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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도 몰랐던 '그 아들'을 찾아서(1)


**위 사진은 구글에서 찾은 샘플..





-모르는 사람인데 제 아들이래요!


7월 어느 날, 날아든 제보.


"모르는 사람인데 제 아들이래요!"


이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좀 말씀해보세요."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봤는데 거기 모르는 사람이 아들로 나와 있었어요."

"모르는 사람이요?"

"네, 37살인데 제 아들이래요."


처음 들었던 생각, '관계기관의 실수 아닐까?'.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서류를 다루면서 실수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나씩 밀려 적거나 빼먹거나 그런 식으로. 백 번 문제 없이 처리하다가도 한번 방심하면 실수할 수 있는 것. 물론 담당자 입장에선 사소한 실수 하나이겠으나 당사자라면 엄청난 피해일테니 만약 그런 것이라면 취재할 만하다 싶었다. 또 다른 피해자도 있을테테고. 그래서 제보자를 만났다.


60대 아주머니였다. 자신에겐 딸만 둘 있다고 했다. 가족관계 증명서를 보니 먼저 등록기준지,가 나와 있고, 본인 이름과 출생연월일, 주민번호, 성별, 본.. 그 아래로 가족사항이 있었는데 부와 모, 그리고 자녀 3명. 제보자가 말한 두 딸 이름 아래 정말 남자 이름이 하나 적혀 있었다. 나이는 37살. 그런데 제보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란다. 딸들과는 성도 달랐다. 정말 담당공무원의 착오, 실수로 이렇게 된 걸까?


"이걸 발견한 다음 어떻게 하셨어요?"

"제가 동사무소, 구청, 경찰서, 법원까지 다 가봤는데 자기들도 모르겠다고 소송하라고 해요. 제 잘못도 아닌데 이걸 제가 소송까지 해야 하나요? 저 좀 도와주세요."



-서류상으로는 '가족관계'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주민센터에 가보기로 했다. 


주민센터의 담당공무원은 친절한 편이었다. 제보자는...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떼를 쓰기도 했는데 이 공무원은 찬찬히 얘기를 들어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제보자를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아들'의 이름과 주민번호 정도밖에 모르는 상황이어서 일단 다른 서류도 발급받아보기로 했다. 제보자가 서류상으론 일단 '어머니'이기에 '그 아들'의 가족관계 증명서도 발급받을 수 있었다. 만약 제보자의 가족관계 증명서에만 실수로 잘못 기재한 것이라면 '그 아들'의 증명서엔 가족사항이 다르게 나와 있을 것이다.


'그 아들'의 가족관계 증명서 가족사항엔 부와 모만 적혀 있었다. 적어도 서류상으론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지 않다. 부에는 '그 아들'과 성이 같은 어떤 남자의 이름이, 모에는 제보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실제 '가족 관계'라면 두 증명서 모두 맞게 돼 있다. 담당공무원의 작성 중 실수라면 두 사람 모두의 증명서가 일치하게 실수하진 않았을 것이다. 즉, 이 두 사람은 서류상으로는 '모자' 관계가 맞았다. 전체 가족관계 전산망에 '가족'으로 등록돼 있는 것이다.



-30년 전 무슨 일이?


이 '가족 관계'는 어떻게 성립됐을까. '그 아들의 아버지'와 제보자는 서류상 혼인 관계는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니 '그 아들의 아버지'가 30년 전 '그 아들'의 출생신고를 할 때 '어머니'로 제보자를 기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제보자는 아들이 하나 있는 것으로 서류상으로 돼 있었던 것이다. '그 아들의 아버지'는 어떻게, 그리고 왜 제보자를 '그 아들의 어머니'로 적었을까? 제보자는 왜 30년 동안 이 사실을 몰랐을까?


두번째 질문에 대해선 호주제와 관련지으면 설명이 가능하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기 이전에 다수의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을 호주로 하는 호적에 들어가 있었다. 호적에는 호주와의 관계는 기록되지만 호주가 아닌 이의 가족 관계는 다 기록되지 않는다. 이렇기에 30년 전 '그 아들'의 출생신고가 이뤄졌지만 자신의 호적엔 이런 사실이 나와 있지 않았고 그래서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호주제 폐지 이후 가족관계 등록제가 시행됐지만 결혼이나 출산 등 가족 관계의 변동이 없으면 대부분의 경우 굳이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볼 이유가 없다. 그래서 2008년 이후에도 몰랐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출생신고서 양식..출처는 구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출생신고를 받았던 구청으로 찾아갔다. 구청에서 당시 출생신고한 서류 원본은 찾을 수 없었다. 이미 보존기한이 지났다. 전산화된 기록은 확인했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지 않았다. 30년 전 '그 아들의 아버지'가 와서 출생신고를 했고 '어머니'로 제보자의 이름을 적었다. 새롭게 알게 된 건 '어머니'로 적기 위해서는 주민번호와 본적지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부모의 신분 확인을 더 철저히 하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의 인적사항이 있으면 신고를 받아줬다고 했다.


담당공무원이 실수했을 가능성에 대해 구청에서는 이번과 같은 경우엔 '제로'에 가깝다고 답했다. 간혹 실수가 있더라도 이름 등의 글자가 틀리거나 숫자를 잘못 적지 통째로 뒤바뀌고 또 수십년 동안 유지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거다. 

 

주민센터나 구청에서나 결론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구청에선 다만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왜 굳이 '어머니' 이름을 적었을까요?"


당시에는 아버지가 자식의 출생신고를 할 때 굳이 모의 이름을 적을 필요가 없었다는 게 구청 측 설명이다. 모친 이름은 '불명'으로 처리해도 당시엔 출생신고를 받아줬다는 거다. 혼외 관계로 태어난 아이라면 모의 이름을 숨겨야할 수도 있기에 그랬다는 건데 안 적어도 되는 이름을 왜 적었을까 의문이라는 것. 


이제까지 확인한 사실과 상황을 놓고 보면 두 가지 가능성 정도인 것 같다.


(좀 길어지니 둘로, 다음은 다음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