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건보료 개선 중단, 장관의 승부수였나.

['고소득자 건보료 인상' 돌연 백지화]
[연말정산 파동에 놀라서..2년 논의 중단]
[건보료 불합리한데..'개선 백지화' 논란]
[당정 엇박자..정책도 '갈팡질팡']
["정책혼선 유감"..정책조정협의회 만든다]
["정부 개선의지 없다" 위원장 사퇴]
["건보료 개선 재추진"..6일 만에 번복]


2015년 1월 28일부터 2월 3일까지 SBS 8뉴스 주요시간대에 보도된 기사 제목이다. 시작은 1월 28일 오후 2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표였다. "금년 안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겠다"고 문 장관은 사실상 개선 백지화 선언을 했고, 그로 인한 파장이 이어졌다.



-하루 만에 달라진 입장

바로 전날인 1월 27일 오전 11시 무렵, 세종시 정부청사 브리핑룸에 문 장관이 찾아왔다. 복지 관련 브리핑 때문에 모여 있던 기자들에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에 대한 기사 출고를 한 달만 연기해달라고 직접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기사 쓰기로 했던 시점은 1월 29일 낮 12시부터였다.
 
문 장관은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이, 증세가 아니라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서민들 보험료가 내려가면 반대로 보험료가 오르는 계층이 생길 수밖에 없어 이를 문제삼으면 (여론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면서, "이 기회를 놓치면 몇년은 흘러갈 수 있다"며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장관이 나간 뒤 기자들은 논의 끝에 요청을 거부하기로 했다. 27일은 연말정산 파문이 채 가시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문 장관의 우려는 어느 정도 공감하나, 더는 연기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미 복지부에서는 14일로 예고했던 최종 회의와 기사를, 29일로 한 차례 연기한 뒤였다. 기획단이 마련한 개선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기획단과 복지부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1월 9일 기자들에게 이미 설명했다. 기획단 최종 회의에서 개선안을 담은 보고서에 대해 확정하는 절차를 마치면 기사를 쓰기로 합의했던 상황이었다. 복지부는 22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이유로 14일 회의와 기사를 29일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는 수용됐다. 그런데 또 한 달을 연기하자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간의 사정은 있었으나, 27일 낮까지만 해도 "한 달만 연기해달라"는 입장이었는데 28일 오후엔 "금년 안에 안 만들겠다"로 급선회한 것이다. 내년 1월에 한다고 해도 무려 11달이나 연기한 것...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7일과 28일엔 어떤 일이?

문형표 장관은 1월 27일 오전 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을 만났고(연기를 요청했다 거부당하고) 이후 서울로 왔다. 그날 저녁 문 장관은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장 이상 간부들이 모처에 모여서 무언가를 논의했다고 한다.
 
28일 오전 문 장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아동학대 관련 긴급 현안보고에 참석했다. 오전 10시 10분에 개의해 18시 4분에 산회했는데 오전 회의 정회 시간은 낮 12시 49분이다. 15시 8분에 속개되기까지 문 장관은  마포 건강보험공단에 있는 기자실에 다녀왔다. 이때 "금년 안에 개선안 안 만들겠다"는 발언을 했다. 문 장관은 27일 오후부터 28일 오전 사이에 결심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거푸 터졌던 악재들...영향 있었나

1월초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보였다. 14일로 회의 날짜를 정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그 사이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었고 청와대 문건 배후설이 터졌다.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전국민의 이슈가 됐다. 김군은 IS를 향해 떠났고 무엇보다 연말정산 파동이 있었다. 1월 20일, 최경환 부총리가 직접 나서 사과하고 대책을 내놨다. 복지부 업무보고는 1월 22일이었다. 1월 25일엔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을 재추진하겠다는 행정자치부 장관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 화제가 됐다. 행자부는 그날 급히 설명자료를 내 지자체의 강한 요청과 국회 협조가 없으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장관의 말을 뒤집었다.

이런 상황 속에 문 장관이 개선 논의 중단을 선언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자 이 정부의 국정과제였다. 정부가 출범한 뒤 2013년 7월 개선기획단이 출범해 1년 반을 논의해 개선안을 거의 다 만든 시점이었다. 이를 돌연 중단하겠다고 한 문 장관의 발언, 그간의 흐름과 맞지 않고 생뚱맞았다. 도저히 1월의 저런 상황과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거다.

문 장관 말처럼 올해가 지나 내년에 개선안을 만든다면... 2016년 4월 총선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흘러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 이후는 더욱 그럴 듯하다.

-"전적으로 복지부 장관이 결정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월 29일 기자들의 질문에 "전적으로 장관이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형표 장관은 KDI 출신의 학자로 연금 전문가다. 2004년 한나라당 연금TF에 참여하면서 박근혜 당시 대표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임 장관인 진 영 의원과 비교해도 그렇고 이 정권이나 새누리당 쪽에 어떤 지분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장관의 저런 돌출 발언엔 어떤 배경이나 윗선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확인하긴 어렵다.

-문형표 장관의 승부수?

개선 논의 중단을 선언한지 엿새만에 2월 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로 선출된 유승민 원내대표가 잇따라 개선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복지부는 '연내 재추진은 결정된 바 없다'고 해명자료까지 냈지만 여당에서 재추진 방침을 세워 추진한다면 이에 거스르기는 힘든 입장이다. 복지부 수장의 말이 무색하게 됐고, 중요 정책을 일주일도 안돼 하겠다, 말겠다, 하겠다 하면서 정부의 신뢰도 추락했다. 한마디로 스타일 크게 구겼다. 어린이집 사태에, 건보료 파동까지, 조만간 있을 개각에서, 새로운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발표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복지 행정에서의 혼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 건보료 부과체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해 5천 7백만 건이나 불만 민원이 쏟아질 정도로 현재 부과체계는 불합리하다. 이런 문제점을 다들 알게 됐다. 부과체계 개선 추진에는 어쨌든 탄력이 붙게 됐다. 기획단에 참가했던 위원들은, 아직 논의할 부분이 많은데 마치 개선안이 확정된 것처럼 여겨지는 데는 경계하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추진력을 얻었다는 점은 공감한다. 문 장관의 돌출 발언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는 거다. 문형표 장관이 이런 상황까지 예견하고 승부수를 던졌던 걸까?

-"건보료 개편엔 좌우가 없다"

기획단 위원장을 사퇴한다는 성명을 내고 연락두절 상태였던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와 사퇴 다음날 통화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전화를 안 받아 미안했다는 말씀과 함께 건보료 개편 문제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 한 대목으로 긴 글을 마무리한다.

(교수님도 성향으로 따지면 진보는 아니지 않냐는 질문에)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엔 이념이 들어갈 틈이 없죠. 1년에 6천만 건 민원인데 그게 불합리한 것이면 몰라도 빨리 고쳐야 하는 건데 여기에 이념이 개입할 틈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