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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찜통' 속 할머니의 잠 못 이루는 밤

기사 보기 => 갑갑해서 숨이 턱턱..'찜통'으로 변해버린 집


경상북도 김천시는 인구 13만 명의 소도시입니다. 김천은 올 들어 더위와 관련한 좋지 않은 기록 몇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로 폭염으로 인한 첫 사망자가 김천에서 나왔습니다. 7월 11일, 50대 노동자가 사망했고 사인은 "열사병 의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이었습니다. 이날은 그때까지 올해 가장 더운 날이었으나 김천의 낮 최고기온은 32도 정도였습니다. 다만 검안의사가 사인에도 불구하고 이를 꼭 열사병으로 볼 순 없다는 의견을 제시해 질병관리본부 공식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는 8월 4일 김천의 한낮 기온이 38.2도까지 올라 이날 전국에서 최고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이틀 뒤인 8월 6일 김천에 갔습니다. 폭염경보가 나흘 연속 내려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낮 최고기온은 조금 내려가 36도였습니다. 서울에서 김천까지는 차량으로 3시간 넘게 걸렸는데 출발 당시 서울 기온은 30도, 김천은 36도, 엄청난 차이였습니다. 목욕탕에서 한증막에 들어간 느낌이었을까요. 시험삼아 온도계를 꺼내 재봤더니 39도가 넘었습니다. 인상적이라 사진도 찍었습니다. 
잠시 헤맨 끝에 권호야 할머니 집에 도착했습니다. 권 할머니 집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단층 주택이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엔 텃밭, 오른쪽엔 광이 있었고 그 안쪽에 방 2개와 화장실이 있는 안채가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목엔 흰 수건이 둘러져 있었는데 방안에 들어가 잠시 얘기하는 중에도 할머니 이마와 얼굴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할머니는 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았습니다. 제 등에도 이내 땀이 배기 시작했습니다. 해를 직접 받는 것도 아닌데 후끈후끈했습니다. 선풍기에서 나오는 더운 바람 외엔 바람이라곤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김천에 있는 경북 주거지연대 이성우 대표가 이 집의 상태 진단을 위해 와주셨습니다.(권 할머니를 소개받은 것도 이 대표를 통해서였습니다.) 이 대표는 국내 2백여 명만 있는 '주택에너지진단사'이기도 합니다.


열화상 카메라로 먼저 방 내부를 점검해봤습니다. 온도가 높은 곳은 상대적으로 더 빨갛게 나타나는데 방 천장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듯했습니다. 카메라 화면에 천장 온도는 40.1도, 방에서 가장 온도가 낮은 곳도 36도나 나왔습니다. 온도계로 잰 바깥 기온은 38도, 방안은 35도였습니다.

이성우 대표 "지금 외부온도보다 훨씬 더 뜨거운 경우입니다. 이 집은 예전 슬레이트 집에다 그냥 판자만 얹은 형태이기 때문에 그대로 열이 전달돼서 안쪽에 계속 가열이 되는 거죠. 가열이 되면 열이 아래로 전도되는 상탭니다. 7,80년대에 지어진 집이라 당시에 단열 기준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지어진 집이기 때문에 벽이 블록으로 돼 있어서 전혀 단열성이 없습니다. 외부의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다 들어오고요. 겨울 같은 경우는 차가운 냉기가 그대로 다 들어오죠. 그런 구조가 돼 있죠."

기자 "그럼 더위와 추위에 모두 취약하겠네요?"


이 대표 "네. 그렇죠. 임시방편으로 살기 위해서 지었던 집들이라 그런 쾌적함을 고려하지 않고 지은 집들이 많습니다. 열을 받았던 구조물들이 밤 사이에 식지 않고 계속 열을 뿜어내는 그런 축열 효과 때문에 방이 계속 뜨거운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단열재라든지 이런 보강공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축열기능이 밤늦게까지 계속 지속된다고 보는 거죠."

올해로 73살인 권 할머니는 이 집에서 20년을 혼자 살았다고 합니다. 41년 전인 32살에 소방관이던 남편이 사고로 숨져 화장품 장사를 하며 세 자녀를 키웠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을 다 떠나보내고 할머니 혼자 이 집으로 왔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각자 살기 바쁘고 형편도 넉넉하지 않은데 할머니는 부양 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수급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슬레이트 지붕에서 비가 줄줄 새서 넉 달 전에 수리했습니다. 철거비용은 정부 지원을 받았는데 설치비용은 지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고리의 빚을 내야 했고 그 빚은 매일 다니는 자활근로 사업장에서 갚고 있습니다. 단열공사는 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갑갑해서 숨이 턱턱 막힙니다. 어쩔 도리가 없어서 물 퍼붓고 좀 있다가 또 나가서 물 퍼붓고. 어쩌겠습니까. 물이라도 퍼부어야지. 잠도 잘 못 자요. 한 2시 되면 자려고 조금 낫다 싶어서 자려고 하는데 그런데 어째 잠이 살짝 들면 땀이 나서 깨는 거야.. 그래서 3시 되면서 깨면 더 자도 뭐하고 (일하러) 갈 준비를 하는 거야. 더워서 집에 있는 것보다 거기 가 있는 게 낫다 싶어서 일찍 가버립니다."

"...방바닥에 누워 잡니다. 여기가 좀 차갑거든요. 여기 누워서 좀 있다가 잠이 들려고 하면 그러다가 또 안 돼. 그러면 물 퍼붓고 그렇습니다. 나 죽겠어요, 이렇게 가다가 더위 먹어서 죽겠어."


방에는 못 보던 디자인의 에어콘이 있었습니다. 전기세 부담에 에어콘을 안 켜는 건가 싶어 물어봤더니 할머니는 "몇년 전에 누가 준 건데 고장 났어요. 어디 치울 수도 없어서 그대로 두고 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할머니 방엔 창문이 하나 있지만 바로 앞에 광이 있어 바람길을 원천 봉쇄됐습니다. 창문 반대쪽 문은 화장실이었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이 하나 더 있지만 그 문앞은 담으로 막혀 있었습니다. 지붕으로 받는 열은 계속 축열되고 바람은 통하지 않으니 열기가 빠져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뜨거운 오후를 보내고 잠시 숨 돌렸다 저녁 상황을 보기로 했습니다. 저녁 7시 넘어 다시 할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도 이성우 대표와 동행했습니다.

바깥기온은 그사이 많이 내려가 31도를 가리켰는데 방안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방안은 32도, 오히려 바깥보다 높았습니다. 열화상 카메라로 다시 찍어봤더니 천장 온도는 좀 내렸는데 이번엔 천장과 벽 사이가 여전히 새빨갰습니다, 37도.


이성우 대표  "지금 오후보다는 약 3.5도 정도 온도가 떨어졌는데요, 사실상 외부 온도와 비교를 했을 때는 아직까지도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현재 보시면 영상으로도 지붕에서 뜨거웠던 열들이 지금 벽체로 전도를 통해서 전달된 상태거든요. 벽체 온도가 천장 온도보다 훨씬 더 높은 걸 볼 수 있는데요, 천장에서 내려오는 열을 축열을 하고 있다 라는 거죠. 이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면서 밤새도록 뜨겁게 되는 거예요. 거주하시는 분은 지속적으로 뜨거운 온도를 느끼면서 주무시게 되는 거죠. 보통 해가 떨어지고 난 다음에 새벽 4시 정도가 되면 온도가 많이 떨어지는데 수면 시간이라는 게 있잖아요. 충분한 수면을 못 취할 정도로 덥게 되니까 이분들이 되게 고생이 많으신 거죠."


저녁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돗자리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웃집 할머니와 함께 밖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마 뒤부터는 할머니 혼자였습니다. 모기에 시달리긴 했지만 밖이 시원하니 이렇게 나와 있는 게 낫다는 게 할머니 설명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양해를 구해 이날밤 할머니의 수면 상태를 관찰 카메라를 통해 살펴보기로 했습니다.밤 10시쯤 방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TV를 보다가 잠을 청했습니다. 바닥에 누웠다가 침대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침대에 다리만 올렸다가... 촬영된 영상을 통해 본 할머니의 자는 모습은, 잠버릇이 나쁜 아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던 할머니는 자정이 넘어서는 일어나 화장실을 향했다. 찬물로 샤워하고 왔다고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말씀처럼 새벽 3시쯤 일어났습니다. 새벽 4시에 이미 일어나 텃밭에 물도 주고 청소도 하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기자 "좀 주무셨나요?"
할머니 "아유, 조금 잤어요. 한 4시간이나 3시간 잤지 싶어요."
기자 "언제 일어나신 거예요?"
할머니 "더워서 깼어요. 3시 다 돼서."
기자 "밤에는 어떠셨어요?
할머니 "일어나가지고 저기 나갔다 와서 샤워하고. 나가서 또 좀 있다가 들어와가지고. 아이고, 더워서 못 자겠어요, 못 자겠어."


기온을 다시 재봤습니다. 바깥 기온은 이제 25도 정도, 열대야의 요건은 됐지만 38도까지 올라갔던 낮에 비하면 많이 식었습니다. 하지만 방안은 28도로 바깥기온보다 3도나 더 높았습니다.

이런 집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역시 이성우 대표의 답변입니다.

이 대표 "이런 가구 같은 경우엔 단열공사를 주로 하는데요, 될 수 있으면 외벽 단열을 통해서 건축물 자체를 감싸는 형태로 단열을 해놓게 되면 상당히 단열효과가 뛰어나고요. 그렇게 단열이 되었을 때 겨울 같은 경우도 외부의 따뜻한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외단열을 주로 권장해 드립니다. 천장 같은 경우도 지붕을 통해 내려오는 복사열 때문에 상당히 뜨거운데 만약 천장 단열을 하게 되면 단열재의 두께가 두꺼워지면 두꺼워질수록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어서 기존보다 훨씬 더 시원하게 지내실 수 있는 거죠. 겨울에도 상당히 춥게 겨울을 나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단열이라는 부분이 이런 분들한테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14년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저소득층이 20년 이상된 노후 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은 56%에 이릅니다. 고소득층은 이 비율이 24%로 훨씬 낮습니다. 또 저소득층의 30% 가량은 30년이 넘은 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거주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겁니다. 더군다나 저소득층에게는 자신이 주거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라는 게 거의 없고 금액에 맞춰서 거주공간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할머니는 올해 폭염도 고비를 넘겼으니 한숨 돌렸다고 했습니다. 조금 지나면 겨울 보내는 게 걱정입니다. 겨울을 지나면 다시 여름 걱정이 돌아오겠죠.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가 할머니 같은 분들에겐 더 가혹한 환경 같습니다. 내년 여름에도 할머니는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게 될까요. 김천을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