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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서울을 거닐다 생각

블랙홀이 돼 가는 무상보육(1)

*블로그 만들면서 올해 쓴 취재 뒷얘기(취재파일)을 옮깁니다.
2013.5.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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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10만원 주던 걸 이제부턴 20만원씩 주겠다!" 

당연히 환영할 일이죠. 그런데 처음에 주던 10만원은 "남들 안하는 일 하면서 고생하니까 조금이라도 도움되도록 주겠다"던 거였는데 이건 없어지고 대신 "모든 사람에게 20만원씩 주겠다"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박탈감 느끼는 일도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다자녀 수당과 무상보육 수당을 놓고 하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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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2005년 1.08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뒤 2012년엔 1.30명으로 조금 회복됐습니다. 1.30명은 초 저출산의 기준선이니까 회복됐다고 해도 역시 저출산 시대입니다. 각종 출산 장려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개별 가정에서 가장 와닿는 정책은 아무래도 '현금' 지급이겠죠. 서울시에선 '다자녀 가족의 영유아 양육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2008년부터 '셋째 아이부터'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지급해왔습니다.(보육료는 보육시설 다닐 때, 양육수당은 가정에서 키울 때 지급합니다.) 보육료는 서울시 기준보육료의 50% 내, 양육수당은 월 10만원입니다.

5년째 지급이 이뤄지다보니 서울에 살며 셋째 출산을 생각하는 가정에선, 큰 돈은 아니겠지만 조금은 이 혜택을 염두에 두었겠죠. 그런데 3월부터 돌연 지급이 중단됐습니다. 중단 이유는 3월부터 전면 '무상보육'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무상보육이라는 말엔 좀 어폐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수당 얼마를 준다고 보육비용이 더 들지 않는 것도 아닌데, 과한 용어 같습니다.)

무상보육 대상은 계속 확대돼 왔는데 올해 3월부터는 만 5세 이하 영유아는 '전부' 지급 대상자가 됐습니다. 양육수당은 월령에 따라 최대 20만원, 보육료는 최대 39만 4천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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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말씀드렸던 것처럼, 서울에 살면서 셋째 아이 이상을 둔 가정은(만 5세 미만일 때) 3월부터 다자녀 수당 10만 원 대신 무상보육에 따른 양육수당 20만 원을 받게 됐습니다.(12개월 미만일 때 20만원이고 더 크면 액수가 줄어듭니다만..) 액수로만 따지면 10만 원이 늘어난 것이니 전보다 나아진 거죠.

하지만 좀 석연치 않은 게 그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자녀 가구나 두자녀 가구나 세자녀 가구나 차이가 없다는 것에 대해 실망스럽습니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출산은 본인들이 선택한 문제로, 하나를 낳든 셋을 낳든 선택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 여러 출산 장려책을 내놓은 건 정부와 지자체입니다. 서울시는 5년째 이 지원을 해왔는데 이번에 갑자기 중단되니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건 자연스런 반응으로 보입니다.

서울시가 다자녀 수당 지급을 중단한 근거는 지급의 근거가 된 조례의 다른 조항입니다.

제10조(다른 법령과의 관계) 다른 법령에 의해 보육료 또는 양육지원 수당과 유사한 지원이 있는 경우 이 조례에 우선하여 행하여지는 것으로 한다.

중복 지원이 되니, 못 준다는 건데요, 저는 조례 제정 당시 취지는 다자녀 지원에 대한 상위 법령이 제정될 경우를 의미한 게 아니었을까 추정합니다. 당시엔 다자녀에 대한 직접 지원이 없으니 일단 서울시에서라도 조례를 만들어 지원하되 그런 게 만들어지면 중단한다는 것. 다자녀에 대한 지원과 모든 자녀에 대한 지원은 비슷해보여도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죠.

서울에 있는 셋째 아이 이상을 둔 다자녀 가정은 3만 3천 정도라고 합니다. 올해 책정된 예산은 102억 원. 많다면 많지만 서울시 전체 예산으로 보면 아주 많은 예산도 아닌 것 같은데 암튼 그렇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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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낀 돈, 어디로 간 걸까요. 무상보육 예산이 됐습니다. 국공립어린이집 확충하려고 잡아놨던 예산 890억원은 200억 깎였습니다. 비담임교사 충원, 영유아 보육교사 처우개선비, 영유아플라자 운영 지원비 등 무상보육과 직접 관련 없는 보육 관련 사업들 대부분 보류됐습니다. 무상보육 때문입니다. 덩어리 자체가 비교가 안됩니다. 2013년 서울의 무상보육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돈은 7천 583억 원입니다.

서울시 관계자의 솔직한 말은 이렇습니다.

"다자녀 수당과 무상보육, 같은 개념 아닌 거 맞다. 조례에 단서 조항이 있긴 하지만 피해갈 수도 있고, 아니면 조례를 고쳐서라도 주려면 줄 수 있다. 하지만 줄 돈이 없다."

핵심은 "줄 돈이 없다"입니다.

전면 무상보육은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가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취재파일에서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