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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보건과 복지 사이 두번째

쫓겨난 국민연금 이사장.. 국정철학에 부합하나





"..현 정부의 국정철학을 지원하고, 임명권자의 강력한 국민복지 실현 의지 및 국정운영에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자진 사퇴를 결정했습니다..."

열흘 넘게 버텨왔던 최 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위와 같은 내용이 포함된, 사퇴 입장을 공식 발표하고 27일 퇴임식을 치렀다. 최 이사장이 물러나게 된 단초가 됐던 홍완선 기금이사도 11월 3일까지인 임기를 마치면 퇴임하게 된다. 단 홍 이사는 다음 기금이사가 결정되기 전까지 좀더 자리에 있을 순 있다. (혹시 이사장 대행이 홍 이사를 연임시키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최 이사장은 사퇴 전날인 26일까지만 해도 더 버티겠다는 의지가 확고해보였다. 26일 공단 내부망에는 <NPS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NPS=National Pension Service)을 올렸다. 이 글에서 자신이 기금이사의 "비연임을 결정한 건 법률에 따라 이사장에게 부여된 고유권한을 정당하게 행사" "관계당국과 상당한 협의과정을 거쳐 진행"했다며 '월권'이나 '항명'을 한 일이 결코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 말미에는 "두 가지를 기대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국민연금공단의 명예와 존엄성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미 실추된 저의 명예와 자부심도 조속히 회복되기를" "공단 7,000여 직원과 함께 계속 국민을 섬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랬던 최 이사장이 왜 하루 만에 물러났을까. 복지부는 이날 한 언론을 통해 '국민연금공단 운영실태 점검'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정책국 산하에 이를 위한 TF까지 만들겠다고 했는데, 복지부가 26일 밤 보낸 설명자료에 따르면 점검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사실상의 '특별감사'를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에 기금이사의 연임 결정권이 현행 법엔 이사장에게 있는데 이를 복지부 장관의 권한으로 가져오겠다는 의도 또한 명백하다. 최 이사장 입장에선, 자리를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그간 실추된 명예가 복지부의 '운영 점검'을 통해 더 실추될 가능성이 커보였을 수 있다. 즉, 공단 운영점검을 한다면서 문제점을 들춰내 최 이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를 통해 퇴진하게 된다면, 혹은 이를 근거로 해임 건의를 해 해임된다면, 자진 사퇴하는 것보다 더욱 불명예스러울 것이다. 해임 건의 절차에 착수했다는 복지부 관계자의 발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최 이사장은 자진 사퇴로 내몰린 것 같다.

이전 취재파일에서 지적했듯법 규정을 잘못 알고 공문까지 보내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건 복지부였다. 그래놓고 복지부는, 최 이사장이 29일 '국민연금 기금운용 국제컨퍼런스'를 치르는 것까지도 기다리지 않았다. "둘다 물러나도록 하겠다"는 정진엽 장관의 발언도 지켜지지 않았다. 최 이사장은 임기를 7개월 남겨놓고 있고, 홍 이사는 일주일 뒤인 11월 3일까지다. 당장 둘다 물러나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사장은 기획이사가 대행하면 된다면서 국제 행사를 불과 이틀 앞두고 쫓겨났지만, 기금이사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홍 이사는 11월 3일이 지나도 새로운 기금이사를 뽑기까지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을 보면 최 이사장이 마치 현 정부의 국정철학에 맞지 않는 인사였던가 싶다. 최 이사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임명했고 2년 반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이사장 사퇴이유는 "현 정부의 국정철학을 지원하고, 임명권자의 강력한 국민복지 실현 의지 및 국정운영에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였다. 정부가 문제를 일으켜놓고, 당사자 잘못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둘다 물러나라'면서 한쪽만 쫓아내는 게 현 정부의 국정철학에 부합하나. 이런 식으로 한 조직의 수장을 날려버리면 오히려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것이란 판단은 들어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