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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남편의 죽음




기사보기=> 죽음 부른 근로능력평가.."행정살인" 주장까지


● 죽음

사람이 죽었다. 자연사나 통상의 병사가 아니라면, 다른 이유로 인한 사망이라는 의심이 있다면 변사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사망했는지, 누구 때문에 죽었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 밝혀진다면, 누구 책임인지가 확인된다면 해당되는 기관이나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 그의 죽음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1954년생인 최인기 씨는 흉부 대동맥류 때문에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 수술을 했다. 수술 전에는 버스기사로도 일했지만 이후엔 일할 수가 없었다. 계단이나 조금 경사진 데를 오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고 힘들어 했다고 한다. 대동맥류 치료를 위해 모아놓았던 재산은 거의 소진한 상태였다. 최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생계비와 의료비를 지원받았다. 2008년 이후로 5년간 받았다. 건강은 크게 악화되지도, 호전되지도 않았다.

2010년부터 근로능력 평가라는 게 생겼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9조 5항은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실시한다고 규정했다. 시행령 7조를 보면, 18세 이상 64세 이하, 중증장애인이 아닐 때, 질병이나 부상, 또는 후유증으로 치료나 요양이 필요한 사람 중 근로능력평가를 통해 지자체장이 근로능력이 없다고 판정한 사람이 아니면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다. 자활 사업에 참가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생계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조건부 수급자라고 한다. 쉽게 말해, 일할 능력이 있으면 일해야지만 지원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씨는 일할 수 없었다. 근로능력평가에서도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받았다. 근로능력판정용 진단서를 제출했고 그에 따라 판정은 이뤄졌다. 매년 그랬다. 그런데 2012년 말에 변화가 생겼다. 그 영향은 2013년 말에 나타났다. 최 씨는 한해한해 나이를 먹었을 뿐 달라진 게 없었는데 제도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제도를 시행하는 주체가 지방자치단체에서, 국민연금공단으로 바뀌었다. (최종 판정은 여전히 지자체가 하지만, 공단이 평가 업무를 위탁받았다. 지자체는 평가 결과를 받아 통지한다.) 그러면서 최 씨는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이 됐다. 최종 통지를 받은 건 2014년 1월이다.

자활사업에 참가하지 않으면, 즉 일하지 않으면 생계급여를 지원받을 수 없었다. 최 씨는 고용센터에서 알선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청소일을 하게 됐다. 2014년 2월에서 5월까지 두 달 넘게 일했다. 그리고는 고열과 부종으로 쓰러졌다. 최 씨는 그해 8월 사망했다.

● "당신은 일할 수 있다"취재파일신규 등록 이미지
최 씨를 담당했던 의사는 근로능력판정용 진단서에 "안정시에는 무증상이나 계단을 오르는 등 신체활동 시에는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한다"고 적었다. 근로능력평가 기준은 보건복지부 고시로 정해져 있다. 의학적 평가와 활동능력 평가로 이뤄지는데 먼저 의학적 평가는 11개 질환유형에 따라 기준이 나와 있다. 이중 최 씨는 심혈관계 질환군이다. 1단계부터 4단계까지로 구분하는데 1, 2단계는 경증, 3, 4단계는 중증으로 보면 된다.

4단계에는 "안정시에는 무증상인데 가벼운 일상생활의 신체활동에서 피로, 동계, 호흡곤란, 또는 협심통이 있거나 심초음파에서 심장기능이 40% 이하인 경우"라고 나와 있다. 3단계에는 "안정시에는 무증상인데 보통 이상의 신체활동에서 피로, 동계, 호흡곤란 또는 협심통이 있어 ..."라고 나와 있다. 이 기준대로 최 씨를 평가한다면 3단계 아니면 4단계일 것이다. 의학적 평가가 4단계로 나오면 곧바로 '근로능력 없음'이 된다. 그런데 연금공단의 자문의사는 최 씨를 1단계라고 평가했다.
취재파일의학적 평가에서 4단계를 받지 못하면 활동능력 평가를 받아야 한다. 공단 직원이 최 씨를 만나 활동능력을 평가했다. 2013년 11월 5일 최 씨를 방문한 공단 직원은 15개 문항을 놓고 점수를 매겼다. 각 문항당 0점에서 4점까지인데, 최 씨는 알코올 의존과 자기관리, 집중력, 자기통제, 이해력, 기초학습활용능력, 공간지각력에서 가장 높은 점수인 4점을 받았다. 체력에서는 1점이었다. 다 합쳐서 40점이 나왔다. 의학적 평가 1단계에서는 36점 이하를 받아야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받는다. 2단계였다면 44점 이하가 '근로능력 없음'에 해당한다. 최씨는 의학적 평가 1단계에, 활동능력평가 40점, 단 4점 차이로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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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는 이 판정에 따라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비 지원을 못 받게 됐다. 일을 했고 쓰러졌으며, 죽었다.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왜 이렇게 됐을까. 최 씨의 죽음은 무엇 때문이고 누가 책임져야 할까. 

평가 업무를 담당한 국민연금공단은, 당시 판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진단서에 "상기 질환은 치료되었고 현재 안정시에 무증상"이라고 기재돼 있어 1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 문장의 바로 뒤에 "...이나 계단을 오르는 등 신체활동시에는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한다"는 내용은 없거나 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신규 등록 이미지참고할 만한 통계가 있다. 2012년 근로능력평가에서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은 비율은 5.6%였는데 2013년엔 15.2%, 2014년엔 14.2%로 2013년부터 크게 늘어났다. 2014년에만 새롭게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 사람은 2만 5천 명이나 된다. 최 씨도 그중 하나다. 공교롭게도 2012년 12월 국민연금공단이 평가 업무를 위탁받은 뒤부터다. 오비이락일까? 정말 공교롭기만 한 일일까?

최종 판정을 내린 수원 권선구청은, 연금공단 평가에 따라 근로능력이 있다고 통보했고 이후 조치는 그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지자체 소관 업무라 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권익이 침해된 게 없다고 한다. 2014년 10월 국가인권위에 곽혜숙 씨와 시민단체들은 복지부 장관, 연금공단 이사장, 권선구청장, 고용노동부 장관을 피진정인으로 해 진정서를 제출했다. 7개월이 돼 가지만 인권위는 아직도 조사 중이라고 한다. 앞서 밝혔듯 국민연금공단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최 씨의 죽음은 이렇게 공중에 떠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로 잊혀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