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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말로만 개선, 예산은 0원..."이것도 대책인가요?"



-'또 어린이집 폭행이야' 잠깐 생각하고는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난다. 절로 '악' 소리가 나왔다. 지난 1월 인천의 한 어린이집 교사가 4살 아이를 때리는 그 장면 말이다. 비슷한 제보와 이에 따른 보도가 잇따랐다. 그 전에도 있었다. 이 사건은 계속돼온 어린이집 폭행 사건 중 하나였다. 정도의 차는 있었으나 되풀이돼 온 문제라는 말이다. 

-왜 이런 일이 계속해서 생기는 걸까.

처벌과 감시를 강화해도 그치지 않는다. 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어린이집이 갑자기 크게 늘어난 것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학대 사건 비율 자체는 줄어들지만, 그 발생 건수는 늘어나는 그런 상황일까.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14년 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신고된 아동학대 9823건 중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건 2.78%인 273건이다. 보육교직원이 가해자인 경우는 2.71%인 267건이다. 신고 안된 사례도 많겠으나 여전히 주된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부모(82.1%), 장소는 자기 집(86.1%)이다. 비율로만 볼 때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례가 더 부각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보육교사의 성격이나 교육수준이 문제일까? 2014년 보육통계에 따르면 보육교직원은 31만명이나 된다. 일부 성격이 나쁜 사람도 있고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동 학대 사건을 일으키는 걸까? 그러면 보육교사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면 될 것이다. 꼭 고시를 통과한다고 해서 인성까지 보장되진 않겠지만 시험성적이 더 우수한 이들을 뽑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보육고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보육교사가 그만큼 매력적인 직업인가. 

-첫 기사가 나간지 이틀 만인 1월 16일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을 내놨다. 1월 27일엔 세부 대책을 발표했다. 아동학대 처벌 강화,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부모참여 활성화, 보육교사 자격관리 강화는 16일 대책과 같았으나 보육교사 근로여건 개선, 공공성 높은 보육인프라 확충, 수요자 맞춤형 보육·양육 지원이 추가됐다.

이중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으나 눈에 띈 건 보육교사 근로여건 개선이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의 원인 중 하나로 보육교사의 근로여건이 열악하다는 걸 정부가 인정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한신대 산학협력단에서 2013년 보육교사 514명을 상대로 조사했다. 교사들이 꼽은 아동 학대의 발생원인 첫째는 직무스트레스였다. 다음은 과다한 업무, 그 다음은 보육교사의 현재 정신건강 문제, 열악한 근무환경, 보육교사의 성격적 문제, 영유아 발달에 대한 이해 부족, 보육교사의 교육수준, 학대에 대한 교육 부족, 교사들 간의 갈등 순이었다. 1순위, 2순위, 3순위, 4순위까지가 모두 보육교사의 근로여건에 관한 것이었다. 

연구진은 부모 519명도 조사했는데 부모들의 경우엔 1순위 직무 스트레스는 같았으나, 그 다음은 보육교사의 성격적 문제, 보육교사의 현재 정신건강 문제를 들었다. 부모들은 보육교사 개인도 문제라고는 보고 있지만 보육교사의 근로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학대를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은 국회에서 지난 4월 30일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에 반영됐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같은 내용도 들어갔고, 보육교사의 근로여건 개선에 대해서는 이런 항목이 신설됐다.

제17조(보육교직원의 배치) ① 어린이집에는 보육교직원을 두어야 한다.  <개정 2011.6.7.>
② 어린이집에는 보육교사의 업무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보조교사 등을 둔다.  <신설 2015.5.18.>
③ 휴가 또는 보수교육 등으로 보육교사의 업무에 공백이 생기는 경우에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교사를 배치한다.  <신설 2015.5.18.>
④ 보육교직원 및 그 밖의 인력의 배치기준 등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개정 2008.2.29., 2010.1.18., 2011.6.7., 2015.5.18.>


개정 법이 공포되면 4개월 뒤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9월 중순부터 시행이다.


-7월 초 보건복지부는 복지부의 추가경정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메르스 사태가 아직도 종식되지 않은 상황이라 예산의 상당 부분은 메르스를 비롯한 감염병 관리와 예방 대책에 할애됐다. 보육 지원 강화 부분이 있기에 얼마나 반영됐나 봤더니 어린이집 CCTV 설치 지원(272억원)만 있었다. '아동학대 근절'이라고 붙여놓은 예산은 이게 전부였다. 잘못 봤나 싶어 90쪽 분량의 예산안을 두번 세번 찾아봤지만 아동학대 근절대책의 다른 내용에 대한 예산은 전무했다.


-1월 발표 때부터 우려는 있었다. 1월 28일 국회 보건복지위 회의에서는 보육시설 아동학대 긴급 현안보고가 진행됐다. 부담임교사(보조교사) 예산에 대해 복지부 담당 국장은 이렇게 답했다.

"부담임제 교사는 현재 3~5세 같은 경우에는 누리과정 교사라고 그래서 6700명이 있습니다. 보통 3~4개 반당 하나씩 되어 있는데요. 같은 시스템으로 하게 되면 0~2세반에 한 3만 7000명쯤 되게 되어 있고요. 결국은 예산은 전체적으로 한 3400억이 되게 되어 있고요. 국고만 하게 되면 한 1600억쯤 소요되게 됩니다.
(그 많은 예산이 가능하겠습니까?)
관계부처와 계속 협의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단계적으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개정 영유아 보육법이 막 통과된 뒤인 5월 초엔, 보조교사 3만 명, 대체교사 3천명 늘리고 예산은 합쳐서 1900억원 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1월 국회에서의 답변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불과 두 달 사이에 이 예산 전망은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6월 23일 복지부에서 마련한 추가경정 예산안 자료를 보면 처우개선비 지원 예산은 406억원으로, 보조교사 3만 3천 명 충원엔 374억원, 대체교사 920명 충원에 31억원 정도였다.(보조교사의 경우 인원은 오히려 더 늘었고 대체교사는 인원이 줄어들었고 예산도 줄었다. 인건비를 더 적게 책정한 것 같다.)

                                #보건복지부 추경예산안 초안 중 보육교사 처우개선 관련 부분


이나마도 기획재정부와 추경 예산 수요조사를 거친 뒤, 전부 삭감됐다. 그렇게 해서 아동학대 근절대책 예산은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예산 272억 원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살펴봐야할 건 영유아보육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영유아보육법이 개정됨에 따라 이를 시행하기 위한 복지부령과 규칙 개정안을 지난 6월 18일 입법예고했다. 개정 영유아보육법의 핵심 내용인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의 세부 내용(영유아의 주요 활동공간에 1대 이상 의무 설치, 130만 화소 이상, 60일 이상 저장용량 등)을 비롯해 처벌 강화에 대한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시행령에도, 시행규칙 개정안에도, 보육 교사 처우 개선에 대한 내용 또한 전혀 없었다. 


-보육교사들의 모임인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김호연 의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보육교사 처우 개선에 대해) 맨날 하는 얘기가 기획재정부에서 삭감했다는 거예요. 예산 짜는 것도 능력입니다. 어떻게 10년째 기재부와 협의가 안 됐다, 짤렸다 라고 얘기하는 걸까요. 10년째 핑계를 대고 있는데 이건 능력문제 아니냐, 자존심도 없는 거냐, 맨날 똑같은 얘기하는 거 말이에요.

"아동학대 사건이 2015년 1월에만 발생한 게 아니고요. 2005년부터 아동학대 범죄 특히나 보육시설 내의 아동학대가 증가했던 건 엄연한 사실이에요. 아동학대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건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나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가졌던 것은 칭찬할 만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것이 우려되는 거죠.

아동 학대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보육교사들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잖아요. 어린이집 CCTV 설치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되는 상황인데도 일방적으로 밀어부쳐서 법으로 만들었으면 최소한 교사 대 아동 비율 축소라든지 또는 가정어린이집 내에 어린이집 원장이 담임을 겸임하는 걸 못 하게 한다든지 이런 실질적으로 아동학대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예산의 한계라고 얘기하고 있죠. 효과가 있는지도 불분명하고 예산이 몇백 억씩 들어가는 CCTV 설치는 의무화하면서도 교사의 처우개선안은 밀어부치지 못하는 복지부의 무능력은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처우개선안은 국회 상임위 내에서 반발이 심하다 보니 여론을 의식하고 보육교사들의 눈치를 보다가 나온 얘기라고 봐요. 추경에서 반영하겠다고 한 것조차도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법에 명문화된 이상은대체교사 투입이라든지 영아반의 교사지원, 대체인력 투입과 관련된 안들도 훨씬 더 구체적인 안을 세워야 하는 거죠.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인식이 2010년 이후부터 대두됐거든요. 여론에 떠밀려서 처우 개선에 대한 정부 대책이 발표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의지가 있는지는 정책에 나타나는 거죠. 교사들이 과중한 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한 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이 전면적으로 실시되어야 해요. 예산상의 문제를 정부가 언제까지 이야기할 것인가, 고민이라도 하는지 한다면 그 흔적이라도 제발 복지부가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인천 아동학대 사건에서의 정부대책이 벌써 세번째예요. 2010년부터 나왔던 대책안과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베끼고 베끼고 베끼고 또다시 베끼고 베끼고 베끼고 똑같다는 거죠. 실현되지 않고 대책으로써 현실에 반영되지 않는 대책안이 무슨 대책이에요."


-인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지도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다이내믹 코리아'답다고 할지, 메르스를 비롯한 여러 사건 사고가 터지면서 벌써 그때의 충격은 희미해졌다. 2013년에도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랐다. 보건복지부는 그때도 처벌과 감시 강화, 보육교사 자격 강화 등이 담긴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고도 2015년에 다시 비슷한 유형의 아동학대 사건은 되풀이됐다.

거듭된 근절대책 발표와 시행으로도 근절되지 않는다면 우선은 제대로 시행이 되고 있는 건지, 다음엔 대책이 제대로 된 건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