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발표된 김현철 1집엔 버릴 노래가 하나도 없지만 한 곡만 꼽아보라면 내게는 아무래도 '춘천 가는 기차'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로 시작해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까지. '춘천 가는 기차'를 들으며 춘천으로 향하던 추억의 경춘선. 많은 이들이 청춘의 한 상징으로 추억하는 그 경춘선 열차 노선은 2010년 폐지됐다. 이제는 '춘천 가는 전철'이다.
한국 최초의 지하철은 1974년 서울역에서 청량리를 잇는 1호선인데 지금은 1~9호선에 분당선, 신분당선, 중앙선, 경의선 등등이 줄줄이 개통했다. 수도권 전철이라지만 실제로는 춘천과 천안까지, 강원도 영서내륙과 충남까지 연결하는 광역 노선이다. 또 인천, 부산, 대구, 대전, 광주 5개 광역시에도 도시철도가 운영되고 있다.
65세 이상이면, 이 모든 도시철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1981년부터 시행된 노인복지법 26조 경로우대 조항 덕분이다. 이 조항은 "국가 또는 지자체는 65세 이상의 자에 대해 국가나 지자체의 수송시설을 무료나 할인해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에서 그 할인율을 100%로 정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던 이 노인 무임승차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거지게 된 건 역시 노인이 너무 많아져서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은 대단히 젋은 나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4% 남짓에 불과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대한노인회 건의를 받아 노인복지법을 만들었다는데 그럴 만하기도 했고 부담도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올해 전국의 노인 비율은 12.2%,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 사회라고 한다는데 고령 사회 직전이다.
전국의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이 추산한 2012년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은 6개 도시를 합쳐 4,129억 원이다. 전체 손실 8천억 원의 51.6%에 해당한다.(여기에는 장애인 등 다른 무임승차도 포함되지만 대부분은 노인 무임승차) 2012년 무임 승차 인원은, 서울 메트로와 서울 도시철도공사만 합쳐도 2억 3천 5백만 명(누적 인원), 서울 노인 인구를 110만 명 정도로 봤을 때 1명당 214회 정도 이용했다는 계산이 나온다.(정확한 계산은 아닌 게 여기엔 다른 무임승차가 포함돼 있고, 또 경기도에서 이용하는 노인은 제외돼 있다. 다만 철도공사에서의 무임 승차 인원은 누락돼 있으니 더하고 빼면 크게 차이나진 않을 것 같다.)
서울시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시니어 패스'라는 무료 교통카드를 발급해준다. 지하철은 무료 이용이 가능하고 버스는 티머니를 충전해 이용하면 된다. 노인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종로 3가 역에 가보면 지상에서 연결되는 종묘 앞 공원에도 노인들이 많지만 날이 쌀쌀하거나 너무 더울 때는 역사 내에도 노인들이 많다. 여기서 만나본 노인들은 지하철 이용에 부담이 없기 때문에 마음껏 나들이 다닐 수 있어 아주 좋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만성적인 경영 적자 때문에 늘 고민인 운영기관 입장에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10월 말, 기관들은 공동으로 관계부처(기재부, 국토부, 복지부)에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노인복지법의 경로우대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조정하는 안, 무임승차 손실을 보전해달라는 안이다. 보전액으로 요구하는 돈은 한해 3,315억 원 정도다. 서울시 도시철도공사는 이와 별도로 무임제도를 소득에 따라 차등 할인하거나 현재 100% 무임에서 50% 할인으로 바꾸는 안을 건의했다.
경로우대 연령을 상향조정하는 안은 이미 여러 차례 거론됐고 일부에선 시행 중인 내용이다. 2012년 9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60년 미래 한국을 위한 중장기 적정인구 관리방안'에서는 정년 연장과 함께 65세인 노인 기준을 70세나 75세로 높이는 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소득세법에선 이미 경로 우대 추가 공제를 70세 이상부터 적용하고 있다. 65세 이상이라고 해도 스스로를 노인으로 여기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그렇다. 무임승차 할인율을 조정하는 안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이를 본격 거론하기엔 부담이 크다. 2010년 10월 김황식 당시 총리가 노인 무임승차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했는데 대한노인회 등에서 강하게 반발하면서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이기 때문에, 경로 우대 연령을 조정하거나 할인율을 낮추는 안을 정부든 국회든 섣불리 거론하기 힘든 이유는 노인층 반발을 우려해서다.
도시철도 운영기관 측에서도, 이 때문인지 제도 개선보다는 비용 지원을 더 기대하고 있다. 무임승차 손실을 국고로 지원해달라는 건의를 이미 서울 메트로는 1992년부터 21차례나 건의했고,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은 2003년 협의회를 구성한 이래 5차례, 전국 시도지사 협의회에서도 3차례 등 숱하게 요구해왔다. 이들은 또 철도공사(코레일)의 무임승차 손실은 철도사업법에 근거해 국고로 지원받고 있지만 도시철도는 지원받고 못하고 있다는 형평성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도 도시철도법이나 노인복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17대부터 발의됐지만 개정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고 19대 국회 들어 다시 발의.)
적자의 절반 정도가 무임 승차에서 비롯되고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데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는데도 개선은 놔두고 비용만 국고로 지원한다면... '세금 낭비'라고 부를 수 있겠다. 6월 선거 이후에라도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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