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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생각

'의원님'과 '선배'에 대한 생각

기사 보기: 왜 기자들은 국회의원을 선배라 부를까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기사다. 


국회의원을 선배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기자의 또 하나의 특권이라고 여기기에 이런 기사도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개개인이 하나의 헌법기관이자 막강한 권력을 지닌 국회의원들인데 친밀한 호칭인 선배라고 칭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자, 기자와 국회의원들의 밀착 정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고, 불가근불가원 원칙을 지키지 않아 비윤리적이다, 라는 게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의 입장 같다. 


몇년 전 국회 담당을 얼마간 하면서 여러 의원들을 선배라고 불렀던 경험에 비춰 이 기사 내용을 돌아봤다. 처음 국회에 가게 됐을 때 국회의원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처음엔 애매하여 주변에 물어보기도 했는데 좀 친해지면 선배라고 하는 게 여러 모로 편하다는 의견이었다. 


일률적으로 선배라고 한 건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국회의원과 기자 사이의 독특한 호칭인 것은 맞지만 아무나 그렇게 부를 수 없다. 대변인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얼굴 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해서 친분이 쌓인 이들에겐 좀더 편하게 선배라고 불렀고 아무래도 나이 차가 적은 이들에게 선배라고 하기도 좋았다. (나이가 어린 탓에 나를 선배로 부를 만한 이들은 별로 없었다.) 나이가 많거나 재선, 3선 등 다선이거나 당직을 맡고 있는 등 여러 의원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대표님, 혹은 의장님 등등의 호칭을 사용했다. 


국회에서 또 선배라는 호칭은 역시 어느 정도 친분을 쌓은 당직자에게도 사용했다. 국회의원이 아닌 당직자들, 이를테면 공보실장이나 부대변인 등등. 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에게도 사용했다. 역시 좀 친해지면 선배라고 불렀고 처음에는 죄다 보좌관님이었다. 


선배라고 부르는 게 익숙한 이유는 회사 선배들을 선배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국장부터 바로 한해 윗 선배까지 대개는 선배라고 부른다. 선배라고 부른다고 더 친밀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윗사람이라면 형이나 누나 같은 호칭이 더 친밀하다.  


취재원에게 직함 외에 다른 호칭을 사용한 건 경찰 기자를 해본 이들은 다 안다. 형님이다. 경찰을 부를 때 대개 형님이었다. 서장이나 과장 등에게는 친하지 않으면 잘 쓰지 않지만 강력팀, 형사팀 등 주로 현장에서 뛰는 이들은 거의 무조건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해서 친해진 형님들에겐 지금도 형님이라고 부른다. 


기자가 경찰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 국회의원을 선배라고 부르는 비율에 비해 절대적으로 전자가 높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를 놓고 기자와 경찰의 유착 관계 운운하는 건 듣도보도 못했다. 경찰이 그만큼 국회의원에 비해 권력을 덜 가진 집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 기사의 소재가 흥미롭되 공감가지 않는 이유는, 첫째, 기자들 대부분은 특정 집단을 모두 같은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고(이는 기자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 둘째, 기자와 국회의원의 유착 관계가 선배라는 호칭을 쓴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닌데 그런 점은 기사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다. 


국회의원들도, 당연히 아무 기자나 자신을 선배라고 부른다고 해서 친밀하게 대하지도 않을 것이고 기사에 언급한 여러 의원들이 털어놓은 것처럼 생뚱맞아 할 것이다. 기사에 나온 정청래 의원의 사례처럼 그런 기자를 대놓고 무안하게 만드는 이도 있는 것이고. 


그런 의원들의 속내에는, 대개 나이도 어리고 경력이든 뭐든 일천한 기자들이 감히 자신들을 선배라고 부른다는 것에 대한 반감도 들어있지 않을까. 기자니까 참아준다, 하는 식의 생각들. 의원님과 선배라는 호칭 가운데는 친분의 차도 있지만 권위의 차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