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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서울을 거닐다 생각

갑자기 튀어나와 피할 수 없었다고요?

*블로그 만들면서 작년과 올해 썼던 취재 뒷얘기(취재파일)을 옮깁니다.

2013. 5.4.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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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이가 튀어나왔어요. 그런 상황이면 누구도 피하지 못했을 겁니다."

4월 28일엔 충북 청주에서, 앞서 4월 16일엔 서울 상도동에서 4살, 5살 아이가 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두 사고 모두 비슷한 취지로 진술이 나왔습니다. 거짓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상황이 그랬겠죠.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둘다 스쿨 존에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스쿨 존', 어린이 보호구역을 만든 이유는 그만큼 그 지역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어린 아이들이 많습니다. 초등학교, 유치원, 100명 이상 어린이집과 학원 주변이니까요. 또 자주 오갑니다. 등하교, 등하원할 때 수시로 오고 갑니다. 그런데 차가 다닙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학교 앞이 왕복 8차선 도로인 경우도 있으니까요. 어린아이들은 대개 성인에 비해 부주의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잘 뛰어다니죠. 그래서 성인들이, 차량 운전자들이 이 지역에서만큼은 더욱 주의하고 조심하자고 만든 게 스쿨 존입니다.

아이들은 수시로 튀어나옵니다. 사고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봐도 이런 상황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고를 당한 아이들이 차 앞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보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주차돼 있던 차에 가려서 바로 앞에 올 때까지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제가 차를 몰고 있었더라도 과연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기에 만든 게 스쿨 존입니다. 그렇기에 스쿨존에서는 시속 30km를 초과해 달리지 못하게 한 겁니다. 또 주차와 정차 자체를 금지시켰던 거죠. 부주의하고 까불까불한 어린아이들이 수시로 튀어나오기 때문에, 혹시라도 차 앞으로 뛰어들더라도 바로 멈출 수 있도록, 멈춰있는 차에 시야가 가리지 않도록. 운전자들의 해명은 변명입니다. "갑자기 아이가 튀어나와서 피할 수 없었다"니요. "갑자기 아이가 튀어나와도 피하"라고 만든 곳이 스쿨 존입니다.

그러나 스쿨 존 사고, 2010년엔 733건, 2011년엔 751건이나 났습니다. 2010년엔 9명, 2011년엔 10명이 숨졌습니다. 작년엔 조금 줄었지만 그래도 사고가 511건, 그중 6명이 사망했습니다. 4월달에도 2명이 숨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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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가봤습니다. 학교 정문을 중심으로 400미터 정도 지점까지가 스쿨 존으로 지정돼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스쿨존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하교가 시작되는 오후 2시 즈음이 되자 학교 직원들이 나와 길을 막기 시작합니다. 학교 정문까지 이르는 3개 방면 길목을 차단했습니다. 아예 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겁니다.

이 스쿨존은 '등하굣길 차량통행 제한'이라는 추가 옵션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오전 7시부터 8시 반까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자동차는 다닐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적어도 스쿨존에서는 차도든 인도든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학교를 오고 또 집에 갑니다. 사고가 날 가능성 자체가 차단됐습니다.

물론 모든 스쿨존에 적용할 순 없습니다. 이 학교는 대로변이 아니라 좀더 안쪽 이면도로 근처에 있는 학교였습니다. 차들도 많이 다니지 않는데다 우회할 길도 있는 곳이었습니다. 주변 교통 흐름에 지장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시 차량통행 제한이 가능했던 겁니다. 이를테면 스쿨존 내에 상가라도 들어서 있었다면 상인들 항의가 엄청났을테죠. 현재 서울에는 단 20개 학교에만 이런 통행 제한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10개 학교 이상을 늘리겠다는데 대폭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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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의 다른 스쿨존, 여기는 규모가 좀 있는 어린이집 주변이긴 하지만 도로 자체가 넓진 않았습니다. 주변에 레스토랑이나 여타 가게들도 있다보니 차들도 심심찮게 오가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다를까 보니 도로의 색깔이 달랐습니다. 도로 자체는 차량 2대가 나란히 지나갈 정도의 넓이입니다. 여기에 가운데 노란선이라도 그어놨다면 여지없이 왕복 2차선 도로가 됐겠죠. 그런데 이 도로는 3분의 1 정도 넓이를 주황색으로 칠해놨습니다. 나머지 3분의 2는 검은 아스팔트 그대로. 딱 보면 주황색으로 칠해놓은 곳은 인도 같고 나머지 검은 부분은 차도 같습니다. 실제로 오가는 차들은 주황색 부분으로 거의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인도겠거니 하면서 차도겠거니 싶은 부분으로만 다니고 있었습니다.

운전자들 입장에서는 '낚인' 거죠. 구청에서는 '디자인 포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로 인도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인도 효과를 내서 어린이 안전을 높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런 디자인 포장 역시 모든 곳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인도를 만들 수 있다면 만드는 게 낫겠죠. 충분한 공간이 부족했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편법'이 적용된 겁니다.

어떤 분이, 또는 어떤 집단이나 부서에서 이런 식으로 발상하고 또 실천해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스쿨존 확대, 어린이 안전교육 강화, 운전자 처벌 강화, 이런 식으로 계획 세우고 또 집행하라고 지시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조치겠죠.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간 세심한 행정이 더해진다면 효과는 극대화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스쿨존은 사고존' 이런 식의 기사보다는 '스쿨존은 세이프존' 이런 기사를 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