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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서울을 거닐다 생각

블랙홀이 돼 가는 무상보육(2)

*블로그 만들면서 올해 쓴 취재 뒷얘기 옮깁니다.

2013.5.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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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취재파일에 이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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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돈이 없"어진 이유는, 무상보육에 투입될 돈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예상 외로 크게 늘어나서이기도 합니다.

올해 집행할 예산은 지난해 미리 편성하죠. 지난해 예산을 짤 때만 해도 무상보육 대상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보육료의 경우엔 소득하위 70%까지, 양육수당은 소득하위 15%까지였는데 이게 대선 국면을 타면서 확 바뀌더니 올해 초 국회에서 전 계층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원래 예산안은 2012년 4조 6757억 원이었는데 확정된 예산은 7조 949억원, 무려 2조 4196억원이 늘어난 겁니다.

서울은 부담이 더 커졌습니다. 전국 영유아 280만 명의 약 18%, 50만 명이 서울에 있는데다 작년 예산 짤 때는 해당이 안됐던 소득상위 30%, 21만 명도 지급 대상이 됐습니다. 이들 대다수가 서울에 거주합니다. 신규 지급자의 다수가 서울에 있다는 거죠. 여기에 이런 정부 사업에서는 국비 보조를 받게 돼 있는데 다른 자치단체는 국비와 지방비 비율이 5:5인데 서울만 재정 여건이 좀 낫다해서 2:8입니다. 이렇게 종합해보니 서울시가 올해 무상보육과 관련해 부담해야 할 돈은 3천 708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이런 얘기는 올초부터 계속 나왔습니다. 그리고 3월부터 무상보육 수당을 실제로 지급해보니 우려했던 상황은 현실이 됐습니다. 서울시로서는 정부에 계속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한편, 줄일 수 있는 사업은 최대한 줄여가는 수밖에 없게 된 상황입니다. 다자녀 수당, 마침 조례에도 근거 조항이 있으니 지급 중단한 거죠. 보육 관련 다른 사업들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무상보육이라는 블랙홀에 모두가 빨려들어가는 모양새입니다.무상보육#
저마다의 입장 따라 조금씩 해법이 차이가 납니다.

국회에서는 먼저 무상보육을 전면 시행하는 영유아 보육법 개정안을 올해 초 통과시키면서 부대 의견으로 지방비 부족분에 대해 정부가 5천607억원을 지원하도록 했습니다. 국고보조율을 국비: 지방비 7:3으로, 서울은 4:6으로 바꾸는 내용의 관련 법(또 영유아 보육법) 개정안이 지난해 발의돼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입니다.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5월 7일인데 통과는 어려워보입니다.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다 해도 6개월 뒤부터 시행이라 어차피 올해 적용은 힘들어 보입니다만, 통과되면 내년엔 좀 나아지겠죠.)

정부는 부족한 돈을 전부 지원해줄 수는 없고 일정액은 줄테니 나머지는 각 지자체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해결하라는 입장입니다. 지자체는 정부 주도 사업인데다 지난해 정부가 지자체 재정부담이 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추경이든 특별교부세든 정부 지원금을 늘려달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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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면 앞으로 무상보육은 어떻게 될까요? 서울시 계산으로는 보육료는 6월에서 10월, 양육수당은 5월에서 7월 사이에 서울 전 자치구에서 중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준비해놓은 예산이 똑 떨어지는 시점이 그렇습니다.
무상보육양육수당부터 보면 확보해놓은 예산이 먼저 종로, 중구, 서초, 강남구부터 떨어집니다. 4월까지는 다 줄 수 있었는데 5월에는 다 줄 수 없습니다. 매월 25일 지급인데 이달 25일에 지급 못받는 가정도 생길 수 있습니다. 6월에는 용산, 성동 등 19개 구 차례입니다. 7월이면 나머지 강북과 금천까지 잔고 부족입니다.

영유아보육료는 5월까지는 버티는데 6월이 되면 중구, 강남구부터 줄 돈이 없습니다. 7월엔 종로, 관악, 8월엔 용산, 성동, 마포, 동작, 서초, 송파, 강동... 10월이면 역시 전부 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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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중단이야 하겠냐'는 생각을 정부 관계자들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은 듭니다.

내년엔 또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재선, 삼선 도전하는 자치단체장들 많을텐데 선거 앞두고 무상보육을 중단한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막론하고 악몽 같은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확보한 예산은 떨어졌는데 계속 지급하려면 별 수 없이 다른 데서 끌어와야 합니다. 추경을 편성하든 예비비를 당겨쓰든, 다른 사업을 중단하든, 그렇게 되는 것도 역시 악몽 같은 상황입니다. 악몽이라는 게 덜 드러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대란이 일어날지, 아니면 극적인 해결책이 마련될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합니다. 작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도 극적으로 봉합이 됐습니다. 올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죠. 문제는 한번 확대한 복지라는 건 이제 '기본값'이 되기 때문에 줄여나가기란 정말로 어렵다는 겁니다. 매년 되풀이될 가능성 농후합니다. 특단의 대책이든 적절한 타협책이든 대란이 나기 전에 해법이 나오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