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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살인 폭염' 막겠다면서...검토만 4년째



-올해도 2013년 못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폭염과 폭염 피해만큼은 말이다. 전국 45개 지점 평균으로 하루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을 '폭염일'로 보는데 2012년 15일, 2013년엔 18.5일, 2014년은 7.4일이었다. 작년이 수치상으로 덜 더웠다. 더위로 인한 온열질환자 수는 2012년 984명, 2013년 1195명, 2014년 561명이었는데 올해는 8월 4일까지 680명이다. 온열질환 감시 의료기관에서 보고한 사망자 수는 2012년 15명, 2013년 14명, 2014년 1명이었는데 올해는 8월 4일까지 7명이다. 환자 수는 2013년에 육박할 것 같다.

폭염엔 야외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해 여름, 이런 폭염에도 실외 작업을 해야만 하는 현장노동자들의 고충을 취재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무더위 휴식시간제'라 이름 붙인 제도를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었다. 대형건설사의 공사현장에선 그럭저럭 지키고 있었지만 중소규모 현장은 그러지 않았다.

노동부에서도 문제는 알고 있었다. 2012년 하반기부터 '무더위 휴식'을 권고가 아니라 의무화하기 위해 검토 중이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중에, 사업주가 노동자의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해야 하는 작업들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중 '고열작업'에 폭염시 실외작업을 추가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2013년엔 폭염 때문에 14명이 사망했다. 노동부는 아직 규칙 개정을 검토하고 있었다.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하는 기사를 그해 8월에 썼다. (당시 기사 보기 => 말뿐인 폭염 휴식제,  취재파일 => 숨이 턱턱..살인 폭염 막으려면)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으나 다음달, 장하나 의원 등 17명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아예 법에 '무더위 휴식'을 의무화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이 정도는 했겠지'...정부를 너무 믿었나.

2015년 여름, 폭염과 관련해 어떤 문제를 짚어볼까 궁리하다 2년 전 기억이 났다. 규칙은 당연히 개정돼 있을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규칙은 바뀌었지만 현장에선 아직...' 이런 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려 했다. 법이 바뀌었다 해서 현실까지 한꺼번에 개선되진 않기에 '준법'하라고 역시 촉구하는 차원으로 기사를 쓰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대형건설사의 도시철도 공사현장을 먼저 갔다. 한낮 가장 뜨거운 시간인 오후 2시 무렵, 천막 아래 그늘에서 노동자 십여 명이 수박 화채를 먹으며 쉬고 있었다. 수박 화채는 특식이었으나(어느 노동자의 말씀, "오늘 왜 수박화채가 나왔나 했더니 방송사에서 와서 그랬구만. 매일 취재오쇼!") 그늘과 물과 식염은 평소에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날그날 기상 상황에 따라 휴식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한다고 했다. 50분 일하고 10분 쉬거나 아무 뜨거울 때는 30분 일하고 30분 쉰다든지. 

현장 관리자의 말이다.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폭염 때는 더 쉬게 해서 건강에 문제 없도록 관리합니다. 1명이라도 쓰러지거나 만에 하나 사망 사고라도 생기면 그것부터 큰일인데다 회사 이미지 하락이나 추가 인원 투입, 치료 같은 손실도 훨씬 크니까요. 또 계속 이 일을 해오던 분들로 공사를 진행하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고요."

하지만 소규모 공사현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빌라를 새로 짓는 공사장이었는데 점심시간 외엔 휴식이 없었다. 간간이 물을 마시는 것 외에는 계속해서 일을 하는 식이었다.

현장 노동자의 말이다.

"너무 뜨거울 때는 자기도 모르게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죠, 아무리 정신 차린다고 그래도. 날씨가 더워도 일은 해야만 하니까 사고도 나는 거예요...큰 현장 가면 식염 같은 것도 주잖아요. 작은 데는 그런 곳이 드물어요. 하청을 주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야. 자꾸 잘라먹으니까, 하청에 하청 또 하청. 그러니까 사고나지... 여기 일하는 사람들 전부 50대 후반, 60 넘은 사람들이에요. 젊은 사람들 같지 않죠."

달라진 게 없었다. 법도 규칙도 바뀐 게 없었다.


-정부는 4년째 '검토 중'

정부는 2012년 하반기부터 검토하기 시작했다는데 지금도 "검토 중"이었다.

2013년 9월 발의됐던 법 개정안은 어떻게 됐는지 국회 회의록을 찾아봤다. 2013년 9월 발의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그해 12월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됐다. 그리고는 1년 동안 논의되지 않았다. 2014년 12월에 드디어 법안소위가 열렸는데 이때 노동부의 입장은 법을 개정하기보다는 규칙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입법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원래 검토하고 있었으니 법을 바꾸느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야당 의원이 이의를 보이기도 했으나 그렇게 정리됐다. 법안소위가 끝나고도 9개월이 지났다. 노동부는 여전히 규칙 개정을 검토하고 있으며 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4년째 검토하는 사이에, 온열질환자는 3천 명 넘게 나왔고 이중 실외 작업장에서 발생한 환자는 약 30%에 이른다. 환자 발생의 책임이 정부에 있는 것만은 아니지만 최소한으로 보이는 규칙 개정조차 미루고 있는 건 왜일까.


-"여름만 되면 반짝"... 내년 여름에도?

기업이나 재계의 반대 때문일까.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2년 전에도 인터뷰했던 민주노총 노동보건안전국장은 이렇게 진단했다.

"여름에 이 문제가 제기가 되면 제도화하는 걸 만지작거리다가 여름이 지나서 다시 관심에서 멀어지면 노동부가 다시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그렇게 현재까지 온 상태거든요. 적극적으로 조치를 안 하고 여론에서 문제되면 할까 말까 망설이고 이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들이 반대할 것이란 얘기도 있는데 사실 폭염시에 일정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게 사고도 줄이고 기업의 이미지나 작업 생산의 유지나 이런 데도 도움이 되는 요소가 더 많은 거죠. 무조건 작업 중단하면 생산 차질, 이렇게 생각하는 건 낡은 기업의 경영 인식인 거고 폭염 휴식 이런 조치하는 게 기업의 입장에서도 훨씬 더 도움이 되는 조치라고 생각해요. 기업 몇곳만 하겠다고 하면 지속하기도 어렵고 부담도 커지니까 이런 게 법제화되면 작은 부분에서나마 노사가 윈윈할 수 있는 그런 조치 아닐까요." 

"정부도 칭찬받고 노사도 윈윈할 수 있는데 왜 계속 미적대는 건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