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D 병원.. 늦어도 너무 늦었던 '병원명 공개'

관련 기사 보기 -> 뒤늦게 '메르스법' 통과…"소 잃고 외양간 고쳤다"



#5월 20일과 21일 메르스 발생 직후


한국의 메르스 환자 1번은 잘 알려졌듯 바레인을 다녀온 68세 남성이다. 이 남성은 5월 4일 입국했고, 11일 발열 및 기침 등 증상이 나타났으며, A 병원과 B 병원을 거쳐 당시 보도자료에는 C 병원이라고 나와 있던 세번째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는 20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익명의 병원들은 이후 아산 서울의원과 평택성모병원, 그리고 삼성서울병원으로 밝혀졌다. 이때만 해도 병원들이 어디인지는 큰 관심은 아니었다.

바로 그날밤 1번 환자의 부인이 2번 환자로, 다음날 1번과 같은 병실을 썼던 76세 남성은 3번 환자로 확진됐다.


#슈퍼전파자 14번이 온 그날도 A, B, C 병원

며칠 추가 감염자가 나오지 않다가 3번 환자의 딸이 4번, 1번 환자를 진료했던 또다른 C 병원의 의사가 5번 확진자가 됐다. C 병원은 서울 강동구의 365열린의원이었다. 병원 수가 늘어난 데다 삼성서울병원은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여 A, B, C에서도 제외됐다. A는 아산서울의원, B는 평택성모병원, C는 365열린의원, 병원명은 비공개였다. 여기까지는 5월 27일 상황이다. 이날 오후, 아직 확진 판정을 받기 전인 14번 환자는 평택을 떠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으로 왔다. 


#"특정 병원보다는 확산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중요"

5월 28일부터 확진자가 매일 추가됐다. 1번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있던 환자부터, A와 B 병원의 간호사, 병문안 왔던 가족들의 감염 사실이 연달아 확인됐다. 주로 카카오톡을 통해 병원 명단이 계속 돌았다.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있었다. 정부의 입장은 병원명 공개 불가였다.

5월 30일 병원명을 공개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정부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 여러분도 어떤 특정 병원에서 일어났냐보다는 그런 일이 좀더 확산되지 않도록 주의를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특정 병원명을 밝힐 경우에는 더 큰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대부분 전문가들도 그렇게 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5월 31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1주일간이 메르스의 확산이냐 진정이냐의 기로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3차 감염을 통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전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때는 이미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사흘간(5/27~29) 머물면서 바이러스를 전파한 뒤였다. 그가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된 채로 온 줄 몰랐던 삼성 측은 아무런 조치 없이 14번 환자를 다른 환자와 의료진, 보호자, 방문객과 같은 공간에 뒀고, 응급실과 그 주변에서 대규모 감염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사실이 확인된 건 물론 한참 뒤의 일이다.

허나 14번 환자는 5월 30일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때부터 응급실 소독과 밀접 접촉자 격리 조치는 진행됐다. 정부는 그럼에도 3차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한다는 발표를 한 셈이다.


#3차 감염 확산·첫 사망...그래도 '공개 불가'

다음날인 6월 1일 당국이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삼성서울병원에서 첫 3차 감염자가 나왔다. 이날 밤엔 6번 환자와 25번 환자가 사망했다. 메르스 감염자 중에 첫 사망사례였다. 16번 환자를 통한 3차 감염자도 2명이나 발생했다. 정부가 제공한 자료에는 A, B, C에 이어 D 병원이 등장했다. 16번 환자가 입원했던 대전의 병원으로 나중에 건양대병원으로 밝혀졌다.  전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해 3차 감염을 막겠다던 장관의 이틀 전 발언이 무색해졌으나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다음은 6월 3일 정부 브리핑에서 나온 설명이다.

"의료기관의 이름을 공개하라는 논리는 잘못 해석이 되면 거기에 이름이 없는 의료기관만 사실은 빠져 나가는, 어떻게 보면 좀 이기주의적인 측면도 배제할 수가 없고, 명단이 공개됐을 때 그 의료기관에 벌어지고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보다는 훨씬 더 높은 강도로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또 편견이 야기가 될 것이 눈에 보이듯 뻔하기 때문에..."

"의료기관명의 공개는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여러 가지 불합리한 불안정과 공포를 야기시키고, 무엇보다도 해당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있거나 앞으로 이용해야 될 많은, 심지어 중증환자에게까지도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 DB를 구축해서 정교한 명단을 파악하고, 동시에 외래나 입원이나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에게 일일이 문진을 통해서 그 시기에 특정한 의료기관에 노출이 안됐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진료를 진행하게끔 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또 사태를 이해를 구하면서 진행할 수 있지 않겠느냐.."


확진자와 접촉자 DB를 구축해서 의료기관에 공유하도록 하겠다는 대책이 대신 제시된 게 조금 달라졌다. 


#사라진 'D 병원'...뒤바뀐 D와 E



6월 2일 자료에서는 23번, 24번 환자가 발생한 병원이 D 병원, 건양대병원이었다. 그런데 6월 3일 자료에서는 E, F 병원이 추가됐는데 D 병원은 빠져 있었다. 전날 자료에 등장했던 D 병원은, E 병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E, F보다 순서상 먼저인 병원이 있는데 6월 3일 자료에는 빠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D 병원은 6월 4일 자료에서 나온다. 그런데도 D 병원의 첫 환자는 35번이다. 23번, 24번 환자는 E 병원, 30번 환자는 F 병원인데 말이다.

6월 3일 자료에서 사라진 'D 병원'은 삼성서울병원이었다. 이날 대형병원 의사가 3차 감염됐는데 아직 정부가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기사를 썼다. 이 대형병원이 D 병원이자, 삼성서울병원이었다.


정부는, 2일엔 건양대병원이 D 병원이라고 해놓고, 3일엔 E 병원으로 바꿨다.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니셜 붙이는 것도 제멋대로였다. 역시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삼성서울병원 때문이었던 것이다. F 병원은 대청병원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정부는 당연하게도 알고 있었고 또 재고 있었던 것 같다. D병원, 즉 삼성서울병원에서의 첫 감염을 어떻게 할지... 아니면 재검사를 통해 음성이 나오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앞뒤 정황을 전부 파악하기엔 단서가 부족했으나 삼성서울병원이라서 정부가 은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기에는 충분했다. 
 
6월 4일, 정부는 삼성서울병원의 의사가 감염됐다는 사실을 사흘 만에 공개했다. 이때도 그저 'D 병원'이었다. 14번 확진자로 인한 감염이라는 내용이 처음 등장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대규모 감염 사태가 우려된다는 발표 같은 건 없었다. 이날 밤 서울시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제의 D병원 의사가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많은 사람과 접촉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의 기자회견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저마다 메르스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 정보 공개에 나서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평택성모병원발 감염은 끝나가는데...그때서야 공개

6월 5일 정부는 비로소 병원 1곳의 이름을 공개했다. B병원이라고만 하던 평택성모병원이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병원 이름을 공개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시설을 폐쇄하고 열흘이 지나서 또 일정 소독이 된 이후에도 바이러스가 검출되고 있는 사실을 보면 이곳의 바이러스의 공포가 상당히 컸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병원에서는 밀접접촉자뿐만이 아니라 간접접촉자 분들까지도 전부 체크업 하고 파악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 어제 T/F에서의 결론이었습니다. 이 결론에 따라서 우리가 이것을 발표하고 그 기간 중에 여기 병원을 방문하신 분들을 우리가 전수조사를 하고 모니터링을 하겠다, 하고 또 빨리 신속하게 의료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면 대응을 하겠다, 하는 의지로써 이런 걸 발표하게 됐습니다."

"현재까지는 이렇게 대량 발생이 한 병원에서 이루어졌었습니다만, 앞으로도 그러한 것들이 확산되는 그런 패턴이 있으면 우리들이 동일하게 이것을 공개하고 동일한 조치를 할 것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후 해석이지만 삼성서울병원의 존재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6월 6일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는 3명이 더 나왔고, 그때까지도 D 병원이었던 삼성서울병원 감염자는 5명이 추가됐다. 6월 7일 평택성모병원 발 감염자는 역시 3명 추가, D 병원 감염자는 10명이 더 나왔다. 평택성모병원의 감염자는 6월 7일을 끝으로 더 나오지 않았다. 장관이 이름을 공개한 뒤 이틀 만에 평택성모병원발 메르스 감염은 종식된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감염자는 6월 7일 새벽까지 17명이었고 그 다음날엔 그만큼의 확진자 17명이 더 추가됐다.


#발생 18일 만에 경유 병원 전체 공개

정부는 6월 7일, 최경환 총리대행이 나서 그때까지 메르스 확진자가 거쳐간 병원 24곳의 명단을 전부 공개하기에 이른다.  당시 총리대행의 발표문 내용이다.

"확진환자가 나온 병원명단 등의 정보를 국민안전 확보 차원에서 공개하고자 합니다. 메르스의 실제 감염경로는 병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병원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지난 6월 3일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환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투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지시하셨고,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신고폭증에 대비한 신고체계 구축 및 격리병상 추가 확보 등 사전준비를 마치고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6월 7일 명단 공개 덕분에 추가 감염자가 덜 나온 부분도 분명히 있을테다.

[슬라이드 포토] '메르스 관련' 긴급 현안질문…답변하는 문형표 장관
#늦어도 너무 늦었던 '병원명 공개'

슈퍼전파자로 꼽히는 14번 환자나 16번 환자 모두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됐지만 삼성서울병원이나 대청병원, 건양대병원 등은 메르스 감염 우려가 있다는 건 까맣게 몰랐다. 그들이 다녀간 시기는 5월 27~29일, 5월 28~30일 등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감염됐던 사람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진 뒤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일선 병원은 모르고 당했다. 

문형표 장관은, 메르스의 전파력을 잘못 판단해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며 5월 31일에 한 차례 사과를 했다. 이후에는 역시 같은 이유로, 병원명 공개를 늦게 하게 됐다고 판단 착오를 시인했다. 6월 2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선 송구스럽다며 사과했고, 24일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는 잘못을 인정했다. 

"우리가 당초에 설정했던 전제가 다 틀렸구나'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의 (비공개) 방침을 바꿨던 것입니다."

사후 약방문, 망양보뢰 격이나, 국회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6월 초 일제히 발의한 감염병 관리법 개정안을 논의해 6월 25일 밤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감염병 확산시 환자의 이동경로, 수단, 진료기관, 접촉자 현황 등의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하고 국가와 지자체는 감염병 감시 예방을 위한 정보를 의료기관 및 의료인단체와 공유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신종 감염병 신속 지정, 방역관-역학조사관 현장조치권 강화, 역학조사관 확보 등도 담겨 있다.)  

6월 27일 현재 메르스 확진자는 182명, 사망자는 31명에 이른다. 앞으로 평택성모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처럼 대규모 감염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산발적, 소규모로 감염자는 당분간 나올 것 같다. 정부의 병원명 공개가 더 일찍 이뤄졌다면 확진자 수는, 그리고 사망자 수는 훨씬 줄어들 수 있지 않았을까. 가정에 불과하나 만약 그랬더라면 14번이나 16번, 76번 같은 슈퍼전파자의 출현은 막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