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기 => 지하철 '스크린도어' 어디는 있고 어디는 없고…왜?
2005년 5월, 화창했던 어느날 아침, 경기 동부를 담당했던 나는 분당선 서현역으로 달려가야 했다. 모녀가 투신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였다. 세파에 지친 30대 엄마가 어린 딸을 데리고 뛰어들었나 싶었는데 가면서 확인해보니 80대, 60대 모녀라고 했다.
현장을 둘러본 뒤 역무실에서 투신 장면이 담긴 CCTV를 봤다. 그때 적어놓은 게 아직 남아있었다. 아래는 그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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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0분, 두 사람이 화면에 보인다.
안경을 쓴 편안한 인상의 60대 아줌마, 머리 하얀, 전형적인 모습의 할머니,
9시 34분, 여전히 서성이고 있다.
9시 35분, 열차가 멀리 보인다.
아줌마가 조금씩 앞으로 나온다.
안전선 앞에 섰다.
아줌마와 할머니 얼굴이 열차 불빛을 받아 벌겋게 물든다.
아줌마는 열차 앞으로 사라졌고 할머니는 열차에 부딪친 뒤 승강장으로 튕겨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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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앓았던 노모, 우울증이었던 딸, "여보, 정말 미안해요, 엄마는 내가 데려가요"라고 적힌 유서. 이런 정도의 내용을 담아 건조하게 기사를 썼다.
2005년엔 유난히 지하철 투신 사고가 많았다. 그 장면이 담긴 CCTV가 있으면 기사를 썼다. 여러 번 기사를 쓰면서 자살을 막을 방법은 없는지, 누군가 노력은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스크린도어를 알게 된 건 그때다.
스크린도어(Platform Screen Door), PSD, 우리말로 안전문이라고도 부른다. 한국에선 2004년 광주 지하철에 처음 설치됐다. 2005년만 해도 서울 지하철엔 거의 없었다. 당시 지하철은 만성 적자에 방만 경영으로 질타당하고 있었다.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면 사고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엔 모두 동의했지만 당시에도 비용이 많이 들다보니 '비용 대비 효과는 의문'이라는 주장이 늘 따라다녔다. 또 자살을 하려고 맘먹은 이가 스크린도어를 설치한다고 해서 자살 안하겠냐, 다른 데 가서라도 하지 않겠냐, 따라서 자살 방지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뒤따랐다.
아마 인파에 떠밀려 선로에 추락해 사망한 사고 이후였을까, 어느 순간 스크린도어 설치 여론이 비등했다.결국 2009년 12월에는, 서울 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의 모든 승강장에 스크린도어를 설치됐다. 1~8호선 승강장 100% 설치 완료다.
효과가 있었을까. 확연하게 나타났다.
투신/실족 사고가 현격하게 줄었다. 100% 설치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봤더니, 2008년과 2009년을 합쳐 투신/실족 등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56명이었는데 2010년 이후엔 단 2명뿐이었다.
자살하려 했던 이들이, 지하철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자살했을까?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지하철 사고는 스크린도어 설치 뒤 획기적으로 감소했다는 거다.
올해도 지하철 투신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찾아보니 9월과 10월에도 4건이나 발생했다. 모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승강장에서 난 사고였다. 또다른 공통점은 코레일, 한국철도공사 관할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잠깐 정리해야할 건 수도권 도시철도 운영주체다. 헷갈리기 쉽다.
먼저 1~4호선은 서울 메트로에서 운행, 관리한다. 다만 1호선에선 서울역~청량리 구간만 서울 메트로 관할이고 그외엔 모두 코레일 관할이다. 또 순환선인 2호선은 전부 메트로 관할이나, 3호선은 일산선(지축-대화) 전인 구파발까지, 4호선은 안산.과천선(남태령-오이도) 전인 사당까지가 메트로 관할이다. 그저 1~4호선이라고 부르지만 운영하는 공사는 다르다. 여기에 인천, 천안까지 가는 경인선, 경부선, 문산까지 다니는 경의선, 용산-용문 구간인 중앙선, 선릉-기흥의 분당선, 상봉-춘천의 경춘선까지가 다 코레일 관할이다. 이외에 9호선과 신분당선은 각각 민자 회사가 맡고 있다.
예전엔 국철이라고 불렀던 게 이제는 다 1호선이라고 부르듯 시민 입장에선 메트로든 코레일이든 중요하지 않다. 빠르고 안전하면 된다. 운영 주체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스크린도어는 그렇지 않다. 같은 역사 안에 있더라도 코레일 노선 승강장을 이용하면 스크린도어로 보호받을 가능성이 낮아진다. 수도권 코레일 구간 승강장의 설치율은 26%, 4분의 1 정도에만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예산이 필요하다. 서울 지하철에 설치할 때는 승강장 1곳에 평균 16억 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큰 돈이다. 결국은 이 문제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느냐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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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후 서현역에 가본 적은 없다. 검색해보니 코레일 관할이지만 서현역에도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 설치 이후 서현역에서는 투신/실족 사고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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