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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생각

결혼 15년 만에 첫 아이, 처음 아빠

첫 입체초음파 사진

 

만 29세를 막 넘긴 시점에 결혼했다. 2023년 남성 초혼연령이 34세라고 하는데 그때는 31세 정도였다. 지금은 더욱, 그때도 빠른 편이었다. 결혼하면서도 아이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실은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부모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이서 오래 지켜봤으니 아마 그럴 것이다. 저들처럼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는 강한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삶은 아니었다는 정도로만 얘기해 두자.

 

그럼에도 지금의 아내, 당시의 여자친구와 사귄 지 2년 9개월 만에 식을 올렸다. 서로 좋아했고 마음과 취향, 관점 등이 대체로 맞았고 함께 있는 게 행복했다. 같이 살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결혼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 결혼이다, 그렇게 결정했다. 결혼은 지금도 그렇겠으나 둘만의 결합이 아니라 가족 대 가족의 맺음이었다. 그때는 세세하게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무게는 더욱 커졌다. 그것까지 감수하자는 마음으로 준비했고 이행했고 유지하고 있다.

 

아이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다. 결혼하면서도 그런 얘기는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젊었고 둘 다 회사일에 바빴다. 남는 시간은 둘이 놀기에도 부족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둘의 캐릭터 덕도 있겠지만 양가 부모와 가족들은 대체로 간섭이 적었다. 특히 아이에 대한 유무언의 압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확실친 않다.  

 

수년이 지나 가끔 아이 얘기가 나왔다. 주로 아내가 꺼냈고 나는 원하지는 않지만 네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손뼉을 마주치지 않다 보니 진전은 없었고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몇 년 더 흘러 2019년에 해외 연수를 지원했다. 1년여 뒤인 2020년 여름 해외행이 예정된 셈이었다. 내 연수에 맞춰 아내도 휴직할 생각이었고 그때 아이를 낳으면 어떠냐는 얘기를 나눴다. 연수기간 아이를 낳으려면 그전에 준비를 해야 했지만 여의치는 않았다.

 

2020년 초, 코로나가 창궐했다. 연수가 미뤄졌다. 여러 곡절 끝에 그해 말 출국했는데 그때까지도 아이를 갖지 못했다. 연수 초기엔 적응하느라, 조금 지나면서는 노력을 하는데도 임신이 잘 되지 않았다. 이미 마흔을 훌쩍 넘긴 뒤였고 그래서 안 되는 건가 속으로 생각했다. 1년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시험관 시술로 시도해봐야 할까 그러면서 연수 막바지에 접어들 즈음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10월 중순, 귀국까지 두 달 조금 더 남은 시점이었다.

 

크게 실감 나진 않았다. 수소문해 한인 의사가 있는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초음파로 태아를 확인하고 심장 박동 소리까지 들었는데도 그냥 그렇구나 임신이 됐구나 정도 느낌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입체초음파로 대강의 생김새를 확인하니 좀 더 느낌이 왔다.

 

아이가 실체로 확 느껴진 건 태어나고 안아보고서였다. 아, 너구나. 네가 왔구나. 예수의 부활을 의심했던 제자 토마처럼 만져보고서야 믿겼다. 3킬로그램도 안 되는 작은 핏덩이, 꼭 쥐면 바스러질 듯 연약한 생명체가 이렇게 나, 우리 삶을 다르게 만들지는 몰랐다. 전혀 몰랐다.

 

아이는 하나의 우주라고 했던가... 그러했다. 결혼 15년 만에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