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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공포 대 은폐 마케팅? 국민연금 불신만 커진다




● 국민연금은 이런 것

국민연금에 대한 대부분의 설명은, 찾아보니 국민연금공단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와 있었다. 먼저 국민연금의 정의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보험의 원리를 도입하여 만든 사회보험의 일종으로 가입자, 사용자 및 국가로부터 일정액의 보험료를 받고 이를 재원으로 노령으로 인한 근로소득 상실을 보전하기 위한 노령연금, 주소득자의 사망에 따른 소득상실을 보전하기 위한 유족연금, 질병 또는 사고로 인한 장기근로능력 상실에 따른 소득상실을 보전하기 위한 장애연금 등을 지급함으로써 국민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도모하는 사회보장제도의 하나입니다.

다음은 국민연금의 특징이다.

모든 국민이 가입대상으로 강제성이 있습니다....강제적용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거나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입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노후빈곤층이 확대되고, 이것이 사회문제화 될 경우 결국 국가는 빈곤해소의 문제를 조세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소득재분배로 사회통합에 기여합니다. 국민연금은 동일한 세대내의 고소득계층에서 저소득계층으로 소득이 재분배되는 "세대내 소득재분배" 기능과 미래세대가 현재의 노인세대를 지원하는 "세대간 소득재분배" 기능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습니다....미래세대는 자신의 노후만을 준비하면 되지만 국민연금 초기가입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노후는 물론 부모 부양이라는 이중부담을 지고 있어 이들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낮은 보험료에서 출발, 단계적으로 보험료를 높여가도록 한 것입니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연금은 반드시 받습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최종적으로 지급을 보장하기 때문에 국가가 존속하는 한 반드시 지급됩니다. 설령 적립된 기금이 모두 소진된다 하더라도 그 해 연금지급에 필요한 재원을 그 해에 걷어 지급하는 이른바 부과방식으로 전환해서라도 연금을 지급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제도를 시행한 선진복지국가들도 초기에는 기금을 적립하여 운영하다가 연금제도가 성숙되면서 부과방식으로 변경했습니다.


● 공포 마케팅 대 은폐 마케팅?

"소득대체율 50%로 올리면 당장 보험료가 2배", "1,702조 원 세금 폭탄" 정부와 청와대의 이런 주장을 야권에서는 '공포 마케팅'이라며 비판했다. 보험료가 대번에 크게 오를 것처럼, 엄청난 세금 폭탄이 부과될 것처럼 국민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보험료 1%만 올려도 소득대체율 50%가 가능하다" 야권의 이런 주장을 정부는 '은폐 마케팅'이라고 맞받아쳤다. 2060년 이후 연금기금 고갈이라는 걸 숨긴 채 보험료 부담이 거의 없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한다는 반박이다.
 
공포 대 은폐 마케팅, 어느 쪽의 전술이 더 효과적이었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이런 명명 자체가 타당한지부터 살펴봐야할 것 같다. 매일 같이 새로운 주장이 쏟아지는 것 같지만 사실 5월 2일 여야 합의를 전후해 나온 얘기들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이전의 뉴스와 취재파일 AS 차원에서 정리해보겠다.(니가 무슨 전문가냐는, 저에 대한 비판도 있겠으나, 저를 포함해 대개의 기자, 그리고 우리가 쓰는 기사가 그러하듯 길잡이 역할 정도는 가능하리라 본다.)

● 생략한 전제들[취재파일] 심영구각각의 주장을 표로 정리하면 이렇다. 현재 소득대체율 40%에 보험료 9%를 내고 있는데(정확히는 2015년 현재 46.5%, 매년 0.5%p씩 낮아져 2028년까지 40%....보험료는 직장가입자의 경우 절반인 4.5%, 나머지는 사업자가 낸다) 이를 소득대체율 50%로 올리면 국민 부담인 보험료나 세금이 저렇게 된다는 주장들이다.

그런데 이 주장들에는 여러 전제가 생략돼 있다. 생략된 부분을 표로 만들어보면 또 이렇다.[취재파일] 심영구소득대체율 40%에 보험료 9%인 현재 제도에서도 2060년 연금이 고갈된다는 전제는 생략돼 있다. 이는 2008년 국민연금 재정 계산에서도, 2013년 국민연금 재정 계산에서도 변치 않은 전제였기에 청와대나 정부나 야당이나 다 마찬가지다. 이와 다른 주장을 할 수 없다. (최근 어느 언론 보도에서는 기금 고갈 시점이 더 앞당겨질 수 있다며 그 근거로 2013년 재정 계산에서의 출산율보다 낮다는 걸 들었는데, 그런 변화하는 요소를 반영해 5년마다 계산하도록 돼 있다. 2018년 계산에서는 반영될 것이다.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소는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이기 때문에 그 사이 이를 바꾸지 않으면 2060년 고갈시점이 많이 달라지진 않을 듯하다.)

소득대체율 50%에서는 각각의 주장마다 생략된 내용이 좀 다르다. 

먼저 정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연금 보험료가 당장 2배로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문 장관은 또 "보험료는 28%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 주장에는 "연금기금이 2100년 이후까지 일정 적립배율로 유지된다고 전제할 때"라는 말이 생략돼 있다. "2060년 연금 고갈"이라는 전제를 생략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45년 뒤 연금기금이 고갈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 이유는, 출산율 저하와 연금 수령자인 노인 인구 증가로 국민연금 가입자는 늘지 않는데 비해 수급자는 급격히 늘어가기에 그렇다. 이렇게 전제를 바꿨기 때문에 공정한 비교가 될 수 없다. 

문 장관의 발언을 다시 쓰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 올리면, 연금기금이 2060년 고갈되는 게 아니라, 2100년 이후까지 일정 적립배율로 유지된다고 할 때 연금 보험료가 당장 2배로 오를 수 있다"가 된다.

청와대는 홍보수석이 직접 "소득대체율 50% 인상할 경우 세금폭탄은 무려 1,702조 원이나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 주장에도 생략된 말들이 있는데 좀더 복잡하다. 앞서 문형표 장관의 말과는 달리 "2060년 연금기금 고갈"이라는 전제를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낸 가입자에게 나중에 연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세금으로 지급한다는 새로운 발상을 전제로 했다. 그러니 여기에는 "연금보험료를 9%로 계속 유지하되, 기금 고갈 이후에 추가로 들어가는 돈은 세금으로 지원하도록 제도를 바꾸면"이라는 말이 생략된 셈이다. 청와대 수석의 발언을 다시 쓰면 "소득대체율 50% 인상할 경우, 연금보험료를 9%로 계속 유지하되, 기금 고갈 이후에 추가로 들어가는 돈은 세금으로 지원하도록 제도를 바꾸면, 세금 폭탄은 무려 1,702조 원이나 됩니다"가 된다. 

또 청와대 수석은 "국민에게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고 보험료율을 상향 조정하여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하려면 내년 2016년 한해에만 34조 5천억 원, 국민연금 가입자 1인당 209만 원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합니다"라고 부연했다. 이 발언은 문형표 장관 발언의 다른 버전이다. 2014년 연금 보험료 수입이 32조원, 1인당 197만 원 정도를 냈는데 이 금액의 2배 정도가 34조 5천억 원, 1인당 209만 원의 보험료로 환산된다. 그러니 여기에는 "연금기금이 2060년 고갈되는 게 아니라, 2100년 이후까지 일정 적립배율로 유지된다고 할 때"가 생략됐다. 다시 쓰면 "국민에게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고 보험료료율을 상향 조정하여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하려면, 연금기금이 2060년 고갈되는 게 아니라, 2100년 이후까지 일정 적립배율로 유지된다고 할 때, 내년 2016년 한해에만 34조 5천억 원, 국민연금 가입자 1인당 209만 원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합니다"가 된다.

다음은 새정치연합이다. "소득대체율 50%로 올리는 건 보험료 1%p만 올려도 가능하다"고 했다. 여기에는 "2060년 연금기금이 고갈되는 걸 그대로 둘 때"라는 말이 생략돼 있다. 다시 쓰면 "소득대체율 50%로 올리는 건, 2060년 연금기금이 고갈되는 걸 그대로 둘 때, 보험료 1%p만 올려도 가능하다"가 된다. 청와대나 복지부와 조금 다른 건, '2060년 연금기금 고갈'은 2013년 연금재정 계산에서 나온 현행 제도에서의 전제라는 것이다. 즉, 야당은 전제를 바꾼 것은 아니다.

● 부당한 전제의 오류

복지부가 바꿨던 전제를 현재 상태인 소득대체율 40%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보험료율 9%가 아니라 15.85%가 된다. 당장 보험료 2배는 아니나, 당장 보험료 1.76배가 된다. 즉 현 소득대체율대로여도 전제를 저렇게 바꾸면 당장 보험료를 1.76배 올려야 한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부당한 전제의 오류'라고 부른다.[취재파일] 심영구청와대나 복지부 주장은 경고의 의미를 갖는다. 야당이 주장해 여당이 합의해준 것처럼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렸다가는 당장 보험료를 두 배로 올려야 하거나, 1702조 원의 세금 폭탄을 부담할 수 있다고 국민에게 경고한 것이다. 공포는 때론 이성을 마비시킨다. 보험료 부담 2배에, 세금 폭탄, 그럴리 없을 것 같다가도 현실로 닥칠 수 있다는 우려에 공포스럽다. 더군다나 아무런 얘기 없이, 아무런 고지 없이, 이제까지 유지하고 있던 전제를 바꿔가며 얘기했다. '공포 마케팅'에, 전제를 감추고 은폐한 '은폐 마케팅'이 아니라고 할 만한 구석이 없어 보인다.

야당의 주장은, 2060년 연금기금 고갈 이후엔 어떻게 할지, 그때 가서 대폭 올릴지, 아니면 당장 혹은 몇년 뒤부터 올릴지에 대한 얘기가 없는 게 문제다. 소득대체율 50%를 굳이 계속 고집하는 것도 그렇다. 논의는 계속 해왔더라도 사회적 기구를 마련해 연내 결론을 내자는 정도로 정리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또 복지부에 요청해 나온 계산이라고 해도 "보험료를 1%p만 부담해도 된다"는 건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다. 아쉬운 대목이 많지만, 이제까지 전개된 상황에서 야당이 1%p 인상을 내세워 건진 성과도 없고, 공포나 은폐 마케팅을 했다기엔 많이 부족하다. 

언젠가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국민연금을, 언젠가는 개혁해야 한다. 한번에 끝낼 게 아니라 시기시기마다 계속 해야할 개혁이다. 극단적인 가정을 끌어와 가뜩이나 국민연금을, 정부와 정치권을 믿지 못하는 국민을 호도하는 건, 언론은 물론 누구도 해서는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