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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경찰청 언저리 생각

"사기가 아니라 정말 잘못 입금했거든요!"

기사 보기 => "초대장 안 열어봐요"…스미싱 2차 피해 속출



 

배추 중간도매상인 김씨의 사연이다. 

 

김씨는 30년 넘게 강원도부터 전라도까지 돌면서 농민에게 주로 배추를 사서 시장에 팔아왔다. 그동안은 은행을 직접 찾아가 거래처에 계좌 이체로 송금했는데 3-4년 전부터는 텔레뱅킹을 써왔다. 전화로 하니 편했다. 


2013년 12월 9일에도 늘 하듯이 그렇게 했다. 송금할 사람 이름은 이oo. 그런데 손이 방정이었다. 계좌번호를 누르고 계좌주가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이XX님의 계좌입니다. 맞으면 1번 틀리면 2번을 눌러주세요." 성은 같지만 다른 사람 이름이 나오는데 무심코 1번을 눌러버린 것이다.

 

그렇게 잘못 송금한 돈이 무려 천만 원, 김씨는 송금내역 문자를 확인한 뒤에야 실수를 깨달았다. 그때 시각은 오후 6시 30분, 은행 콜센터에 전화하고 다시 담당으로 돌리고 또 전화는 돌아가고... 은행 업무시간이 이미 끝난데다 마침 그날은 금요일, 김씨는 결국 월요일 아침에 다시 연락해야만 했다.

 

12월 12일 아침, 김씨의 전화를 받은 은행 직원이 김씨의 돈을 받은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 00은행 00지점인데요, 

12월 9일에 고객님 계좌로 천만 원이 입금됐는데 

이게 다른 고객님 실수로 잘못 입금됐습니다..." 

"뚝"(전화 끊는 소리)

"?"

 

(다시 전화 걸어)

"00은행 00지점입니다. 

전화가 끊겨서 다시 전화드렸는데요..."

"뚝"

 

은행 직원이 재차 삼차 전화를 했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계속 끊어버렸고 십여 분 기다려 다시 걸어봤더니 이번엔 아예 전원을 꺼버린 상태였다. 

 

상황을 전해들은 김씨는 할 수 없이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리고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하면 수개월 걸리긴 하겠으나 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란 설명을 들었다. 한편 김씨 사건을 맡은 경찰은 소송까지 가느니 다시 한 번 연락을 해보자 했고 송금받은 사람의 집으로 전화해 가족과 겨우 통화가 됐다. 이렇게 은행과 경찰까지 나선 끝에 김씨는 겨우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왜 전화를 계속 끊었냐는 물음에 이 사람은 "은행이라면서 자꾸 전화해서 돈을 송금하라고 해서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다"고 답했다.

 

결국 사흘 동안 마음을 졸이긴 했지만 김씨는 천만 원을 무사히 돌려받았고 소송도 하지 않게 됐으니 홀가분하게 됐다. 돈을 잘못 송금받았던 이씨도 이익본 건 없지만 손해본 것도 없으니 괜찮다. 그저 해프닝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김씨는 왜 전화기 버튼 하나 잘못 누른 죄로 사흘이나 애태워야했을까. 큰 돈을 잘못 송금한 건 어디까지나 김씨 실수지만, 이씨처럼 대다수의 시민들은 확인되면 바로 돌려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은행 전화를 받고도 의심부터 했다. 

 

당신 딸이나 아들이 크게 다쳤으니 빨리 송금부터 하라는 전화, 연말정산 환급금을 돌려주겠으니 ATM기로 가 시키는대로 누르라는 전화, 이미 흘러간 사기가 돼 버린 보이스 피싱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을 악용했다. 불과 수년 전 일이다. 요즘 대세인 스미싱도 마찬가지다. 송년회, 신년회, 동창찾기, 연말정산, 건강검진, 등기, 쿠폰, 연예인 사진... 먹히겠다 싶으면 아무거나 갖다붙였다. '무심코 클릭'하게 되면 개인정보, 금융정보가 술술 빠져나갔다. 사기꾼 맘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사기치는 데 무얼 가리겠는가.

 

이렇게 사기가 만연한 결과는....우리가 공유하고 있던 어떤 종류의 신뢰 상실 아닐까. 

 

스마트폰이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돼버린 요즘, 모르는 번호에서 걸려오는 전화마다, 혹은 아는 번호에서 보낸 문자라도 이게 혹시 사기는 아닐까 의심해봐야 하는 세상, 회의적인 세상, 끔찍하다. 하지만 이미 전화나 문자 자체를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세밑에 이렇게 취재파일을 마무리하려니 다시 드는 생각, 

신뢰를 상실한 세상이란 게 과연 이런 류의 사기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