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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서울을 거닐다 생각

국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기사 보기-> 치욕의 역사물 '네거티브 문화재' 논란


경술국치(庚戌國恥), '일제가 대한제국에게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년(1910년) 8월 29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뒤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죠.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국된 건 미군정을 거쳐 그로부터 3년 뒤죠.


식민 통치를 받다가 해방된 날은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기리는데, 식민 통치를 받기 시작한 날은 불과 2주 차이인데 조용히 넘어갑니다. 치욕스런 역사지만 절대 잊지 말자고 하면서도요. 치부는 감추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일까요. 이른바 네거티브 문화재, 네거티브 유산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경술국치 당일인 8월 29일 오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엔 일본인 관광객 20여 명이 와 있었습니다. 단체 관광온 가고시마 현 주민들이었는데 4박 5일 짧은 일정 중에 여길 들렀습니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일본에서는 식민 지배나 위안부 같은 이른바 '흑역사'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면 왜 그렇게 한국인들이 사죄를 요구하고 일본을 때로는 미워하고 그러는지 잘 모른다는 거죠. 


남녀 노소가 고르게 섞여 있던 일행은, 일본어로 된 설명을 들으면서 역사관을 둘러봤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표정은 진지해졌습니다. 아이들 몇몇이 돌아다닌 것 외에는 지루해하거나 관심없어 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죠. 


노지마 마사오씨의 관람 소감입니다.


"일본이 한국 사람이나 북조선 사람, 중국 사람에게 저지른 일을 일본인들은 너무 모르고 있어요. 교육이, 그러니까 이런 사실을 가르치자는 사고 방식이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이나 일본 정부나 신문에는 거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진짜 있었던 일을 가르치자는 마음요. 일본인들에게 진실을 가르치고 배우는 기회라는 건 깜짝 놀랄 정도로 없다는 거죠."


"심각하다고 할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일본 군대와 정부가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자신의 정당함을 밀어붙이기 위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도 그런 일을 했지요. 한국인만 희생된 게 아니라 일본인도 일본의 군대와 정부로부터 당한 겁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개소한 뒤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일제 당시 민족 수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옥사부터, 고문실, 사형장 등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숱하게 고초를 겪고 처형당하기도 했던 공간입니다. 해방 뒤엔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를 거쳐 서울구치소가 됐습니다. 1987년 의왕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서대문형무소와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민주화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희생당하기로 했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한때 철거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역사 교육현장으로 활용하자는 청원이 받아들여져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습니다. 그리고 15년, 현재는 연 57만 명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습니다. 방문객 중 학생이 40%, 일반인이 60% 정도 비율인데 외국인 관광객도 10% 정도 된다고 합니다. 





18년 전인 1995년 8월 15일, TV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아닌지 가물가물합니다만 어쨌든 옛 조선총독부 청사, 당시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던 그곳이 철거되는 장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일제가 우리 민족 압살을 위해 풍수지리를 활용했고 그 일환으로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다는 둥 말뚝을 박아놨다는 둥 여러 얘기들이 있었죠. 북한산은 대(大), 조선총독부는 일(日), 경성부는 본(本), 합쳐서 대일본(大日本)이라고 했다는 후문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일제 식민 지배의 상징과 같은 조선총독부 청사이기 때문에 경복궁 안 그 자리에 그냥 놔둘 수 없었다는 주장에 일정 정도 공감은 갑니다만, 그렇게 아예 철거해 없애버려야 했을까 싶은 생각도 한편으로 들긴 했던 것 같습니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1926년부터 20년간 일제가 조선을 식민 통치한 근거지였고 1945년엔 미군이 그 총독부에서 마지막 총독 아베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군정청으로 사용하다, 1960년대부터는 정부 중앙청사로 사용되고 1986년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습니다. 저는 박물관이던 시절에 한두 차례 다녀갔던 것 같습니다.


일제의 상징과 같은 건물이기는 하지만 패망의 순간까지도 담고 있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또 미 군정과 정부 청사에 박물관까지, 1900년대 주요한 역사적 사건과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물이었고 조선 최고의 근대건축물이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 같습니다. 


일본 관광객들이 찾아와 "여기가 옛날 우리가 조선을 통치했던 본부야"라면서 기념 촬영하는 꼴을 보지 않게 돼 시원하다는 반응 등이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처럼, 재탄생시킨 뒤 일본인 관광객들이 찾아와 당시 잔혹하고 악랄하기까지 했던 식민통치와 독립을 향한 조선인들의 투쟁 등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면 어땠을까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해마다 150만 명이 찾아오는 관광 명소이자, 나치의 만행을 현재까지도 전세계에 알리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 자리잡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 돔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역사적 사실과 그 의미, 교훈까지도 담아 보존하고 관리한다면 네거티브 유산도 훌륭한 교육현장이자, 관광명소로까지 자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 한쪽에 걸려있는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입니다.


치욕스런 역사가 다시 반복된다면 그건 옛 선현의 말처럼 희극이겠죠. 네거티브 문화재, 유산에 대한 성찰과 관심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