는 4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표시하는 식품은 37개 품목, 업체는 5곳에 불과합니다. 권고사항일 뿐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법을 개정해 의무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유야무야됐습니다. 빨강 표시가 된 제품은 소비자들이 기피하게 된다, 빨강 표시가 됐다고 해서 나쁜 식품은 아닌데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다, 뭐 그런 식품업계의 주장이(이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받아들여진 결과로 보입니다. 소비자에게 더 쉽게,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가 업계의 주장을 넘지 못했습니다.(당시 기사 보기 -> 어린이 비만 막자더니..말뿐인 신호등 표시제)

● 2017년부터 달라지는 나트륨 표시

짜게 먹는 게 문제라고 하죠. 특히 우리 전통식품이나 음식인 장류와 김치를 사용한 음식이 많이 짭니다. 나트륨 저감화를 곳곳에서 펼치는 분위기 덕분에, 나트륨 표시는 달라집니다. 4월 말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식품위생법에 따라 오는 2017년부터는 나트륨에 한해 비교표시가 시행됩니다. 제품군의 평균치를 조사한 뒤, 이보다 나트륨 함량이 높으면 평균 초과, 낮으면 평균 미만이라고 표시하는 겁니다. 

라면에 특히 나트륨 함량이 많다고 하죠. 수십년째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다는 농심 신라면은 나트륨 함량이 1790mg입니다. 신라면은 120g 기준이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만, 100g 기준 라면 제품군의 평균 나트륨 함량은 1415mg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나트륨이 평균보다 낮다, 높다, 보통이다 라고 색상이나 모양을 이용해 알기 쉽게 표시하는 거죠. 소비자들은 2017년부터 어떤 식품에서 나트륨만큼은 평균과 비교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 다른 영양성분에는 적용할 수 없나?

국회 논의과정에서 나트륨 외에 당과 지방 등에 대해서도 비교표시를 적용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이 반대했습니다. 아직 시기상조라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나트륨 비교표시만 시행하는 쪽으로 정리됐습니다.

올해 초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나트륨 표시제를 도입하려는 법 개정안이 제출된 걸 보고 식품의약품 안전처에 전화해 문의했더니 "이 법이 통과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서 쉽지 않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 그런가 보다 싶었죠.

유명무실한 신호등표시제에 대해 취재했을 때도 이를 의무화하는 건 어렵다는 게 여러 사람의 의견이었습니다. 그중에 나트륨에 한해서지만 거의 같은 취지의 제도가, 어린이기호식품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식품에 적용되게 됐습니다. 둘다 불과 몇달 차이의 일입니다.

비교표시제가 반드시 최선의 대안은 아닐 겁니다. 그렇잖아도 정보가 넘쳐나는 식품 포장지에 표시 하나가 더 늘었고, 나트륨이 평균보다 많다고 해서 꼭 몸에 좋지 않다는 보장도 없습니다.(적절한 소금 섭취가 오히려 건강에 더 좋다는 의견도 있더라고요.) 비교표시를 하면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될 것 같기도 하지만 더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행해보니 문제가 많아서 다시 되돌아갈 가능성도 없진 않겠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넘쳐나는 정보 속에, 더 알기 쉽게, 선택에 도움이 되도록 표시를 개선하려는 노력과 이를 제도화한 건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봅니다. 다른 영양성분 표시도 이런 취지에 따라 개선되길 희망합니다.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규제를 위해서 표시제가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