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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경찰청 언저리 생각

경찰이 '그 제보'를 무시했던 이유는...



-한때 사회 부문 기사의 절반 이상이 제보로부터 나온다고 할 정도로, 제보의 뉴스 기여도는 높았다. 이상한 제보도 많다. '내 귀에 도청장치' 류라든가,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는 '욕쟁이' 류, 전화해놓고도 주저주저하다 별 얘기 없이 끊어버리는 '극소심' 류 등등. 때로는 이런 제보전화 때문에 업무를 하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수 년 전 모 식품회사 과자에서 새끼쥐(과자와 함께 튀겨진...)가 나왔다는 기사가 다른 방송사 톱 뉴스로 보도됐다. 과자의 상징성이나, 이물질의 괴이함이나 파장이 컸다. 제보를 토대로 기사 쓴 것이라 '어쩔 수 없네' 싶었는데 혹시나 해서 제보 게시판을 뒤져봤다. 거기서 같은 내용의 제보를 발견했을 때 허탈감이란! 억울한 일이나 뭔가 문제가 있을 때 시민들이 찾는 언론이라면, 기삿꺼리가 많아 행복하면서도 잘 나가는 언론이다. 무엇이라도 기대받고 있는 거다. 사람의 소중함은 떠난 자리를 보면 알듯, 아까운 제보를 놓쳤을 때 제보의 소중함을 비로소 알게 된다. 또다른 공통점은 이미 늦었다는 것!

-2014년 5월 26일 오후 2시 6분, 전남 순천경찰서 정보보안과에 전화 1통이 걸려왔다. 당시 검찰과 경찰이 소재 파악과 검거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던 유병언씨와 관련한 시민의 제보였다. 


전국 경찰에 하루 70-80통 가량 유병언 관련 제보가 올 때였다. 순천경찰서엔 5월 26일 하루, 26통의 제보전화가 왔다고 했다. 그중 하나였다. 이 시민은 28일에 한 번 더 전화했고, 29일에는 수사과로 전화했다. 인천지검으로도 두 번 전화했다고 한다. 내용은 모두 같았다. 유병언씨 별장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비밀 공간'에 대한 제보였다.

-이 시민이 전한 제보 내용과 전후 사정은 이렇다.


"5월 25일인가, 목수가 (유병언씨) 집을 수리했다는 뉴스를 보고나서 한참 생각했는데 그게 하루종일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경찰서에 전화했다.
...
아주 정확하게 얘기했고 벽도 일일이 주먹 두들겨서 하라고 얘기했다. 벽도, 안에 공간 있는 벽 하고 꽉 차 있는 벽하고 소리가 다르니까 일일이 주먹으로 확인해서 두들겨서 집 전체를 정밀하게 수색하라고 했다. 전화받는 사람이 힘없이 받는 것 같아서 '윗사람에게 제발 얘기해서 꼭 좀 수색해달라'고 제가 그렇게 말했다.
...
원래는 인천지검에 수사본부가 있다기에 거기 하려고 했는데 제가 순천서 나서, 순천에서 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아, 이건 기왕이면 순천경찰서에 전화해서 순천 사람들이 잡게 해야겠다', '신창원이나 뭐 이런 큰 사건만 나면 왜 순천으로 오는가' 그런 것도 하루 사이에 머리 속으로 많이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서에다 전화하고 그 다음에 검찰청에 전화했다. 순천경찰서에 먼저 전화하면 바로 전화 끊고 다시 인천검찰청으로 전화했다."



-이분이 기억하는 경찰과 검찰의 답변은 "참고하겠다"였다고 한다. 그 후 제보대로 검경이 비밀공간을 수색했는지는 이 시민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 유병언씨 시신이 확인됐다, 별장에 비밀공간이 있었다는 당국 설명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서는 이 시민은 깜짝 놀랐다고 했다.

"...모든 걸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 신모씨가 말을 번복해서 다시 정밀수색해서 돈가방 찾았다지 않았나. 내가 제보할 때 찾았으면 유병언이도 살았을텐데. 처음에 제보할 때 잡았다면 모든 게 국가를 위해 좋았을텐데. 그래서 확인해본 것이다, 제보했던 게 생각나서. 내가 제보했을 때 수색했다면 찾았을텐데, 왜 내가 했을 때 안했냐, 너무 아깝다 그런 거였다."


-7월 24일 연합뉴스에서 이 시민의 주장이 반영된 기사가 나오자, 경찰은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그런 제보전화는 아예 받은 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이 근거로 첨부한 자료는,  순천경찰서 정보보안과의 외부 전화 수신내역이었다. 5월 23일부터 30일 사이에 일반전화 5대로 걸려온 외부전화는 5월 27일과 28일, 단 2통뿐이었고 내용은 '비밀공간'과는 무관했다는 반박이었다. 경찰 해명에 빈틈이 없어보였다. 엉뚱한 주장을 하는 제보자인가 싶었다.

그런데 불과 열흘 만에 경찰은 입장을 바꿔야 했다. 그 제보전화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 시민은, 경찰이 그런 전화 온 적이 없다고 하자, KT에 의뢰해 '114 이용 사실 증명원'을 발급받았다. 순천경찰서 정보보안과의 일반전화 번호를 몰랐기에 제보전화를 할 때마다 114를 이용해 경찰서로 연결해달라고 했는데 그 내역이 그대로 남아있던 것이다. 114 이용내역에는 그의 주장처럼 5/26, 28, 29에 수분간 통화한 기록이 나와있었다. 이 자료를 경찰서에도 제시했고 경찰은 입장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열흘 전 거짓해명을 한 셈이 됐다. 경찰 설명은 이렇다. 


순천경찰서에 설치된 '역발신추적시스템'으로 일반전화 5대에 걸려온 외부전화 내역을 모두 뽑았는데 114를 경유해 걸려온 전화 내역은 거기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114를 통해 다시 전화해본 뒤 그 내역을 뽑아봤더니 역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은 시스템을 설치한 업체에 의뢰해 점검에 착수했다.

-이 설명대로 시스템의 허점이라고 해도, 제보전화를 받았던 경찰관 3명이 있다. (3통 모두 다른 경찰이 받았다.) 처음 문제 제기됐을 때, 왜 이들이 사실 자신이 전화를 받았노라고 나서지 않았던 것일까. 경찰청은 이런 부분까지 포함해 감찰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어디까지나 제보전화가 왔는지 안 왔는지 사실 확인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다. 경찰이, 또 검찰이 '비밀공간'이 있을 것이란 제보에 따라 별장을 샅샅이 뒤져봤다면 어땠을까. 경찰은 "유병언 비슷한 사람이 어디에 있다"는 제보를 받으면 꼭 그 장소에 가서 유병언이 있는지를 확인했다고 했다. 전국 경찰이 그렇게 유병언씨 검거를 위해 노력했다면서 별장 한 번 더 수색하는 걸 하지 않았다니 이해할 수 없다. 경찰이나 검찰 수뇌부에서 언론을 상대로 설명하고 발표할 때만 그랬던 것인가. 그저 '시늉'만 했던 것인가.   


-검찰과 경찰이 별장을 정밀 수색해 비밀공간을 찾았다면 유병언씨를 잡았을 수도 있다. 또 유씨가 비밀공간에 있다 빠져나갔더라도 다시 유씨 추적에 나서면서 지금처럼 유씨의 행적이나 사인이 오리무중인 상황과는 달라졌을 법하다. 지금처럼 한달이 지난 뒤에야 '비밀공간'을 확인하고 돈가방을 찾아냈다거나, 시신이 발견된지 40일 만에 신원을 확인하는 소동을 벌여 검경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경찰은, 검찰이 별장 급습과 관련해 철저히 경찰을 배제하고 독자 행동했기에 억울한 면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일견 타당한 면이 없진 않다. 사실 경찰이 거짓 해명을 하게 된 경위도 따져보면 관련 의혹을 신속히 해소하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긴 하다.(함께 제보전화를 받았던 검찰은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기왕이면 우리 (순천) 경찰이 잡았으면 해서 경찰에 먼저 전화했다"는 그 시민의 마음부터 되새겼으면 한다. 제보의 소중함은 아까운 제보를 놓쳤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