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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경찰청 언저리 생각

경찰은 왜 그때 민주노총에 강제로 들어갔을까?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 진입 다음날인 23일에 쓴 취재파일인데... 블로그에 올리는 걸 깜빡해 늦었으나 지금 올림.


[취재파일] 경찰은 왜 민주노총에 강제로 들어갔을까? 관련 이미지

경찰은 왜 하필이면 일요일 오전에 민주노총 본부에 강제 진입했을까?

새벽부터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났는데도 경찰이 결국 노렸던 철도노조 지도부를 1명도 잡지 못했단 걸 알고 나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긴 의문이다. 왜 그랬을까.

민주노총 본부에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철도노조 지도부 주요 인사가 있을 것이란 예측은 일찍부터 나왔다. 경찰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건 16일, 경찰의 강제 진입은 그로부터 엿새나 지난 시점이었다. 

경찰이 민주노총으로 쳐들어갈 것이란 움직임은 20일, 금요일부터 있었다. 민주노총 건물 주변에 그때부터 경찰 병력이 증강 배치됐다. 설마 민주노총을 칠까 싶기도 했으나 철도노조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정권 차원에서 갖은 압박을 해오던 걸 보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문제는 시점이었다.

민주노총 본부가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입주해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이중의 부담을 질 수밖에 없었다. 노동운동의 총본산에, 합법화 이후 처음으로 공권력을 투입한다는 것, 해당 언론사를 목표로 한 건 아니지만 언론사 건물에 경찰을 투입한다는 것, 모두 큰 부담이다. 그래서 굳이 경찰을 투입한다면 신문기자들 대부분이 쉬는 토요일이 아닐까 하는 예측이 나왔다.

그런데 경찰은 토요일 하루를 그대로 보내고 일요일 오전을 선택했다. 새벽 기습도 아니고 오전 9시에 체포영장 제시 및 구두 경고, 9시 40분에 진입 시작이었다. 덕분에 기자들은, 특히 방송기자들은 취재와 방송을 위한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 경찰의 강제 진입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으나 전술적인 면에서 봤을 때는 잘 이해가지 않는 예고된 기습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의 말로는, 경찰이 그리 취재 통제를 하지 않았다. 노조도 마찬가지였지만 6천 명 넘는 병력을 동원해 건물 주변을 에워싸고 기동대와 체포조를 투입해 노조원과 시민들을 연행하면서도 폭력적이거나 유혈 사태를 빚지 않도록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장면 장면을 기자들이 취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런 작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촬영한 영상을 찾아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경찰의 이런 배려 덕분에 경찰의 작전 상황을 거의 장면장면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은 출입구를 가로막던 노조원과 시민, 의원들을 하나하나 끌어냈고 1층 로비를 장악한 뒤 계단을 통해 민주노총 본부가 있는 13층까지 진격해 갔다. 중간중간 최루액을 뿌리는 장면까지 나오긴 했지만 경찰도 고생 많았다.

12시간 가까운 작전 끝에 경찰은 17층까지 올라가 옥상까지 진출했지만 경찰이 찾는 철도노조 지도부는 없었다. 다시 내려와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을 뒤지고 남아있던 노조원의 얼굴과 신분증을 일일이 대조하며 수배자를 찾았지만 김명환 위원장, 박태만 수석 부위원장 등 목표로 했던 9명 중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경찰도 허탈했고 이를 지켜보던 기자들도 황당했다. 138명이나 연행될 정도로 경찰의 강제 진입을 막았던 노조와 시민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는 환호했다. 합법화 이후 처음으로 민주노총 본부를 침탈했다는 12.22 사태의 마지막은 약간은 우스꽝스럽게 희화화됐다.

다시 돌아가 왜 평온한 일요일 오전이라는 시점을 택했을까?

추정해보면 이렇다. 어제로 철도노조 파업이 14일째를 맞았다. 정부 차원에서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체포영장 발부, 참가 노조원 고소고발, 손배소 제기, 직위해제 등등 전방위적 압박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찰의 지도부 체포는 쐐기를 박는 행위일 수 있다. 또 복귀를 망설이고 있는 노조원에게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이런 경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요일 오전 9시'로 시점을 고른 건 아닐까.  

민노총 사무실 천장

철도노조 지도부는 어디로 갔을까?

경찰의 설명은 진입 당시까지만 해도 민주노총 본부 안에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통해 확인했고 현장에 들어가 있던 국회의원(박원석 의원 같다)의 트위터 등을 통해서도 김 위원장 등이 안에 있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그외에도 여러 가지 단서들이 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성한 경찰청장의 설명이다.

기자: "(지도부가 안에 있다는 확신에) 휴대전화 위치 추적 말고 다른 근거가 있었나?"
경찰청장: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저희 나름대로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안에) 없다고 생각했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겠지."
기자: 검거 작전 중에 빠져나가거나 다른 곳에 은신한 것으로 추정하나?
경찰청장: 저희는 그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진입할 때까지는 안에 있었으나 올라가는 사이에 어디론가 탈출했거나 건물 안 다른 곳에 은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경찰이 뒤지지 못한 건물 내 다른 공간, 이를테면 경향신문사 공간으로 피신했을 것이란 뉘앙스도 풍겼다.)  

반면 민주노총 측은 경찰이 진입하기 전 새벽에 이미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경찰이 철도노조 지도부도 없는데 무리하게 진입했다는 주장이다.

미리 빠져나갔을 수도, 경찰 주장처럼 진입 시점에 탈출했을 수도, 아니면 경향신문사 안으로 피신했을 수도 있다. 이후에 밝혀질 수도 있지만 그대로 묻혀버릴 수도 있다.

경찰청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배된 파업 주모자들을 검거하기 위한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렇기에 "책임론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이 의도했던 게 아니더라도, 이번 사태로 철도노조 파업의 기세는,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까지 이어지면서 더 강화되게 됐다. 사태는 더 악화됐다. 경찰청장은 자신이 최종 판단을 내렸다고는 하나 사태의 여파는 청장의 권한과 판단 범위를 넘어서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