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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70세부터 '노인'이면 뭐가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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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에 다녀오다 

9월 중순 전남 고흥군의 한 마을에 다녀왔다. 이 마을에 있는 40가구 중에 스물 일곱이 노인으로만 구성된 가구라 했다. 3분의 2가 노인 가구라는 말이다. 마을회관엔 할머니 6명이 모여 있었다. 인사를 하고 잠시 얘기를 나누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니 할머니 2명이 부엌으로 가 점심 준비를 했다. 상을 꺼내서 닦고 미리 지어놓은 밥을 푸고 조기를 구워 접시에 담고... 다른 할머니 4명은 한담을 나누며 지켜봤다. 식사 뒤에도 그 할머니 2명이 상을 치우고 설겆이했다. 

할머니들 연세를 물었다. 얼핏 보기엔 다들 백발에 주름도 많아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가장 나이 많은 할머니는 무려 97세, 그러고 보니 제일 언니 같긴 했다. 다음은 93, 90, 85, 82, 78세 순이었다. 일하던 할머니 2명은 80대였다. 가장 어린 78세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열외'됐다 했다. 90대 언니들이 80대 동생들이 차려준 밥을 먹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이 모임에서 80대는 상대적으로 젊은 편이었다. 

이 마을이 있는 두원면은 8월 현재 노인인구 비율이 고흥군에서 가장 높다. 인구 3,368명 중 1,686명이 노인으로, 비율은 50.1%, 2명 중 1명이 노인이다. 고흥군 전체는 36.4%, 3명 중 1명이 노인이다. 전국 시군구 중에서 가장 노인 비율이 높은 곳이 고흥군이다.

전라남도는 지난해 노인비율 20%를 돌파해 전국 광역시도 중에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한국 전체의 노인비율은 올해 13.1%, 2026년이면 전국 비율도 20%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흥군은 한국 사회의 머잖은 미래이기도 하다. '초고령 사회'라면 먼 미래인 줄만 알았으나 성큼 다가와 있다.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가.

노인 (老人)의 정의는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다. 외모와 건강 상태, 주관적인 느낌에 따라 달라진다. 50대라도 스스로 노인이라 여길 수도, 70대라도 노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테다. 광고 카피로 유명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 그대로일 수 있겠으나, 법으로 정해져 있다면 어떨까.

법정 노인은 만 65세 이상이다.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을 보면 26조 '경로우대'에 "65세 이상의 자에 대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수송시설 및 고궁, 능원, 박물관, 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무료로, 또는 그 이용요금을 할인하여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기초연금의 지급대상도 65세 이상, 노인장기요양보험도 65세 이상 혹은 그 미만의 연령이면 노인성 질병이 있어야 이용할 수 있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서도 65세 이상은 노인으로 분류한다. 2015년 현재 한국의 노인 기준은 65세 이상인 것이다.
● '노인 기준을 올리자'는 주장의 함의

노인 기준을 올리자는 주장은, 노인이 많아졌고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기댄다. 그리고 노인 복지에 투입되는 예산이 지금도 부담되는데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니 이를 절감해야 한다는 당위를 깔고 있다.

65세 이상은 전철 이용이 공짜다.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이 수천억 원에 이른다며 지자체들은 정부에 손실 보전을 요구하고 있다.(전철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구간과 코레일 구간이 있는데 코레일은 무임승차 손실의 절반 이상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엔 지난해 이 손실액이 2,880억 원, 올해는 3천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도입된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되고 있다. 올해 지급액은 7조 5천억 원에 이른다. 65세~69세까지 노인 인구는 전체 노인 인구에서도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670만 명 중에서 214만 명이나 된다. 단순하게 봐도 노인 기준을 70세로 올리면 노인 복지 예산을 30% 정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가 2013년 중장기 과제로 노인 연령 기준의 상향 조정을 제시하고 이때까지만 해도 반대하던 대한노인회가 지난 5월엔 돌연 이사회 의결을 거쳐 노인 연령을 올리자고 정부에 건의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노인복지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것으로 보인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OECD가 지난 5월 발표한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9.6%에 이른다. 노인의 절반이 가난한다는 얘기다. 노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평균 53세에 퇴직하는 상황에서 65세 연금을 받기까지 10년이 넘는 '소득 절벽'이 존재한다. 그나마 받을 연금이 있어도 65세까지 기다리지 못해 손해를 보더라도 이를 당겨 받는 조기연금 수령자는 계속 늘고 있다.

현재 기준에서의 노인 절반은 가난하고, 아직 노인이 되지 않았지만 소득이 없는, 노인 전 단계 사람들도 생활고에 시달린다. 지자체가 알아서 지급하던 2,3만 원의 장수수당은 중복된 복지라며 폐지하라 하고, 노인 일자리 사업의 급여는 11년째 1년에 최대 9개월만 일할 수 있고 월 20만 원의 초박봉에 묶여 있다.

이런 상황이 해소되지 않은 채 노인 기준만 높여버리는 건 "65~69세의 복지를 박탈하겠다"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2013년 당시 작성된 정부의 '대한민국 중장기 정책과제' 보고서에는 노인 기준을 70~75세로 높이되, 각 개인 상황에 따라 지급하는 복지 혜택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령자가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각 기업이 노동자의 고용기간을 연장하게 유도하고, 장기적으로는 노동자의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을 일치시키기 위해 정년 제도를 개편하는 방안, 더 장기적으로는 정년을 아예 폐지하는 방안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고흥군에서 본 '초고령 사회'라는 미래 말고 이런 미래도 머잖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