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만 해도 사무실에서 다들 피웠다"
"20년 전엔 비행기에서도 뒷좌석에선 그랬다"..
이제는 가히 '흡연 전설', 레전드감인 이야깁니다. 옛날 옛적, 그때 그시절엔 그랬다죠? 더 이상은 아닙니다. 금연구역이, 흡연자들 보기엔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단속도 일단 늘어나고는 있죠.
금연구역에 대한 기사는 올 들어서도 여러 번 썼기 때문에 '금연구역 확산', '흡연단속 건수' 같은 통계를 언뜻 봤을 때는 '기사 되겠어?'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 그렇게 치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서울 서초구는 2013년 1월부터 7월까지 11,297건의 금연구역 내 흡연을 적발했습니다. 하루 평균 53건, 1건에 과태료 5만 원씩이니까 5억 6천만 원 정도 수입을 올렸네요. 서초구에서 고용한 흡연단속 전담요원은 18명이니까(직원들까지 더하면 20명이 넘습니다만..) 이들의 연봉을 지급할 정도는 충분히 되겠죠.(실제로 이 수입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시와 서초를 포함한 25개 구의 흡연 단속 전체 건수는 14,291건입니다. 처음엔 '0'이 하나 빠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죠. 서초구 단속 건수가 79%를 차지했습니다. 황당할 정도의 비율입니다. 반면 바로 옆 강남구는 같은 기간에 339건, 송파구 447건, 이른바 강남 3구 중에서도 서초구만 유독 높거나 강남, 송파가 유독 낮은 거죠.
더 놀라운 건 성동, 광진, 도봉, 노원, 서대문, 강북 지역에 있는 5개 구입니다. 1월부터 7월 사이에 한 건도 '적발되지' 않았습니다. 0건입니다. 중랑, 강북, 마포, 구로 4개 구는 1건입니다.
왜 이런지 따져봤습니다.
서초구에 흡연자가 유독 많아서일 수도, 혹은 금연구역이 유난히 많아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둘다 아니네요. 2011년 조사 결과 서초구는 흡연율 17.8%로 서울에서 가장 낮은 구로 나타났고 지난해 조사에서도 하위권에 속했습니다. 금연구역에서는, 실외 금연구역만 놓고 보면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입니다. 2013년 상반기 현재 753곳, 그 다음은 강동구 360곳, 관악구 324곳, 서초구는 100곳으로 구청 중에서는 7번째입니다.(조례로 정한 금연구역 외에 구청장이 따로 지정한 곳까지 더하면 301곳이라는군요. 그래도 가장 많지는 않습니다.)
한눈에 드러나는 결정적인 차이는 단속인력입니다. 서초구와 서울시 단속인력은 20명이 넘는데 반해 대부분의 구는 3명 이하입니다. 이 인력으로 구청 관할 전 지역, 실외/실내 가릴 것 없이 금연구역 내 흡연단속을 합니다. 보통 보건소 건강관리과 직원들도 동참하는데 다른 업무도 많습니다. 단속에만 '올인'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금연 구역은 계속 늘어나고만 있습니다. 관련 법이 바뀌고 해당 조례가 개정되면서 계속 확대됩니다.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국회에서, 시의회, 구의회에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행정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데도 그렇게 합니다. 법 따로, 현실 따로가 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2015년이면 서울 전역의 20%가 금연구역이 된다는 추산도 나왔습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랍니다. 이대로면 '무늬만 금연구역'이 될 가능성 높습니다.
시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지하철역 주변이라도 어느 구는 금연구역, 어느 구는 흡연 가능 구역, 같은 광장이라도 어느 구는 흡연할 수 있고 다른 구는 안되고. 더 열받는 건 금연구역 내에서겠죠. 교통법규를 위반한다고 해서 모든 차량을 단속할 수 없듯이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이들을 모두 단속할 수야 없겠지만 저렇게 현격한 차이가 날 정도라면 단속당하는 흡연자는 흡연자대로, 단속 안 당해서 금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흡연자를 보는 비흡연자 또한 불만이겠죠.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방자치 시대, 모든 지자체에서 일률적으로 같은 정책을 펼 수만은 없습니다. 구의 특성에 맞게 정책을 펴야죠. 서초구의 흡연단속이 꼭 정답이라고만 하기도 어렵습니다. '풍선 효과'도 분명 나타나겠죠. 하지만 정책 방향이 맞다면 어느 정도는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야 시민들 불만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흡연 단속에 한해서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멋대로 정책이네요. 설사 단속을 당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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