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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서울을 거닐다 생각

'교통사고 잦은 곳'...'합리적 선택'이 때론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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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선택'


출근할 때 요즘은 주로 버스를 탑니다. 집을 나서며 제일 먼저 찾아보는 건 스마트폰의 버스 앱, 제가 타려는 버스가 도착하려면 몇 분 남았나 봅니다. 5분 이내면 버스정류장으로 향하지만 10분 남았다고 하면 지하철역으로 향합니다. 그래야 몇분이지만 시간 절약이 됩니다.


그렇게 판단하고 선택해 행동하는 게 단 몇 초 안에 이뤄집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이런 판단-선택-행동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합리적 인간'은 이렇게 '합리적 선택'을 하죠.


지난번 '에스컬레이터 두줄 서기' 취재했을 때도 느꼈지만 '한줄 서기'를 했을 때 혹시 사고가 나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건 다들 압니다. 하지만 큰 사고가 날 가능성은 낮은 데다 바쁠 때 걸어가면 단 몇십 초라도 시간 절약할 수 있죠. 몇십 초 차이에 지하철을 놓치면 몇십 분 늦어질 수도 있고. 그러니 급한 사람은 걸어가게 비워주는 게 대다수의 '합리적 선택'입니다. 


-왜 여기선 사고가 자주 날까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1.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는데 유난히 사고가 잦은 지역이 있습니다. '교통사고 잦은 곳'이죠.(실제 행정용어가 이렇습니다.) 찾아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광진구의 구남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는 대각선 건너편으로 가는 사람들이 사고를 많이 당했습니다. 특히 초등학생 아이들이 차도로 가다 사고가 났습니다.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2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습니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가운데 '교통섬'이 문제였습니다.






'교통섬'은 차량 통행 편의나 보행자 안전을 위해 설치한 섬 모양의 구역입니다.


이 지역의 경우 도로 2개가 합쳐지는 지역이라 곧바로 질러가는 횡단보도를 설치할 순 없어서 교통섬을 거쳐 가게 돼 있었습니다. 교통섬에는 보행자 안전을 위해 울타리가 쳐져 있고요. 교통섬을 거쳐가면 거의 90도로 방향을 틀어 가야 합니다. 즉, 앞으로 곧바로 10미터, 우향우 또는 좌향좌 해서 다시 10미터 이런 식입니다. 이렇게 20미터를 가야하는데 대각선으로 질러가면 15미터 정도만 가면 되죠. 고작 5미터, 시간상으로는 5초 미만이지만 사람들의 선택은 교통섬을 거치기보다는 질러가는 식입니다.


남대문 근처의 왕복 10차선 도로는 신호가 빨간불인데 무단횡단하다 사고가 많이 났습니다. 횡단보도 바로 근처에서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명이 사망했습니다. 버스전용차로까지 포함해 왕복 10차선인데 무단횡단한 사람들이 너무 무모했던 것 아닐까 싶은데 현장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버스중앙차로 시행지역이라 도로 가운데는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횡단보도도 여길 거쳐가야하는데 일직선이 아니라 교통섬을 거쳐 몇 미터 이동해야 다시 건널 수 있습니다. 서두르면 파란불 한 번에 건널 수도 있지만 중간에 멈춰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죠. 그래봐야 몇 분 차이지만, 급한 마음에 뛰거나, 아니면 빨간불인데도 무단횡단하다 사고가 나는 겁니다.


도로 설계를 이렇게 한 건 괜히 보행자 골탕 먹이려한 게 아닙니다. 차들이 많이 오가는 지역이니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목적이 첫째요, 역시 차가 많은 지역이니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취지가 둘째였습니다. 취지는 좋으나 실제론 '교통사고가 잦은 곳'이 돼 버린 거죠.


-의외로 간단한 개선책


그럼 어떻게 바꾸냐, 의외로 간단합니다. 교통섬을 없애지는 않되, 횡단보도 위치를 조금씩 조정하는 겁니다. 구남초교 앞은 횡단보도의 방향을 조금 틀어 대각선에 가깝게 만들어주고, 남대문 근처 도로는 횡단보도를 일직선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외에 지나는 차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안전표지판와, 드륵드륵 소리가 나는 그루빙(grooving)을 추가 설치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고를 줄일 수 있겠죠. 서울시가 경찰 자료를 받아 분석해보니 교통사고 발생 상위 35곳에서 1년에 일어난 사고가 평균 23건이나 됐습니다.(2009년 현재) 가장 많은 곳은 신정네거리역 교차로였는데 50건이나 사고가 났다네요. 이렇게 사고가 자주 나는 지역은 사고가 유발할 만한 도로 구조나 환경이 문제였던 만큼 이를 개선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는 거죠.


이미 이런 사업은 진행 중입니다. 안전행정부 차원에서 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사업 이름은 '교통사고 잦은 곳 개선 사업'입니다. 서울에서도 2012년에 44곳 개선 작업을 실시했고, 올해도 44곳 예정입니다. 위에서 설명했던 2곳도 올해 예정지 중 2곳입니다.


-개선 사업이 늦어지는 이유


여기서 또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사고 잦은 곳'과 '개선 사업'의 시차입니다.


앞서 사고 통계를 보면 가장 최근 사고가 2011년입니다. 거의 2년 전이죠. 저 2곳은 2008년부터 사망사고부터 집계돼 있는데 2011년까지 사고 집계를 해놓고 개선 사업은 2년이 지난 올해 하반기에 한다고 합니다. 2012년과 올해 상반기에도 계속 사고가 났을텐데 사실상 방치돼 있던 거죠. 


관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 조사와 처리는 경찰이, 통계 집계는 도로교통공단, 도로 구조나 환경 개선은 지자체에서 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기관끼리 자료 공유하고 대책 마련하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사고가 계속 났는데 한동안은 이런 사고 지역이 계속 유지되던 원인이 여기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개선책이 6월 27일 서울시-경찰이 내놓은 [교통사고 사망자 줄이기 대책]입니다.


'합리적 선택'이 잘못된 환경과 결합되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게 이번 취재 과정에서 제가 새삼 깨달은 점입니다. 앞으로 여러 행정에서도 세심한 관찰과 대책이 마련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