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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경찰청 언저리 생각

8년 전엔 '장관상', 2014년엔 '스펙 조작'

기사 보기 -> 2006년 <고교 담임이 '장관상 브로커'>


기사 보기-> 2014년 <현직 교사가 돈 받고 '스펙 조작'>



-2006년엔 '장관상'


2006년 9월 어느날, 고3 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 3명을 만났다. 


엄마들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상'과 관련한 비리가 횡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 말로는, 특정 교사가 문제였다. 2006년 들어 최근까지, 외부에서 40여 개의 상이 들어왔는데 수상자를 이 교사 맘대로 정했다는 설명이었다. 이 교사는 대학 수시모집에 응시할 때 "상이 없으면 큰일"이라며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엄마들은 전했다. 그러면서 "돈을 받고 상을 만들어줬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이 비리를 파헤쳐줬으면 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기사쓰는 건 수능이 끝난 뒤였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당장 고3인 자녀들 입시에 혹시라도 악영향이 있을까 우려하는 듯했다. 뭔가가 더 있는 듯했지만 더는 말하지 않으려 해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수능이 끝난 뒤 11월 중순에 다시 연락했다. 그제서야 엄마들은 그때 말하지 않은 내용을 털어놓았다.(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중 1명은 실은 자신도 돈을 주고 자녀의 장관상을 샀다고 말했다. 비용은 250만원, 이 돈을 담임에게 주고 모 사단법인 주최 글짓기 대회에 참가한 것처럼 꾸며 장관상을 받았다고 했다. 대회엔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녀는, 장관상이 있는데도 응시한 대학 수시모집에 떨어졌다. 그래서 담임에게 항의하며 돈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주지 않자 기자를(나를!) 찾은 것. 그때 말하지 않는 내용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이 엄마는 당시 어떤 마음이었을까. 돈을 준 사실이 드러나면 수사가 진행될 수 있고 그러면 처벌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도 다시 취재에 응한 건 선생이 괘씸해서였을까. 아니면 250만원을 꼭 돌려받아야 했기 때문이었을까.

 

기사를 썼고 이 엄마는 돈을 돌려받았다. 문제의 담임교사는 학교를 그만뒀다. 


거기까진 원하던 바였겠으나 기사를 본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그 교사가 학생 8명에게 장관상과 교육감상 등을 받게 해주는 대가로 학부모에게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250만원까지 받았다는 걸 밝혀냈다. 학부모 8명과 교사는 경찰에 입건됐다. 학생 8명 중 6명이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했는데 경찰은 수사 결과를 학교에 통보했다. 합격이 취소됐을 수도 있다. 

 

기사를 쓴 뒤 바로 장기 출장을 갔다왔고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사이 다른 부서로 발령나면서 이 사건을 계속 취재하지는 못했다. 다시 당시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을 더듬어보니, 처음에 엄마들이 얘기했던 교사는 다른 사람이었다. 자신들이 돈을 준 교사 얘기는 쏙 빼고 다른 교사의 비리만을 상세히 제보했었다. 그때 거론한 상은 그들의 자녀가 받은 장관상도 아니었다. 그해 외부에서 온 상 40여 개 중에 8개와 관련해 돈을 주고받은 교사와 학부모가 입건됐는데 나머지 30여 개는 공정하게 시상됐을까. 

 


-2014년.. '스펙 조작'


2014년 10월 8일 경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3년 서울 유명대학 한의예과에 합격한 한 학생의 각종 수상 경력과 봉사활동 이력, 해외 체험학습 등이 상당수 조작됐다는 내용이었다. 교사 3명과 엄마, 학생까지 5명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8년 전 사건과는 좀 다르다. (사실 주로 조작이 이뤄진 건 2011년이니 8년 전이라기보다는 5년 전.)


당시엔 학생 1명에 장관상 1개였는데 이번엔 조작이 확인된 상만 3개다. 여기에 하지도 않은 봉사활동을 백 시간 넘게 했다고 확인서를 만들어줬고 가족여행 사진과 인터넷 자료 등을 활용해 가지도 않은 해외 체험학습 보고서까지 작성했다. 이런 내용들이 죄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됐고 이를 입시 전형 자료로 제출했다. 이 학생이 3년 동안 학교 외부에서 6개, 학교 내에서 8개의 상을 받았는데 이중에 경찰이 조작됐다고 확인한 게 3개다. 입증하진 못했지만 조작 사례가 더 있었을 수도 있다.


경찰서장 표창을 받은 과정도 좀 석연치 않다. 2010년 초 길에서 우연히 지갑을 주워 근처 파출소에 갖다줬는데 어느 할머니의 지갑이었단다. 연락을 받은 할머니가 지갑을 찾아가며 너무 고맙다며 경찰서에 주워다준 학생에게 꼭 상 좀 주라는 편지를 보내 학생은 상을 받았다.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이 할머니가 학생의 각종 경력을 만들어준 교사의 모친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 미담 사례도 의심받게 됐다.(경찰은, 이게 조작된 미담인지는 입증하지 못했다.)


학생의 경력 조작을 위해 엄마가 교사에게 지불한 돈은 최소 2천 5백만원이다. 처음엔 5천만원 설도 나왔지만 교사와 엄마 모두 나중에 부인했고, 다른 교사도 천만 원을 받았다고 진술했지만 다시 번복했기에 일단 인정한 건 2천 5백만원이다. 그것만 해도 8년 전보다 10배가 많다.

 

이 학생이 응시한 전형은 입학사정관제 전형,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학생부 등을 보고 입학사정관이 평가한 부분이 큰 비중으로 합격 여부에 반영된다. 이 학생은 2012년에도 이 자료들로 서울 유명대학에 합격했고, 학교를 좀 다니다 자퇴한 뒤 다시 2013년 전형에 응시해 또 합격했다. 2013년 그 과의 해당 전형 경쟁률은 17.6대 1, 5명 모집에 88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교사가 이리저리 움직여 만들어준 상과, 봉사활동 등 이력이 합격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리란 추정이 가능하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일까.


원래는 다른 사건이었다. 해당 교사가 학부모에게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받고 중간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를 경찰이 포착해 수사하던 사안이었다.(이 사건으로 이 교사는 구속, 다른 교사 3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주범 격인 교사의 계좌내역을 살펴보다 수상한 뭉칫돈을 발견하고 수사를 거듭해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이 교사는 '내신 조작'을 시도하다 걸렸는데 알고보니 '학생부 조작'도 한 셈이다.

 

8년 전 사건에서도 문제가 된 교사와 학부모만 입건되는 수준에서 사건은 그쳤다. 다같이 입을 다물어서일지, 혹시 저질러졌을지도 모르는 다른 '수상 조작'은 그냥 넘어갔고 그때 대학에 합격한 아이들은 이제 대부분 졸업해 회사에 다니는 등 사회에 진출해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여러 관련자들이 있지만 결국 드러난 학생은 단 1명이다. 다들 함구하면서 비슷한 조작을 저질렀을 지도 모르는 이들은 안심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좋은 대학을 보내면 된다는 게, 설마 2014년 한국의 보편적인 도덕 수준일까. 이런 부모와 교사는 아이에게 도대체 뭘 가르치는 걸까.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