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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혼선의 책임은 언론에 있다?...언론 탓하는 장관 유감

*정치인들의 흔한 화법 하나는 "어쨌든 미안하다"다. '자신이 잘못한 건 없기에 책임지지도 않겠으나 사과하라니 사과하겠다'는 교묘한 화법이다. 또다른 하나는 "와전됐다"다. 주로 언론이 앞뒤 맥락을 잘라 쓰면서 자신의 뜻한 바와 다르게 전달됐다는 주장이다.(이완구 총리 후보자는, 녹음 파일이 공개되서인지 이런 화법을 쓰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씀드린 것이지 논의를 중단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그렇게 발표가 되면서 혼선을 빚은 것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2월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긴급현안보고에 출석한 문형표 복지부 장관의 말이다. 자신의 진의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 언론에서 백지화나 중단인 것처럼 기사를 써 혼선을 빚어졌다며 '어쨌든 미안하다'는 얘기다.

의원 "열흘 만에 번복을 했습니다. 열흘만에 번복한 이유가 뭡니까?"
장관 "언론에 복지부에서 다시 선회했다 보도가 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희가 보도 해명자료 냈었습니다. 잘못된 보도였다고 해명자료를 냈고요. 저희가 아까도 말했지만 논의를 백지화한게 아니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가겠다는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의원 "그러면 언론이 잘못한 겁니까?"
장관 "네 저희 의도가 신중하게 검토해서 가겠고 시간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미였는데 그것이 백지화나 중단을 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의원 "너무나 많은 정책 혼선이 있었다는 사실 인정하십니까?"
장관 "정책 혼선이라기보다는 저희가 입장을 바꾸거나 이런 게 아닌데 언론에서..." "저희가 거듭해서 백지화가 아니다 해명자료도 내고 했습니다만 많은 언론에서 그렇게 보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장관은 의원들의 질문에 반복해서 진의는 그게 아니었는데 언론이 잘못 보도했다고 답했다. 이런 입장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저렇게 거듭해서 말하는 걸 들으니 충격적이었다. 시종일관 언론 탓이었다. 그래서 1월 28일 장관이 기자들을 만나 했던 말을 다시 들어봤다. (기자들은 당시 장관의 말을 녹음해 공유했다. 중요 사안인 만큼 정확하게 기사 쓰기 위해서였다.)
 

장관 "...저희가 금년 중에는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기자 "그러면 내년 이후에는 다시 추진하나요?"
장관 "네, 몇 년이고 저희가 시간을 두고 검토하면서 그렇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자 "... 기획단 회의는 추가로 진행합니까?"
장관 "기획단도 최종 마무리죠"
국장 "올해 안에 논의 안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기획단 회의를 다시 개최하거나 이럴 계획은 없습니다."

장관의 발언 그대로면 "금년 안에 개선안 만들지 않겠다"다. 당시 시점은 기획단의 개선안 발표 직전, 이를 바탕으로 한 정부 개선안을 마련해야 하는 과정 중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1년 반 동안 진행됐던 걸 올해는 11달이나 남았는데 안한다니 '개선 중단'으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내년 이후는, 장관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지를 비롯해 어떻게 될런지 아무도 모른다. 총선도 있다. 이렇게 되면 '백지화'나 다름 없어 보였다. 보건복지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가, 방송과 신문 합쳐 백 명이 넘는데 이를 다르게 해석한 기자는 없었다. 단 1명도 없었다. 장관의 진의가 '중단' '백지화'가 결코 아니라는 데도 말이다.

또 하나, 복지위에서 장관의 발언과는 달리 복지부는 '백지화''중단'에 대해선 아무런 해명자료도 내지 않았다. 연내 재추진, 상반기 추진 등 시기에 유독 집착하는 해명만 했을 뿐이다.(취재파일 : 해명 안되는 해명자료 남발 참조)

다시 복지위에서 장관의 발언이다.

의원 "개선안 발표를 연기하기로 했던 이유가 뭡니까?"
장관 "막상 발표가 됐을 때 저소득층에 대해서 부담이 증가하는 문제, 일부 근로소득층에 대해서 부담이 증가하는 문제,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언론에서 왜곡 보도가 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면 이 정책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질 수도 있겠다는 게 저희들 걱정이었습니다."

연기한 이유가 '언론의 왜곡 보도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답변까지 나왔다.

의원 "장관이 그렇게 말할 게 아니라, 신중하게 검토해서 몇개월을 유보해 발표하겠다, 그랬으면 좀 희석이 됐을 것 아니겠어요?"
장관 "말씀하신대로 보다 신중하게 그렇게 발표했으면 이런 혼선을 최소화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원님이 지적하셨듯 저희가 좀더 정확하게 정부의 뜻을 표현을 신중하게 해서 기자들에게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불찰이 좀 있었던 것 같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여기에서야 장관의 표현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자책이 나온다. 비판여론이 빗발치자 새누리당 지도부까지 나서 정책 방향을 틀게 됐으니 번복했다는 정황을 무시하고 '진의'가 정말 그랬다면 말이다.

만약 장관의 진의가 정말로 그랬다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됐던 건 누구 탓이었을까. 자신의 이상 혹은 모호한 발언 때문이었다는 걸 장관은 정말로 몰랐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