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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도 몰랐던 '그 아들'을 찾아서(2)

(이전 글에 이어서...)


[소년탐정 김전일]을 참 재미나게 읽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한 통계에 따르면 소설판까지 포함해 총 148명 사망 ) 또 십년 이십년 전 어떤 사건에서 비롯된 원한이 깔려 있고 뜻밖의 인물이 범인이라는 '김전일의 공식'이 반복되면서는 좀 식상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재미났다. 특히 마지막 순간 사건 관련자 모두를 모아놓고 김전일이 좀 뻐기면서.. "범인은 바로 너얏!"할 때.


그러나 사실 김전일을 비롯한 많은 추리물은 저 위대한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시도한 숱한 설정이 후세에서는 그저 흔한 설정이 돼 버렸지만 첫 시도라는 점에서 애거서는 위대하다.(더 앞선 이가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특히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독자 모두의 뒷통수를 때리는 대반전이 압권이다. 아무도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그'가 범인이었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은 까닭을 눈치빠른 이들은 짐작하리라.


두 가지 가능성으로 다시 돌아가면 


첫번째는, 물론, '그 아들의 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제보자의 인적사항을 파악해 아들의 어머니로 도용했을 가능성이다. 이제까지 확인된 사실은 제보자와 '그 아들'의 가족관계 증명서에 이 둘은 모자 관계로 돼 있고 이는 30년 전 '그 아들의 아버지'가 작성한 출생신고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그 아들'과 '그 아들의 아버지'를 찾아 따져보는 게 꼭 필요할 것이다. 


두번째는, 제보자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다. 즉, 애초에 가족관계 증명서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 제보자와 '그 아들'이 실제로 모자 관계라고 한다면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설명이 된다. 제보자와 '그 아들의 아버지'는 어떤 사연으로 아이를 낳았고 '그 아들의 아버지'는 30년 전 부모의 이름을 적어 출생신고했으며,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족관계 등록제가 시행되면서 최근 발급받은 제보자의 가족관계 증명서에 이 관계가 드러났다면 논리적 모순이나 허점은 없어보인다.


만약 제보자가 거짓말한 것이라면 왜 방송사 기자한테까지 제보했을까? 보통은 이런 과거는 숨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텐데. 이에 대해서는 방송사 기자의 힘?을 빌어 혹은 이용하면 가족관계 증명서에서 '그 아들'의 존재를 지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일부 제보자들이 그러하듯.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제보자에게 따져봐야 했다.


이 두가지 외에 다른 가능성은?... 모르겠다.


제보자에게 연락했다. 


"제가 이런저런 상황을 놓고 살펴보니 두 가지 가능성 정도로 정리가 되네요.

....중략... 저한테 거짓말하신 거 아닌가요?"

"전혀 아니에요. 저는 하늘에 맹세코 저런 아들을 둔 적이 없어요."

"저는 도와드리려고 하는 거니까 비밀은 꼭 지킬게요. 진짜 아니에요?"

"네, 절대 아니에요. 무슨 유전자 검사나 그런 거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서 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게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보자가 부인하는데 거짓말이라고 할 근거도 없다. 또 제보자의 자녀 2명과 '그 아들'의 생년월일을 따져봐도 그러했다. 출생신고 날짜가 모두 정확하다고 전제할 때 제보자의 둘째 딸이 태어난 뒤 1년 6개월이 지나 '그 아들'이 태어났다. 만약 제보자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제보자는 둘째 딸을 낳은 지 8개월 뒤에 '그 아들'을 임신한 게 된다.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상식에 비춰볼 때 아직 젖먹이인 딸을 포함해 어린 두 아이를 둔 엄마가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진 않지만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첫번째로 다시 방향을 돌렸다. '그 아들'과 '그 아들의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 현재 갖고 있는 건 그 둘의 본적지. 서울에서 아주 먼 곳이다. 거길 일단은 가야할텐데 본적지에 살고 있을 가능성은 아주 낮아보였다. 이름과 주민번호와 본적지만으로 찾을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제보자와 '그 아들'이 현재 서류상 모자 관계라는 거다. '그 아들'의 가족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제보자는 '그 아들'의 다른 서류도 떼볼 수 있을 것이다.


제보자를 통해 '그 아들'의 주민등록 초본을 입수할 수 있었다. 이사하면 주민등록도 현재 거주지로 이전해야 한다. '그 아들'의 최근 주민등록지는 경기도의 한 도시였다. 2012년 이사온 것으로 돼 있었다. '그 아들'을 만나러 가자.


'그 아들'의 주소지는 오래된 주택가 한켠에 있는 3층짜리 연립주택이었다. 


같은 번지의 집이 여러 곳 있었다. 이집인지 저집인지 확신할 수 없었으나 다행히 우편물이 몇 개 꽂혀 있었다. 운 좋게도 '그 아들'이 수신인인 우편물이 있었다. '그 아들' 주소지는 일단 여기가 맞다. 


그러나 여기 실제로 살고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였다. 초인종을 몇 번 눌렀지만 고장난 듯 반응이 없었다. 무엇보다 1,2,3층 중 몇 층에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를 맞으며 얼마간 기다린 끝에 집에 들어오는 2층 거주자를 만날 수 있었다.


"여기 000씨 사시나요?"

"네, 우편물이 오더라고요. 그런 사람 있어요."

"1층인가요, 3층인가요?"
"3층에는 애들 데리고 사는 사람이니까 1층인 것 같은데요."

"작년에 이사온 것 같던데.."

"네, 맞아요." 

"혹시 연락처 아시나요?"

"아뇨, 거의 밤 늦게 들어오고 일찍 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어요."


1층 거주자가 '그 아들'이었다. 만날 수 있을까? 일단은 기다렸다....그날, 만날 수 없었다.


가정법원에 문의했다. 공보판사는 이런 경우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를 내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제보자의 주장처럼 허위의 출생신고나 불명확한 친생자 관계 등에 대해 친생자 관계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위한 소송을 낼 수 있고 이때 소송의 상대는 가족관계등록부 기록상 친생자 관계가 있는 상대, 이번 사례에서는 '그 아들'이다. 소송 진행 과정에서 유전자검사 명령 등을 거치게 되기 때문에 제보자의 말처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친생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제보자에게 알려줬고 제보자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처음 언급한 두 가지 가능성으로 정리한 뒤 기사로 쓸 수 있을지를 검토해봤다. 제보자의 인적사항을 도용했다는 게 확인됐다면... 그래도 기사쓰기는 어려워보였다. 당시 출생신고의 허점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30년 전 얘기다. 다른 피해 사례는 당장은 찾기 어려울테고. 제보자가 거짓말했다면.. 그러면 거기서 끝이다. 그래서 '그 아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쏟지 않았던 이유다. 그래도 굳이 '그 아들'의 주소지를 찾아가봤던 이유는 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기사쓸 수 없거나 기사쓰기 어려운 소재를 놓고 끝까지 파헤치기엔 여러 여건상 무리라고 봤다.


그러니까 이건 실패한 취재기다. 


이 과정을 일부러 주절주절 적은 이유는 그간 여기에 쏟았던 약간의 노력이 아쉬워서이기도 하고 내가 정리한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Y'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궁금한 부분도 해소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