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기=> 매매 수수료보다 전세 수수료가 비싸…왜?
전셋값은 계속 오르고, 내가 원하는 전셋집은 찾기 어렵고, 여기에 전세 중개수수료까지, 그야말로 '전세 3중고'다. 전셋값이 급작스레 오르다보니 벌어지는 기현상이 여럿 있다. 2년마다 계약 갱신을 하는데 매번 50%씩 올려줬다는 사례, 계속 올려주다보니 매매보다 전세가 비싸졌다는 사례, 전셋값을 올리지 않는 대신 월세를 얼마 내라는 반전세가 등장했다는 사례... 그 중 하나는, 매매보다 전세 수수료가 더 비싼 경우다.
현재 전세의 중개수수료는, 5천만 원 미만은 거래금액의 최대 0.5%에 20만 원 한도, 5천만 원~1억 원은 0.4%에 30만 원, 1억~3억 원은 0.3% , 3억 원 이상은 0.8%, 이렇게 구간에 따라 다른 요율이 적용된다. 거래금액이 올라갈수록 요율이 낮아지는 이유는 물론 전세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0.5-> 0.4->0.3으로 낮아지다 다시 0.8로 높아지는 건 고가의 주택 전세엔 상대적으로 비싼 수수료를 부과하기 위한 의도에서다.
2013년 11월 현재,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3억 5백만 원이다. 서울 전체 아파트 중에서 3억 원 이상 전세의 비중은 39%로 전셋집 10곳 중 4곳에 해당한다. 고가의 주택 전세에 상대적으로 비싼 수수료를 부과한다고 하기엔 비중이 너무 크다. 의아하다.
의아한 건 또 있다. 매매 중개수수료는 5천만 원 미만은 거래금액의 최대 0.6%에 25만 원 한도, 5천만 원~2억 원은 0.5% 80만 원, 2억 원~6억 원은 0.4%, 6억 원 이상은 0.9%. 역시 구간에 따라 다른 요율이 적용되는데 0.6->0.5->0.4로 낮아지다 다시 0.9로 높아지는 건 전세와 비슷하다. 역시 고가의 주택 매매에 상대적으로 비싼 수수료를 부과하는 거다. 3억 원~6억 원 전세라면 수수료는 최대 0.8%, 3억~6억 원 매매면 수수료는 0.4%, 같은 금액인데도 전세 수수료율이 더 높다.
3억 원짜리 전세라면 최대 240만 원, 3억원짜리 매매라면 최대 120만 원의 수수료, 많이 이상하다.
이렇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 이유는, 변화된 현실을 따라오지 못한 제도 탓이다. 문제의 중개수수료율이 마지막으로 정비된 게 2001년이다. 2000년 11월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격은 1억 8백만 원이었다. 전체 아파트 중 3억 원 이상 전세의 비중은 1.51%로 100곳 중 1곳 정도에 해당했다. 매매 평균 가격이 1억 9천만 원, 3억 원 이상 전세면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고가의 전세였다. 당시 상황에 맞춰 개정된 중개수수료율이었던 거다.
중개수수료 기준이 처음 마련된 건 1984년이었다. 이때는 1백만 원 미만부터 시작했다. 1백만 원 미만은 최대 0.09%에 한도는 7천 원, 1백만~5백만 원은 0.07%에 3만 원, 5백만~1천만 원은 0.06% 5만 원, 1천만~3천만 원은 0.05% 12만 원, 3천만~5천만 원은 0.04% 15만 원... 이런 식이었다. 전세와 매매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17년 만에, 2001년에 중개수수료가 정비된 것이다. 최소 구간 금액이 10배로 뛰었고, 수수료율도 제법 많이 오른 셈이다.
2000년대 말부터 전셋값이 말그대로 '미친 듯이' 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전세가 매매를 뛰어넘는 이상한 상황, 전세 수수료가 매매 수수료보다 많아지는 의아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한 시민 민원이 잇따르면서 서울시의회 일부 의원들이 나섰다. 김명신 의원이 조례 개정안을 마련해 동료의원 13명의 찬성 서명을 받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전세 중개수수료에서 구간을 좀더 나눠 1억~4억 원은 최대 0.3%에 한도 백만 원, 4억~6억 원은 0.25%, 6억 원 이상일 때는 0.5%로 수수료율을 바꾸는 것이다. 평균 전세가격이 3억 원을 넘어선 만큼 3억~6억 원 사이 구간 수수료 상한선을 낮추고, 고가 전세의 기준을 6억 원 이상으로 올려 더 부과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이 조례 개정안은 발의된 지 불과 하루 만에 반려됐다. 발의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다. 좀더 정확히는 발의 당시엔 요건을 갖췄지만 하루 만에 상황이 바뀐 것이다.
상황을 알아보니, 원래 김명신 의원은 발의자인 자신을 제외하고 의원 13명의 찬성 서명을 받았다. 시 조례 제정 혹은 개정안을 발의하려면 의원 1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김 의원은 최소 요건에서 4명 더 서명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발의 전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찬성한 의원들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 블로그 주소 등이 공인중개사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됐다. 서울 지부를 중심으로 찬성 의원들에게 하루 100통 넘게 전화가 걸렸고 이메일, 문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정안의 부당성에 대한 의견이 쏟아졌다고 한다. 다소 거친 표현과 일부 욕설도 섞여 있었다는 게 의원들의 설명이다. 7명이 찬성 의사를 접었다.
김 의원은 다른 의원들에게 부탁했다. 3명이 다시 찬성 서명을 했다. 공인중개사들의 집단 대응이 이어졌다. 이번엔 1명이 철회했다. 문제의 조례 개정안에 찬성하는 의원은 김 의원을 포함해 9명 밖에 남지 않았다. 10명 찬성이 필요한 요건에 1명 부족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례 개정안은 반려됐다.
조례 처리 절차는 이렇다. 먼저 조례 제정이나 개정안이 발의되면 해당 상임위에 상정된다. 상임위 차원에서 조례안의 내용에 대해 토론을 거치고 전문위원 검토와 심사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조례안 내용이 조정될 때가 많다. 이후 상임위 표결을 통해 본회의로 넘어가고 본회의에서 다시 토론과 논의를 거쳐 표결, 그래야 비로소 조례안이 조례가 된다. 그러고도 시행은 통상 유예기간을 두기 마련이다.
즉, 전세 중개수수료를 조정하는 조례 개정안이 이번에 발의됐다 해도 언제 처리될지는 기약이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또 이번 8대 의회가 내년 6월이면 끝나는데 이때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조례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구성된 현재 8대 서울시의회에서 최근까지 발의된 조례 제정 및 개정안은 1707건이다.(2013년 11월 현재) 이중에 원안대로 가결된 건 972건에 불과하다. 수정된 게 285건, 부결되거나 폐기, 철회된 게 163건, 아직 처리되지 않은 게(계류 중) 287건이다. 이러저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저 개정안은 처리되지 않고 있다가 자동 폐기 수순을 밟았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런데 발의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아래는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던 김명신 의원과의 인터뷰 내용 일부다.
"...시의원들은 서울 시민 전부를 모셔야 되죠. 물론 협회에 계신 분들도 시민이지만 그래도 대다수 시민들을 모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집을 매매하거나 또 전세나 월세를 얻는 건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라서... 꼭 필요하고 또 어느 정도 저항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원의 조례 발의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그런 저항은 사실은 생각을 못했습니다.
...상임위 논의과정에서 수수료율이 어느 정도 오를 수 있다고는 사실 생각을 했어요. 너무 많이 후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시민들이 현재 겪고 있는 그런 갈등이라든가 그런 경제적 부담이 어느 정도는 조례 발의한 취지에 맞게 조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저항이 심하고 반발 수위가 높아서 사실 솔직히 깜짝 놀랐고요.... 사실 시장이 내는 조례는 입법 예고 기간이 있고 의원 조례 발의는 입법 예고 기간은 없지만 상임위 과정에서 충분히 의견 게재를 할 수 있는 그런 민주적인 절차가 확보되어 있는데도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거나 그거조차 인정하지 않는 건...현재 생활 민주주의를 대하는 태도와 그런 인식에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공인중개사 협회의 주장은 이렇다.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신고에 관한 법률]시행규칙 제20조제1항에서는 주택 임대차의 중개수수료는 1천분의 8 이내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위임입법인 조례에서 최고요율을 0.5%로 하향 조정하려는 것은 법체계상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중개수수료 요율을 개정함에 있어 부동산거래가액이 증가하면 이에 따른 중개업자의 손해배상책임이 함께 증가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개의뢰인의 일방의 입장만을 고려하여 조례를 개정하려 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명확한 근거자료와 기준없이 김명신 의원 블로그에서 밝힌 대로 “네티즌분의 강한 요구와 관련 칼럼들을 살펴보고” 수수료를 개정하는 것은 부동산중개업자의 입장과 현실을 전혀 고려치 않은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행 조례에서는 3억원 이상의 주택 임대차의 경우 0.8%이내에서 중개업자가 요율표에 직접 기재하고 기재한 범위 내에서 협의하도록 하고 있으나 부동산시장이 장기간 침체되고, 32만여명의 공인중개사가 배출되는 등 중개사무소의 과당경쟁과 과거와는 달리 부동산시장상황에 밝은 소비자들이 중개수수료 요율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절반의 중개수수료를 수수하는 것도 사실상 어렵고 힘든 상황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부동산중개수수료율(매매)은 0.9%(쌍방) 이내로 미국의 4~6%(매도인), 일본의 3%(쌍방합계), 중국 2.5~2.8%(쌍방)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아울러 우리 중개업계는 과거 역전세난이 있었던 상황과 현재의 매매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묵묵히 거래질서 확립과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음에도 업계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발의된 조례안은 절대 수용할 수 없습니다.
....
모든 법안이 그렇고 조례안도 그러하듯 발의된 뒤에도 많은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과 논의, 토론을 거쳐서 수정되거나 부결되거나 처리되거나 폐기된다. 그 과정에서 협회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협회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텐데 발의도 못 하게 하는 '실력행사'는 협회 회원 외엔 누구의 지지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김 의원은 협회 측 의견을 기다려본 뒤 다시 개정안을 발의하기 위해 준비하겠다고 했다. 협회 측은 국토교통부에서 현재 수수료 조정 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다. 국토부 용역 결과는 내년 상반기에 나올 것 같고 8대 서울시의회는 이제 일곱 달 남았다. 그 동안에도 많은 이들이 새로 전세를 구해 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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