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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초음파, X레이'는 처음부터 불허 방침이었다

<기사 보기 -> X레이 초음파 제외... 의사 한의사 반발>




-시작이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계기는 2014년 11월, 8개 경제단체에서 제출한 '규제 기요틴' 과제 153건이었다. 정부는 이를 검토해 12월 28일 국무조정실 주최로 '규제 기요틴 [민관합동 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서 114건을 개선 추진하기로 했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엔 부분 수용하거나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수용하되 대안을 마련하기로 한 95번 과제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및 보험적용 확대>다. 담당 부처는 복지부, 법 개정 여부에서는 '비법령'으로 분류돼 있다. 즉, 법이나 시행령, 시행규칙을 고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알았겠지만 당시엔 주목받지 않았다.





-대한 한의사협회는 환영했고 대한 의사협회는 반발했다. 양측 다 국민의 건강과 편의를 이유로 들었다. 한의사들은 국민 건강을 지키는 한 축인 한의원을 이용하는 데 더 편리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의사들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국민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했다.
 
2015년 1월 14일, 한의사협회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슷한 시각, 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를 항의 방문했다. 엿새 뒤인 1월 20일 추무진 의사협회장은 용산 의협회관 앞마당에서 '보건의료 기요틴' 저지를 위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25일 전국 의사대표자 궐기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렇게 찬성과 반대 분위기가 서로 고조되고 있을 즈음인 1월 22일 보건복지부는 대통령에게 2015년 새해 업무보고를 했다.


-업무보고에 앞서 문형표 복지부 장관과 실장, 국장 등은 기자들에게 사전 설명을 했다. 업무보고 내용엔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한의사 의료기기 허용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장관이 먼저 답했다.

"...한의사에게 현대적인 의료기기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에 법원, 또 헌재에서의 판례나 기준들이 제시돼 있습니다. 우리가 정책을 제시할 경우에는 그러한 과거의 판례들을 기준으로 해서 거기에 합당한 범위 내에서 우리가 제대로 검토해서 최대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방향들을 제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권덕철 보건의료정책실장이 부연 설명했다. 

"이 기준을 토대로 의료기기의 한의사 사용 범위를 정할 텐데요, 그 기준이 2013년 12월에 나왔는데,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고, 기기 사용에 전문적 식견이 필요 없고, 한의대에 의료기기 교육이 있는 경우에는 사용 가능하다' 이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기준으로 우리들이 그 사용범위에 대해서는 검토해 나갈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에서 판례가 나왔고, 대법원에서 나온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 나온 판례는법률적인 효력이 있습니다. ...단순히 행정부의 해석, 지침 가지고 풀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초음파는 한의사의 면허범위 밖이다', 대법원에서 '엑스레이는 한의사의 면허범위 밖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허용)하려면 법률개정이 필요하고요. 우리가, 기요틴 과제에서 나왔던 것은, 유권해석을 통해서 가능한 것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그 가능한 기준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기준입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한의계, 의료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해서 그 부분은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정리하면 이렇다.

과거 판례를 기준으로 삼겠다, 그 판례를 벗어나 허용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기요틴 과제에서 나온 것은 유권해석을 통해 가능한 것을 찾겠다...



-그러면 문 장관이나 권 실장이 계속 언급하는 과거의 판례는 어떤 것인가. 

먼저 헌법재판소의 판례부터 보면 이렇다.
 
2012년 한의사 박모씨와 하모씨는 각각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한의원을 운영하며 안압측정기, 청력검사기, 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등을 이용해 시력, 안질환, 청력검사 등을 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한약처방을 했는데 이는 한의사 면허 외의 의료행위라는 게 고발 이유였다. 검찰은 두 사건 모두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지만, 초범에 정상 참작할 점이 있다 하여 기소유예 처분했다. 박씨와 하씨는 기소유예라지만 유죄로 인정된 만큼 자신들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며 기소유예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소결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의료법은 한의사와 의사의 업무영역과 면허범위를 구별하는 이원적인 체계를 취하고 있지만, 이 사건 기기들을 이용한 검사는 자동화된 기기를 통한 안압, 굴절도, 시야, 수정체 혼탁, 청력 등에 관한 기초적인 결과를 제공하는 것으로서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고, 위 기기들의 작동이나 결과 판독에 의사의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한다고 보이지 않는 점, 한의대의 경우에도 한방진단학, 한방외관과학 등의 교육을 통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한의학을 토대로 한 기본적인 안질환이나 귀질환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한의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침술이나 한약처방 등 한방의료행위 방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어, 이 사건 기기들의 사용이 의사만의 전문적인 영역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에 비추어 보면, 청구인들이 이 사건 기기들을 사용하여 한 진료행위는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결론은, "...각 기소유예 처분이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자의적인 처분.."이라며 이를 모두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심영구 취재파일용


여기에 언급된 의료기기는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시야검사장비,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6가지다. 이 헌재 결정을 근거로, 한의사들도 6가지 의료기기 사용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역시 헌재에서 2013년 2월에 나온 판례, 의료법 27조 1항 등에 대한 위헌 소원에 대한 결정이다.

한의사 심모씨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환자를 상대로 골밀도 측정용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성장판 검사 등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부산지법에서 벌금 2백만 원의 선고유예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진행 중 위헌법률 심판 제청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자 2011년 12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심씨의 주장은, 해당 조항인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가 면허된 의료행위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나 면허된 의료행위가 무엇인지 전혀 명시하지 않아 불분명하다는 것(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위배), 또 하나는 골밀도 측정용 초음파진단기기는 전문적인 판독행위가 필요 없고 그 위험성이 있다고 해도 의학적 전문지식이 있는 한의사의 사용을 처벌하는 건,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이전 헌재 결정에 비춰볼 때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고, 초음파검사의 경우 그 시행은 간단하나 영상 평가에는 인체 및 영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검사 중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을충분히 이해해야 하므로, 이론적 기초와 의료기술이 다른 한의사에게 이를 허용하기는 어려워,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대법원 판결은 2011년 5월에 나왔다.

피고인 한의사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자신의 한의원에서 X-선 골밀도측정기를 이용해 성장판 검사를 하는 등 한의사 면허로 허가된 것 외의 의료행위를 했다며 기소됐다. 광주지법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사용한 것이 면허 외 의료행위라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고 한의사는 상고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정당했으며, 위법이 없다고 봐 상고를 기각했다. 

심영구 취재파일용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결에서는, 각각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와 X선 촬영(엑스레이) 사용에 대한 유죄 선고는 헌법 위반이 아니며 정당했다고 봤기에, 이를 근거로 초음파 기기와 엑스레이 사용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복지부는, 규제 기요틴 민관합동 회의 당시부터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비법령', 즉 법이나 시행령 등을 고치지 않는 것으로 분류했다. 기존 판례를 보면 안압측정기 등 6가지 의료기기는 헌재 결정에 따라 한의사도 사용할 수 있고, 초음파와 엑스레이는 사용할 수 없었다.  

복지부는, 법을 고치지 않고 헌재와 대법원 판례를 유권해석하겠다고 이미 밝혔다. 앞으로 의견 수렴해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고 하니, 이후 의사협회나 한의사협회 양측을 설득하거나 혹은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바뀔 수도 있겠다. 

허나, 복지부는 처음부터 초음파 기기와 X레이만큼은 불허 방침이었던 셈이다. 이대로라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범위는, 2013년 헌재의 결정대로 '6가지 의료기기'를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