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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서울을 거닐다 생각

에스컬레이터 '두줄 서기' 다른 방법 없을까?

2013.6.1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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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만 7년째

아침마다 주로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합니다. 서울역에서 환승해 시청역까지 오면서 많이 몰리지 않는 한 에스컬레이터도 탑니다. 서 있지 않으면 왼쪽으로 걸어 올라가곤 했습니다. 한 줄은 서 있고 한 줄은 걷는 풍경, 너무나 익숙하고 또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두 줄 서기' 캠페인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것도 7년째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티커도 붙어있고 푯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 줄서기'는 대세였습니다. 의아했습니다.


-캠페인만으론 부족하다!

취재를 시작하며 두 가지를 염두에 뒀습니다.

1. '두 줄 서기'가 꼭 필요한가?
2. 캠페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가?


1번에 대해 여기 저기 물어보고 자료도 찾아봤습니다. 서울 메트로나 도시철도공사 측은, '한 줄 서기'로 에스컬레이터 오른쪽에 많은 사람들이 계속 서 있는 만큼 무게가 쏠려 잔고장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왼쪽엔 오른쪽만큼 무게가 실리진 않지만 걷거나 뛰면서 충격이 가해져 역시 또 다른 형태로 고장 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서서 이동할 때보다 걷거나 뛰고 있을 때 넘어지거나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멈춰서면 부상당할 위험이 크다는 건 굳이 근거가 필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줄 서기'를 권장하는 것 자체엔 별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꼭 필요한지는 의문이었습니다.

2번, 캠페인만으로 행동이 바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7년째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바뀌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보였습니다. 캠페인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2007년 이전엔 '한줄 서기'를 에티켓이라며 권장했던 영향도 컸던 것 같습니다. 또 서서 가고 싶은 사람은 오른쪽에, 왼쪽은 급히 가려는 사람을 위해 비워주자, 이런 내용 자체도 합리적으로 보였습니다.

'한 줄 서기'의 폐해, 즉 고장의 원인이 된다, 서 있을 때보다 사고나면 부상 위험이 크다, 에 대해서는 그리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드물게 큰 사고로 이어질 때도 있으나(2011년엔 에스컬레이터 사고로 1명이 사망했습니다.) 대부분의 사고로 인한 부상은 가벼운 타박상 정도에 그쳤으니까요.

'두 줄서기'가 꼭 필요한 건 아닌 듯하지만 '두 줄서기' 권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캠페인만으론 부족한 것 같다는 게 여기까지에서 제 판단이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_500
-다른 방법은?

'두줄서기'를 하자는 이유는 결국 안전 문제와 에스컬레이터 고장 문제입니다. 먼저 에스컬레이터 고장 문제는 아주 큰 문제 같지는 않습니다. 월마다 1회씩 하는 정기 점검이나 수시 점검 등을 통해 잘 관리하고 제때 부품 교체 등을 한다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일 겁니다. 안전 문제에 있어서는, "걷거나 뛰는 게 위험하다"는 게 핵심이니 잘 안되는 '두 줄 서기'를 계속 강조하기보다는 걷거나 뛰지 않도록 현재의 구조, 혹은 환경을 개선해주는, 그런 방안은 없을까요.

현재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노약자용입니다만, 에스컬레이터는 아닙니다. 노약자도 이용하지만, 아닌 사람도 다수 이용합니다. 승강장에서 개찰구까지, 혹은 지상까지 나오는 길이 길고, 또 환승역의 경우엔 길게는 수백 미터씩 걸어야 하는 경우도 많기에 이를 좀더 편하게 갈 수 있게 하는 수단으로 에스컬레이터가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서 걷는 이유도, 더 빨리 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동 중인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으면 그냥 계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빠를 것 같아 이용하지, 그렇지 않다면 이용하지 않겠죠.

알아보니 서울 지하철은 분속 30미터, 분속 50미터인 모스크바나 45미터인 홍콩, 런던 등의 지하철보다 느린 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에스컬레이터 자체의 속도를 높이면 어떨까. 계단 오르는 것보다 빠르거나 비슷한 속도라면 걷거나 뛰는 사람이 줄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손잡이를 잡게 하는 유인도 될 것 같았습니다.

또 하나는 폭 좁은 에스컬레이터의 확대 설치. 지금도 설치돼 있습니다만, 두 사람이 나란히 서는 120cm 규격보다 좁은 80cm 규격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서 있는다 해도 눈총 주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앞서 걸어가려해도 공간이 없기 때문이죠. 다만 이 폭 좁은 에스컬레이터만 설치해놓으면 사람이 몰릴 경우 이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계단도 반드시 같이 설치해놔야 할 겁니다.

이 두 가지 방안을 병행해서 일부에서라도 시범 추진해보는 건 어떨까 싶었습니다. 또 일률적으로 같은 속도를 적용할 게 아니라 고속과 저속으로 나눠 운영한다거나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역에서부터 운영해본다거나 탄력적인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자문을 구한 시민단체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안전이 우선인 건 맞지만..

그러나 관계기관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절대 안된다" "불가능하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라는 식이었습니다.

이유는 안전 문제였습니다. 사고가 나면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속도 높이는 건 절대 불가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지금도 종종 에스컬레이터 사고가 나면 안전 관리에 소홀했다느니 거센 비판을 받는데 속도를 조금이라도 높였다가 이후 사고가 나면 그 질타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에 안된다, 짐작하기론 이런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선진국 수준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폭 좁은 에스컬레이터 확대 설치는 비용 문제에다 그만큼 수송 인원이 줄어든다며 회의적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우려하는 부분도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속도를 높일 경우 사고가 나면 더 위험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앞에 적었듯이 캠페인만으로는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캠페인을 계속 했는데도 바뀌지 않는다면서 시민 의식을 탓한다, 그러면서 캠페인만 계속한다...  지나치게 안일한 자세 아닐까요.

정말 '한 줄 서기'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한다면, 그에 대한 대안으로 '두 줄 서기'가 꼭 필요하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바꿔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큰 돈은 아니겠지만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사안을, 효과가 없는데도 방법이 없지 않냐며 캠페인만 계속하는 건 문제라고 봅니다. 

일전에 취재했던 '어린이보호구역', 스쿨존과 관련해 일부 지자체에서는 보도의 색깔을 차도처럼 칠하는 방법을 통해 차들이 알아서 피해가도록 디자인을 개선해 효과를 보고 있었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준수하자는 캠페인도 좋지만 못지 않은 효과가 있었다는 게 안팎의 평가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달리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